나의 백수일지

첫 경험

by 그런남자

대학을 졸업하고 첫 회사에 취직하기 전 반년 정도 기간이 나의 백수 '첫 경험'이었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 자주 백수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가 아닌 타발적으로. 난 8월에 졸업을 했다. 소위 말하는 '코스모스 졸업.' 2월에 졸업을 못했다는 건 한 학기를 더 다닌 것을 의미한다. 이중 전공 혹은 복수 전공을 해서 이수해야 할 학점이 많아서 그런 건 아니다. 난 단수 전공에 일중 전공이다. 다만, 이수해야 할 학점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했기에 추가로 한 학기의 등록금을 더 내고 다닌 셈이다. 그렇게 정작 무직이었던 기간은 반년 정도 되었지만 어찌 보면 추가 학기를 합쳐서 1년 동안 백수였던 것과는 진배없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취직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기.


누구에게나 '첫 경험'은 서툴고 어색하기 마련이다. 그 경험이 무엇이든. 모든 직장인들은 본인의 신입시절을 떠올려 보면 하루하루가 지우고 싶은 흑역사의 연속 일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는 자타공인 '일잘러' 소리를 들으면서 일을 하지만 신입 시절엔 팩스를 항상 뒤집어서 보내서 재확인을 했어야 했으며, 회의 자료 준비를 위해 복합기와 수분 어떤 때는 몇 시간을 씨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건 본인이 과거에 어떤 좋은 학교를 다녔었고,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와는 완벽하게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냥 '처음' 해 본 일이기에 별 수 없이 격어내야 하는 통과 의례 같은. 마치 '첫사랑' 같은.


소위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에게 백수의 첫 경험은 다른 사람들과는 약간 다른 의미이기도 하다. 나 역시 사람들이 말하는 명문대 출신이다 보니 주변에 주로 그런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들에게 백수의 '첫 경험'은 단순 백수의 처음이 아닌 '실패'의 처음이기도 했다. 아닌 경우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은 어린 시절부터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은 이루면서 자라왔다. 그게 본인의 똑똑해서 든 지, 다른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든지.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왔기에 이 나라의 모든 부모들과 수험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에 입학을 한 것일 수도. 그들의 20여 년 인생에서 '실패'라고 할 만한 이벤트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취직을 못해서, 혹은 본인이 준비하는 시험에 떨어진 게 인생에 큰 실패라고 여겨지지도 않지만. 그 당시, 그 시점에는 처음 경험하는 실패로 여겨진다.


그에 비해 난 나의 백수의 첫 경험은 무덤덤했던 거 같다. 난 오롯이 나의 오만함과 자만심의 결과로 고등학교 입시를 한번 '실패' 해 봤기에.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름의 적절한 위로도 받지 못했었기에. 그 실패에 대한 책임은 그 누구도 아닌 본인이 모두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대단히 어린 16살의 어느 겨울밤에 뼈저리게 깨달았기에.


앞으로 이야기하겠지만 난 적절한 기간의 백수-3개월 정도-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물론, 그 사람의 멘탈의 강도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지만. 적절한 시간이 넘어가는 건 멘탈의 강도와 무관하게 그 사람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멘탈적으로도 그 외 다른 현실적인 문제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