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bad, just not good
언젠가부터 회사에 취직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험을 통해서 직업을 얻는 모든 행위들이 어려워졌다. 점점 인구는 줄고 있어서 학교에 학생들은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위 명문대를 가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은 더욱 치열해졌고 직업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당연히 공급이 줄어들게 되면 수요를 줄여서 시장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장의 논리라지만 진학과 취직에 꼭 시장의 논리를 적용해야 하는지는 의문이긴 하다. 이렇게 어렵게 직업을 찾아서 일음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든 직장인들은 가슴에 사표를 품고 다닌다.'라는 명제가 없어지지 않는 것도 참 아이러니이다.
난 직장 생활을 10여 년 넘게 하면서 소위 '때려치워야겠다'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느 직장인들처럼 피곤하고 권태가 느껴진 적은 있었지만 때려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한적도, 그냥 지나가는 말로 내뱉은 적도 거의 없는 것 같다. 무심코 내가 인식하지 못한 채 몇 번 했을 수도 있지만. 아니면 회사가 정기적으로 망해 줘서 그런 생각이 들기 전에 백수가 된 이유일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현재의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고백하는 글들을 종종 보게 된다. 과도한 업무 때문에 혹은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트러블 때문에. 그리고 난 라디오를 자주 듣기 때문에 라디오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연을 듣게 된다. 실제로 그만두거나 이직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다. 내 주변에 후배들 역시 종종 나에게 그런 고민을 상담한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항상 하는 이야기가 바로 오늘 글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만두고 다른 곳을 찾아봐. 백수는 나쁜 게 아니다, 그저 조금 안 좋은 것뿐"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 두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뭘까? 어떤 이유 때문에 본인을 죽여가면서(?) 직장인이라는 직업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도 평생도 아닌 잠시 동안인데.
많은 사람들이 '돈'일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쳐 가면서 까지 지켜야 할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이자 불안감이다. 다시 언제 일을 하게 될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다른 사람들이 백수인 나를 볼 때 드는 두려움, 그리고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불안감 등등.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은 모두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잘못 교육받은 '다른 것은 틀린 것이다'라는 명제가 여전히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에.
나쁜 일은 하면 안 된다. 법적으로 봐도 '불법'인 행동은 하면 안 된다. 안 좋은 행동 역시 안 하는 것이 더 좋다. 하지만 우리들은 살면서 종종 하면서 살고 있다. 은연중에. 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안 좋은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쓰레기를 버리고 무단횡단 역시 마찬가지이다.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물리적, 정신적 상해를 주는 것은 나쁜 행동이지만 안 좋은 행동인 험담은 종종 아니 매우 자주 한다. 내가 볼 때는 백수는 그저 그런 수준의 '안 좋은'것 중 하나 일 뿐이다. 나쁘거나 틀린 것이 아닌.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 현재의 직장생활이 너무도 힘든데 여러 가지 이유 중 불안감이나 두려움 때문이라면 백수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권해 드리고 싶다. 절대 백수를 권장하거나 좋다는 것이 아니다. 먼저 해 본 사람으로서 그리고 꽤 자주 해 본 사람으로서 드리는 권유일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조언'이다. 그런 면에선 내가 드리는 권유 혹은 조언은 경계해야 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후회는 과거의 나의 행동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불안은 나의 미래의 행동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둘의 공통점은 지금을 살고 있는 내가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자 모두 나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행동은 나의 선택에서 시작을 한다. 많은 직업들 중에서 '직장인', '공무원'을 선택한 것도 나 자신이고 그것을 계속 유지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 역시 나 스스로 해야 한다. 잘한 결정과 그렇지 않은 결정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판단하는 것도, 결정하는 것도 미래의 '나'이다.
평범한 우리네들이 일을 미루면서, 다이어트를 미루면서, 혹은 무언가를 소비하면서 항상 내일의 '나'에게 맡기듯이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생각을 한다면 백수가 될지 말지의 결정 역시 조금은 쉬워질 수 있다. 이 결정이 위에 언급한 결정보다 더 중요하거나 하지 않다. 그저 하나의 선택과 결정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