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나의 백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 라디오, 스타벅스, 그리고 스타트업이다. 오늘은 그중 라디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난 TV와 라디오 두 가지 방송매체만 존재하던 시절부터 라디오를 즐겨 들었다. 뭐 특별히 라디오가 더 재미있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니다. 최소한-특히, 학창 시절에는- 라디오는 방에서 뭔가 하면서 들을 수 있다는 점,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공부 안 하냐는 잔소리를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물론, 라디오 DJ들이 라디오를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은 하지만 난 그 말엔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공부는 더더욱. 나만 멀티 능력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라디오를 들으면서 할 수 있는 건 운전 정도뿐.
음주가무, 연애, 그리고 여행으로 점철되던 20대를 시절을 지나면서 한동안 라디오를 등한시했었다. 중간중간에 운전을 하게 되면 차에서 듣긴 했지만. 그러다 취직 준비를 하던 시기부터 다시금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금까지도 대단히 꾸준히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듣고 있다. 특히,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더더욱.
그때 왜 다시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을까? 를 생각해 보면 이유는 '외로움'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어떤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도, 공기업을 입사를 준비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일반 사기업에 입사를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말이 취직 '준비'이지만 특별히 준비하는 것은 없었다. 이미 입학과 졸업을 해서 출신학교는 정해졌고 동시에 학점도 정해졌고 영어 공인시험 점수도 받아 둔 상황이라면 딱히 더 할 것이 없긴 하다. 그저, 채용 사이트를 들락날락 하며 채용공고를 확인하고 자소설 문항을 확인하고 기존에 써둔걸 잘 버무려 볼지 혹은 다시 써야 할지를 정하는 것뿐. 그러다 보면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서 한마디도 안 하고, 한마디도 듣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우연히 오다가다 후배를 만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도 몇 번.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라디오를 찾았던 것 같다. 라디오를 들으면서는 채용공고를 확인하고, 기계적으로 이력서에 항목을 채우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그렇게 채널만 변경해 가면서 오전부터 밤까지 들었던 것 같다. 백수였기에 가능한 호사였다.
백수 시절에는 나만 힘든 거 같고 나만 잘 안 풀리는 거 같은 생각이 종종 든다. 이런 나의 상황을 누군가와 허심탄회하게 말하기도, 듣기도 쉽지가 않은 시기가 백수 시절이다. 내가 종종 나의 이야기들을 하는 내가 친구라고 부르는 녀석들은 학부 졸업과 동시에 이 나라에서 가장 큰 회사에 입사를 해서 다니기 시작했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잘 다니고 있다. 또한 누군가의 그런 사정을 들어주기에도 나의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서 쉽지가 않다. 근데 라디오를 듣다 보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아니 어느 시점부터는 자주- 듣게 된다. 그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잠깐의 위로도 받게 된다. 때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우연히 나오는 것에 위로를 받기도 하고.
과거에는-지금도 종종- 자연재해로 인해 전기가 모두 끊겨서 외부의 소식을 듣지 못할 때 유일하게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매체가 트랜지스터 라디오였다. 물론, 건전지가 있어야 하지만. 그리고 건전지를 이용한 라디오든 충전식 라디오든 혹은 지금의 스마트폰의 앱을 이용한 라디오든 전력과 데이터를 엄청 적게 이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런 위기 순간에 라디오가 더욱 유용한 매체일 수도. 백수 시절을 자연재해와 비교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수는 자연재해와 닮아있기도 하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나의 잘못도 아니라는 점에서. 난 이미 언급했듯이 적정 기간의 백수 생활은 도움이 된다고 여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수의 정신상태는 재해 수준 일 수도 있다. 그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더욱.
내가 혼자라고 느껴지고 자존감이 점점 줄어들 때, 백수 기간 동안은 대단히 자주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스스로 자존감이 대단히 높고 멘탈이 강하다고 자부하면서 살았지만 반복되는 백수 생활에 지치고 무너진 적이 있었기에. 혹시 현재 그런 상태라면-현재 백수가 아니더라도-라디오를 권해 주고 싶다. 가끔 사람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서 대단히 큰 위로를 받기도 한다. 라디오는 그런 위로를 종종 전달해 준다. 그리고 그 효과는 꽤나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