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그렇다면 백수는 누구일까? 그냥 현재 직업이 없는 사람 즉, 현재 밥벌이를 못하고 있는 사람을 백수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취직을 준비하거나 여러 가지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을 일컺는 말들이 생겨 낫지만 그래도 그냥 다 '백수'가 맞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정의가 마뜩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냥 'unemployed' 상태를 백수라고 본다면 그들 역시 무언가를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신분일 뿐, 백수가 맞다.
나는 학창 시절-1990년대-에 실제로 백수를 본 적이 없다. 이건 친척이 거의 없는 나의 특수한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백수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드라마를 통해서 본 것이 전부였고 매체에서 그린 그들의 모습은 대부분 이러했다.
집안의 삼촌 혹은 사촌형
큰 뜻을 품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로 집에만 있으며 한벌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는
집에서 구박을 받지만 그래도 미움은 받지 않는 거 같은
당시에도 백수인 여자도 있었겠지만 매체에는 전혀 그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 이것 역시 또 다른 모습의 '성차별'이라고 생각된다. 회사를 다니는 등의 활동을 하지 않고 집안일을 하는 '주부'라는 대단한 직업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구태의연한, 하지만 당시에는 그리고 현재에도 안타깝게 남아 있는 잔재들 때문에. 혹은 가부장적인 사회 모습을 반영하는 드라마라서 남자의 역할만을 중요시 한 나머지 백수 마저 남자들만 나왔을 수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또한 그들은 그렇게 무언가를 준비했었다. 무언가에 상관없이 대박을. 그리고 아직 사회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주장했었다. 그렇기에 때를 기다리는 거라고. 어떤 때? 언제 올 지 모르는 사회가 나의 큰 뜻을 알아줄 그때.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자의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에 있다. 그리고 이건 2022년을 살아가고 있는 백수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하고 서글픈 지점이기도 하다. 즉, 그들은 본인이 원한다면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에 살고 있었다. 그것도 꽤 괜찮은 직업을. 직장인이 되고 싶다면 지금에 대기업이라고 불리는 곳들에서. 그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왔다면 더더욱. 아니었어도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수월하게.
나의 윗세대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본인은 줄을 잘 서서, 축구를 잘해서, 주량이 쎄서 등등의 말도 안 되는 무용담으로 현재 회사에 입사했다고 떠들곤 한다. 근데 정말이지 안타깝게도 실제로 그런 일들이 종종 아니 자주 있었다. 그 시대에는 모든 경제지표들이 상향 평준화되어 있었던 시기였으니. 대충 이때 부터 '줄을 잘 서야 한다' 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 같다. 어떤 자리를 선발 할 때 누군가에 청탁이 발생하게 되면 청탁을 받은 대상 한명만 선발하게 되면 티가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한 명'이 속한 '줄'을 모두 선발해 버리는 그렇고 그런 꼼수. 내가 운 좋게 그 줄에 속한다면 이유도 모를 기쁨을, 그렇지 않았다면 이유도 알고 싶지 않은 허탈감의 양가감정을 동시에 느낄 그런. 하물며 2022년에도 부모의 힘으로 여럿 혜택들을 보는 자식들의 이야기를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때마다 듣고 있으니.
하지만 어느 순간-1990년대 말에 한번, 2000년대 말에 더 세게 한번 더-부터 모든 경제 지표는 내리막을 달리기 시작했고 이에 고용지표 역시 안 좋아지기 시작을 했다. 내가 처음 회사를 입사할 당시-2000년대 말-에도 취직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2010년대를 살았던 20대들과 2020년대를 살아가는 20대들에게는 비할바가 아니다. 지금의 20대들에겐 그저 먼저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미안한 마음뿐이다.
어찌 보면 20세기 후반의 백수들이 자의에 의한 백수였다면 21세기의 백수는 대부분이 자의 처럼 보이는 타의에 의한 백수들이다. 자의로 선택한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완전한 자의는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