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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영 다니엘 May 19. 2022

남미 여행을 마감하며 - - -

발파라이소 파블로 네루다의 집 ‘La Sebastiana’에서

남미를 떠나기 전 태평양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발파라이소 항구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파블로 네루다의 집 ‘La Sebastiana’를 찾았다.
 
시인과 우편배달부의 아름다운 우정을 다룬 영화 ‘일 포스티노’의 실제 주인공인 파블로 네루다. 따스함과 인간적인 유머가 넘치고 모든 사람이 더불어 잘 살기를 희망한 사회주의자. 노동자와 같이 매일 규칙적으로 글을 쓰고 보내온 편지에 답하고 저녁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 사람 - -
 
집이 너무 화려하여 잠시 놀랐다. 그의 화려한 경력과 집안의 장식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사회주의자는 잘 살면 아니 되는가? 독일과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의 국가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잘 조합하여 모두 같이 부유하게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집사람과 함께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를 1월 10일부터 한 달 반 돌아다녔다. 마추픽추, 티티카카,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과 고원지대, 후후이와 살타, 이과수 폭포, 남극의 찬바람이 불어오는 우수아이아, 또 파타고니아! 정말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다. 남미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이번 여행의 백미는 남미 서쪽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남북으로 7,000Km 뻗은 거대한 안데스 산맥의 숨은 칠레 최고의 오지 Aysen Patagonia와 아르헨티나 북서부 골짜기 Jujuy주 Humahuaca에 위치한 14가지 색깔로 이뤄진 산 ‘El Hornocal’을 다녀온 것이었다. 세상 이런 비경이 아직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니- -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을 여섯 번이나 넘나들며 찾아서 헤맨 안데스의 비경들, 스쳐간 수많은 따스한 사람들 - -

이런 아름다움과는 다르게 또한 따스한 세상을 꿈꾼 네루다의 바람과는 달리 남미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냉전과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난과 착취, 차별과 억압을 받고 힘들게 살고 간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10년 전 여행할 때보다는 전반적으로 훨씬 생활이 많이 개선되었다.
 
콜롬비아의 노벨문학상 작가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처럼 남미를 묘사하는 단어는 식민지, 원주민 착취, 노예노동, 쿠데타와 군부 독재, 혁명과 게릴라, 학살, 가난 등 복잡다단하다.
 
미국의 운명을 가른 중요한 사건은 남북 전쟁이다. 미국이 오늘날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남북전쟁에서 산업 세력인 북부 연맹이 승리하여 유럽과 같이 산업화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노예노동을 필요로 하는 플란테이션 농업이 기반인 남부동맹이 승리하였다면 오늘날 미국의 위상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남미의 문제점은 소수의 광산주 및 지주/농장주가 주도하는 광업과 농업이 주류이고 제조업이 아주 취약하다. 그래서 일상생활용품의 질이 아주 낮다. 이들은 거대한 노동력 착취를 기반으로 한 일차 산업이다.

선진국으로 가려면 산업화에 필요한 국민 교육이 필수적인데 농업과 광업이 거의 전부인 남미는 또 일부 소수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면 교육받은 국민보다 착취적 노예노동이 더 필요하였다.
 
한국과 중국이 서방 선진국을 짧은 시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것도 고등교육을 받은 양질의 국민이 있어 산업화(제조업)를 잘 따라갔기 때문이다. 그 넓은 땅과 수많은 자원을 가지고도 남미는 - -
 
남미의 독립은 시몬 볼리바르(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쿠아도르)와 산 마르틴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이 주도했다. 그들의 독립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국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본국에서 이주한 정착민과 후손 또는 혼혈들(크리오요 Criollo)이 본국의 지나친 착취로부터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 이런 태생적 한계는 광업과 농업을 위한 노예노동을 필요로 하였지 그들을 교육시켜 산업화로 나가려는 생각은 애초 기대할 수 없었다.
 
제국주의 또 식민주의가 얼마나 오랫동안 남미 사람들을 착취하고 가난하게 만들었으며 또한 이차대전 후 시작된 동서 간의 이념 갈등은 수많은 주민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불법적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불법체포, 고문, 재판도 없이 처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스 내전, 중국의 내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 - 냉전과 이념 갈등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희생을 당하였는가? 그 냉전의 사고방식과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도 한국을 덮고 미래의 발목이 되고 있다. 중남미도 그 냉전/이념의 태풍을 비켜갈 수 없었다.
 
쿠바 혁명과 그 영향력에 놀란 미국은 미주 대륙의 사회주의/공산화를 막기 위해 이들 정당하지 못하고 취약한 군사정권에 군사장비와 원조를 미끼로 CIA를 통해 개입하고 조종하였다.

대부분 쿠데타로 집권한 억압적 폭력적 군사정권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이권을 지키기 위해 최저 생활권 보장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를 이념의 잣대로 철저하게 짓밟았다. 피노체트의 군사독재 시절 3,200 명 가량이 납치 학살되었으며, 더러운 전쟁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쿠데타 군사정권에서는 최소 30,000 명 이상이 납치, 처형 또는 행방불명되었다.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으로 쿠바가 1902년 독립은 하였지만 사탕수수 단일작물 경제는 미국의 자본에 예속되고 마피아가 카지노를 장악하는 등 실질적으로 쿠바는 미국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또한 탐욕스러운 소수의 농장주와 쿠데타로 집권한 부패한 바티스타 독재정권의 실정으로 미래가 없는 쿠바의 모습을 지켜보고 자란 젊은 변호사 피델 카스트로는 미국과 제국주의/자본주의를 없애야 할 악으로 각인하였다.
 
세상에 증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의 강한 신념이 비록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지만 Yankee Colony를 거부한 자본주의 적대정책과 무리하게 쿠바 혁명을 전파하려 미국과 대립한 정책이 이후 쿠바를 세상에서 가장 낙후한 국가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미국을 적대시 한 국가가 세상에서 어떤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지 우리는 북한, 쿠바, 이란, 이라크, 리비아, 베트남을 통해서 잘 학습하고 있다.
 
스페인 내전과 모택동의 중국 공산혁명, 또 쿠바 혁명이 식민/제국주의와 냉전과 독재로 억압 받든 가난한 전 세계 제삼 제국(중남미 포함) 사람들에게 어떻게 희망의 바람을
불어넣고 영향을 미쳤는지 한국에서 자란 우리는 정확히 잘 모른다.
 
남미를 가기 전 미국 공영방송 ‘PBS‘가 제작한 ‘The Fidel Castro’란 프로를 시청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자료였으며 특히 이번 남미 여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쿠바 혁명은 1991년 말 소련이 붕괴되기 전까지 현대사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 중요 사건이다.
 
분단과 냉전의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 60대는 어쩌면 반쪽 교육을 받았는지 모른다. 세상을 둘로 나누고 또 옳고 그름으로 세상을 볼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인간세상을 바라보면 보다 진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유투버에 ‘PBS’와 ‘The Fidel Castro’를 치면 나오니 꼭 한번 시청을 권하는 바이다.
 
시인 네루다의 절친한 친구이자 1970년 사회주의 최초 민선 칠레 대통령인 살바도르 아옌데는 미국 아나콘다사가(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가문에서 인수) 소유한 세계 최대 ‘추우키카마타’ 동광산을 국유화하고 미국과 다국적 기업, 시티은행, 포드, 네슬레 등이 장악한 칠레시장을 국민을 위한 사회주의로 개혁을 시작하자 미국의 닉슨 대통령, 키신저 국무장관은 미주 개발은행 등을 통한 자금조달을 막고, 국제 구리 가격을 폭락시키고 다국적 기업도 협력을 거부하며 칠레에 경제제재를 가하여 경제를 혼란에 빠뜨린다. 경제 제재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압박하는 전통적 무기이다.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출신의 의학도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도 친구인 그라나도스와 함께 1952년 오토바이로 남미를 여행하다 여기 추키 동광산을 들렸다. 엄청난 분진과 화학물질로 노동자들이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힘든 삶의 현장을 목격하고, 페루의 산파블로 나환자촌도 방문, 나중 의사의 편한 삶을 포기하고 이 같은 사람들을 구하려 혁명의 길로 뛰어든다.
 
쿠바 혁명이 성공하고 체 게바라의 초청으로 친구 그라나도스도 가족과 함께 쿠바로 이주하여 쿠바 의료체계 수립에 큰 공을 세우고 쿠바에서 생을 마감했다.
 
1973년 9월 11일 화창한 봄날 (칠레는 한국과 계절이 반대) 라디오에서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쿠데타 시작을 알리는 암호 방송이 계속 흘러나온다. 미국 CIA의 조종을 받은 군부 피노체트는 전투기로 대통령 집무실인 모네다 궁을 폭격하고 탱크를 동원하여 대통령궁을 점령한다. 소아과 의사 출신으로 온건한 평화주의자인 아옌데 대통령은 불법에 굴복할 수 없다고 끝까지 총을 들고 저항하다 죽음을 맞는다.
 
지금 수도 산티아고의 ‘진실과 화해’ 박물관에 가면 전투기로 폭격하여 모네다 대통령궁이 불타는 야만적 행위와 1990년 그가 물러나기 전까지 행한 끔찍한 반인륜적 만행이 전시되어 있다.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노동조합을 해체하고 노조간부,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 조금이라도 사회주의자로 의심이 가는 사람을 체포, 고문하여 감옥으로 보내거나 살해하고 재판 없이 죽인 잔인한 기록들이 전시되어 인간의 무모함과 무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미국은 석유가 부족하면 전국이 마비될 수 있는 석유 의존적 산업구조이다. 1차 걸프전 이후 카다피와 후세인이 미국에 석유를 팔지 않자 이라크에 화학무기와 핵이 있다고 정보를 조작하고 흘리고 이라크의 민주주위를 위한다며 이라크를 침공하여 후세인을 제거하고 꼭두각시 말라키 정권을 세우고 쉽게 쉽게 석유를 가져간다.

반대자 리비아의 카다피도 제거해버리고- - 셰일 가스의 생산으로 석유가 풍부한 지금은 중동이 옛날처럼 미국에 중요하지는 않다.
 
피노체트는 미국 시카고학파의 자유무역주의를 받아들여 시장을 개방하여 모든 공산품을 수입하여 그렇지 않아도 농수산업과 광업에 치우쳐 빈약한 제조업의 싹을 말려 버렸다. 또 정부와 친한 기업과 측근 출신들이 칠레 경제를 장악하니 산업을 일으켜 세우기보다 특권에 매달려 칠레의 경제구조를 아주 취약하게 만들고 이로 인하여 부의 불평등이 아주 심해졌다. 그리하여 지금은 상위 2%가 칠레 부의 거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또한 칠레의 구리 수출은 GDP의 약 40%를 차지한다. 국제 상품시장에서 구리 가격은 생산자보다 시장의 큰 손들이 가격을 결정한다. 그래서 국제 구리 가격이 폭락하면 칠레 경제가 요동친다. 피노체트의 강권통치로 임금은 오르지 않았고 구리 가격이 폭락하니 환율이 폭등하여 수입하는 물가가 폭등하고 교사 월급이 월 육칠백 달러 밖에 되지 않으니 살기 어려워진 서민이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며 폭력적으로 격렬하게 저항한다. 만나본 학생들은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교육을 위해 수입에 비해 엄청 높은 대학 수업료를 내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작년 폭동도 이런 취약한 산업구조에 기인한다.
 
역시 교육을 통한 제조업(첨단)이 해법이다.
 
칠레의 농산물, 수산물, 구리 등 광물자원은 정말 풍부하다. 수도 Santiago의 베가 중앙 농산물 시장에 가보면 얼마나 싱싱하고 질 좋은 야채와 과일이 넘쳐 나는지! 칠레 남부 Puerto Montt의 앙헬모 수산시장에 가보시라 얼마나 다양하고 싱싱한 수산물이 넘쳐 나는지!

남극에서 남미 대륙을 따라 적도 가까이 올라오는 차가운 훔볼트 해류 덕분에 칠레와 페루는 세계 최대 어장을 형성한다. 이 해류를 따라 펭귄도 올라온다.
 
모랄레스는 볼리비아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었으며 사회주의자입니다. 현대 산업의 총아 휴대전화와 전기자동차의 배터리에 리튬은 아주 중요하다. 리튬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지만 생산기술이 없는 볼리비아는 5%가량의 커미션만 받고 선진국이 채굴 가공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모랄레스는 이를 10%로 인상하려고 요구했다. 그리고 사담 후세인처럼 미국을 배척하고 중국과 가깝게 지내어 현재 볼리비아 사업의 80%가량을 중국이 독점하고 있다.

그러면 그의 운명은? 내가 만난 볼리비아 사람들은 모두 미국의 공작으로 그가 쫓겨났다고 믿었다. 중국과 미국이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지금 그 사이에 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파타고니아는 남미 끝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쳐있다. 칠레 쪽 Puerto Natales에 위치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과 아르헨티나 쪽  El Chalten의 전 세계 바위꾼들이 메카라고 부르는 ‘피츠로이’ 봉과 ‘세로또레’ 봉, 그리고 El Calafate의 ‘페리토 모레노’ 빙하가 파타고니아를 대표하는 명소이다. 하이킹을 하면서 감상한 비경은 천하 절경이었다. 파이네 공원의 토레스 베이스 왕복 22Km 돌산 하이킹은 무척 힘들었지만 아주 멋있는 경치를 제공한다. 또 피츠로이봉과 세로 또래봉 하이킹도 추천한다.
 
특히 이번 여행의 백미는 칠레 최고의 오지 Aysen Patagonia와 아르헨티나 북서부 골짜기 Jujuy 주 Humahuaca에 위치한 14가지 색깔로 이뤄진 산 El Hornocal을 방문한 것이다.
 
Aysen Patagonia를 관통하는 칠레의 비경 7번 국도(Carretera Austral)는 피노체트가 군인들을 동원하여 건설하였다. 파타고니아 북쪽인 Aysen Patagonia를 관통하여 호수 지방 Puerto Montt까지 이르는 칠레 최고의 오지와 비경을 관통하지만 수없이 많이 페리를 타고 건너야 하고 대부분 비포장이다.
 
일반 관광객이 Aysen Patagonia를 남쪽에서 접근하려면 아르헨티나 쪽 Los Antiguos로 가야 한다. 여름 성수기에 아르헨티나 El Calafate에서 12시간 버스로 북쪽으로 가야 한다. ElChalten에서는 9시간 걸린다. 여기는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공유하는 동서 140 Km 정도인 Lago General Carrera/Lago Buenos Aires 호수가 있다.

이 도시에서 건너편 칠레 쪽 도시 Chile Chico(작은 칠레) 까지는 10 Km 정도 밖에 안 되지만 국경을 넘어야 하고 버스도 하루 네 차례 밖에 없다. Chile Chico로 가는 버스도 작기 때문에 버스가 Los Antiguos에 도착하자마자 달려가 표를 사야 한다.
 
두 도시 모두 아주 적지만 아름다운 도시이다. 검푸른 호수와 멀리 흰 눈에 쌓인 안데스 산군들. 한적한 도시를 비추는 강렬한 태양은 바쁠 것이 하나도 없는 이 도시의 시간을 멈춘다. 호수를 북쪽으로 건너는 페리는 하루에 두 번 있다.
 
페리로 호수를 두 시간 건너 “Puerto Ibanez”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이 지방 수도인 Coyhaique시로 간다. 버스는 여름철 성수기엔 페리 시간에 맞추어 다니지만 겨울 비수기엔 잘 없단다. 이 지방 모든 아웃도어 활동의 중심이며 여행사들이 이 지방 곳곳을 탐험할 수 있게 편의를 제공한다. 또 육지로 갈 수 있는 페리 표를 살 수 있다. 성수기엔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여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Aysen Patagonia 에는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국립공원이 있다. 서쪽 태평양 연안은 리아스식 해안과 수많은 화산과 섬들이 미로를 이룬다. 알래스카의 빙하보다 더 큰 빙하도 있으며 피요르드를 거쳐 14시간 걸리는 San Rafael 빙하투어는 천하 절경이다. 이 지역엔 빙하가 절벽으로 떨어지고 그 힘으로 만들어진 계곡과 호수가 절경인 Queulat 국립공원 등 수많은 비경을 간직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이 여기에 있다.
 
Puerto Aysen 은 칠레의 최고 오지 Aysen Patagonia 지방의 태평양 쪽 피요르드 깊숙한 곳에 있는 자그마한 도시이다. Coyhaique에서 여기로 내려오는 길은 험준한
안데스를 내려오는 비경이다. 여기는 비도 많이 와서 산에 나무가 울창하다. 마치 스위스의 산골마을 같다.
 
여기서 육지로 가려면 일주일에 두 번 있는 페리로 30시간 걸려 칠로에섬의 Quellon으로 가서 또 5시간 걸려야 큰 도시 Puerto Montt로 갈 수 있다. 아니면 비포장 도로로
20시간 달려 Chaiten으로 가서 페리를 여러 번 타야 육지로 갈 수 있다. 정말 칠레의 오지 중의 오지이다.
 
대부분의 물자는 배로 Puerto Aysen을 거쳐서 이 지방으로 오고 사람들은 거의 모두 Santiago나 Puerto Montt에서 비행기로 Coyhaique로 온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 지방의 비경을 감상하며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여행을 하든지 시간이 없으시면 비행기로 오면 여기 천하의 비경을 볼 수 있다.
 
칠레의 북부 ‘San Pedro de Atacama’에서 안데스 산맥을 넘어 아르헨티나 북서부 후후이 (San Salvador de Jujuy)로 가는 길은 천하의 절경이다. 사천 미터가 넘는 고원을 달리며 눈 덮인 설산과 습지, 그 위에 야생으로 뛰노는 비구니아와 홍학을 보는 것은 자연의 신비이다. 경외감 마저 든다

 아르헨티나 Jama 국경검문소는 해발 4,200 미터에 위치해 있다. 국경을 통과한 버스는 우유니 소금사막의 축소판 ‘Salinas Grandes’를 가로질러 바로 계곡으로 내려간다. 목적지 후후이까지 꼬불 꼬불 삼천미터를 내려간다. 세상에 이런 멋진 도로가 없다. 차창을 내다보니 아찔하다. 미국의 그랜드캐년처럼 까마득한 낭뜨러지를 뱀처럼 꼬불꼬불 내려간다. 주변의 선인장 사보텐, 광물질을 머금은 각양각색의 색채를 띤 산은 중국의 칠채산과 페루의 무지개산을 초라하게 만든다.
 
후후이는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지만 위로 한 시간만 달려가면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사막기후이다. 북쪽 볼리비아로 가는 길은 계속 오르막인 Humahuaca 계곡이다. 이곳 계곡의 심장부에 자리 잡은 Tilcara는 스페인 정복 이전에 이 지방을 통치한 잉카문명 이전의 유적이 남아있으며 요새 위에 올라가면 계곡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선인장도 아주 일품이다.
 
북쪽으로 차를 한 시간 반 정도 달려가면 Humahuaca시에 도착한다. 여기서 해발 4,350 미터에 위치한 전망대까지는 포장이 되지 않아서 지프차로 올라가야 한다. ‘El Hornocal’이라 불리는 14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석화암 지대는 어떻게 사람의 감정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감이 돈다. 이런 자연의 비경이 우리 지구에 있다니! 이 산군들은 아르헨티나 살타와 우마우아까, 볼리비아의 고원지대와 페루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2003년 유네스코는 이곳 Humahuaca의 기이한 산들과 이 지역에 남아있는 잉카의 교역로를 세계문화유적으로 지정하고 보전하고 있다.
 
한국 언론인들이 자주 포퓰리즘을 이야기할 때 아르헨티나 페론정권을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다. 중요 원인이다, 그러나 실제로 아르헨티나 경제를 말아먹은 것은 쿠데타로 집권한 비델라와 갈티에리 대통령 정권이다. 아르헨티나도 농수산물과 광물이 엄청 풍부하지만 제조업이 전무하며 욕심이 가득한 지배계층의 부정부패 군사독재의 폐해가 더 크다.
 
1929년 미국발 경제 대공황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르헨티나는 손꼽히는 부국이었다. 이후 몇 번의 경제위기를 겪고 추락을 하였다. Buenos Aires의 중심가에 가보시라 미국의 워싱턴 관가를 빰치는 중앙정부 건물들과 중앙은행, 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주교로 계셨던 대성당 등 그 영광의 발자취를 볼 수 있다.
 
비델라는 자신을 육군 참모총장으로 임명한 이사벨 페론 대통령을 미국의 지원 아래 경제문제와 좌익세력의 위협이 심각하다며 1976년 3월 쿠데타로 몰아냈다. 시장개방 정책을 추진하여 외채가 심각하게 늘어나고 인플레이션 문제가 심각해지자 알뜰 국영기업을 민영화하여 미국을 위시한 다국적 기업에 헐값에 매각하여 국가를 빈 털털이로 만들었다.
 
후안 페론 시절부터 꾸준히 빈민율을 감소시켜 쿠데타 전에는 4%까지 떨어졌으나 그가 쿠데타로 집권한 후 단 2년 만에 38% 까지 빈민율이 올라갔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빈민 증가율이 높았던 시기가 비델라 집권 기간이다.

기업을 팔아 외채를 메꾸면 실업률이 증가하고 또 그 불만을 막으려 1978년 월드컵을 유치하고 압력과 매수로 유럽의 강자를 다른 조에 편성하고 또 결승전 전날 네덜란드 축구팀 숙소에 사람들을 동원해 밤새 소란을 피워 네덜란드 선수들이 밤새 잠을 설치게 하고 아르헨티나 우승 주역 마리오 캠페스에 의하면 군부가 선수들에게 우승하지 못하면 가만두지 않는다고 협박까지 하였다고 한다.
 
이후 들어선 갈티에리 군사정권도 혼란을 외부로 돌리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키고 그 실패의 책임을 지고 1983년 물러났다.
 
군부독재로 민주화 요구와 데모가 일어나자 진보성향의 지식인, 예술가, 학생 등의 반대파와 좌파를 불순분자로 몰아 비밀리에 납치하여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재판도 없이 살해하였다. 일체의 시위 집회를 금지하고, 정치활동을 금지시키고, 국회를 폐쇄하고 3인 군사위원회가 그 역할을 하였다.

더러운 전쟁으로 불리는 비델라/갈티에리 군사독재 시절 (1976 -1983) 테러, 조직적인 고문, 실종 등으로 죽거나 행방불명된 피해자가 3만 명이 훨씬 넘는다. 전국적으로 300 여곳의 죽음의 수용소를 설치 운영하였다. 그 공포의 시절에도 행방불명된 아들의 생사를 찾아 어머니들이 모여들어 시작한 5월 광장의 어머니 모임은 전 세계를 움직였다. 나도 그 광장을 방문하여 그 처절한 시절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다.
 
군사독재정권은 미국 CIA의 지원 아래, 이웃 칠레의 피노체트 군사정권, 우루과이, 파라과이, 볼리비아, 브라질 등과 함께 예술인, 학생, 기자, 페론주의 등 반대파와 좌파를 없애려 콘도르 작전으로 명한 잔인하고 추악한 범죄를 저질렀다. 더러운 전쟁은 이 콘도르 작전의 일부이다.
 
군정보기관들이 주도하여 납치 고문 살해 등 불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반정부 세력과 좌파를 탄압하여 아르헨티나 포함 전체 최소 6만 명 정도가 살해 실종되었다, 불법체포 고문 등으로 희생을 당한 숫자는 헤아릴 수가 없다.
 
독재자 비델라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가톨릭 정신에 입각한 국가 재건을 꿈꾸었다. 가톨릭 교회가 군부독재에 협조한 정황이 드러나고, 또 일부 신부가 직접 고문과 납치에 관여하여 나중 처벌을 받았으며 교황 프란치스코 역시 교황에 오르기 전 더러운 전쟁 당시 군사정부에 침묵하고 협조한 정황으로 인해 논란에 빠지기도 하였다.
 
아르헨티나 경제파탄의 큰 책임은 다른 남미 국가처럼 제조업이 없는 구조적 문제이며 일차적 책임은 나라를 팔아먹은 군사정권 비델라와 갈티에리 대통령이 져야 한다. 세계가 보는 눈은 군사정권이 제일 큰 경제파탄의 주역이라 평가한다.
 
이번 남미 여행을 기획하며 나의 오랜 꿈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들을 만나려 노력했다. 남과 북이 아닌 중립국으로 가신 76인의 전쟁포로. 아주 젊은 이십 대 초반 우리의 젊은이가 부모 형제가 있는 북과 이승만 정권의 남쪽에 남으라는 집요한 설득 공작에도 ‘조국을 저버린 빨갱이 보다 더 나쁜 새끼들’이란 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왜 중립국 인도로 가는 수송선 타고르(아스토리아)호를 타고 떠났을까?
 
이들 중 김일성 대학 약학과 출신 임익간씨 또 초대 한인 회장을 하신 김관옥 씨, 이재하 씨 - - 남미로 떠나기 전 한인회, 아르헨티나 대사관, 아르헨티나 한인 사이트로 백방으로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처를 몰라 답답한 마음으로 떠났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하여 한인회관에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직접 찾아갔다. 구정이라 7일간 휴무란다.
 
다행히도 주변에 한국 어르신들이 모이는 동내 다방을 알게 되어 연로하신 교포 여섯 분을 만났지만 이분들이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살아 계시면 90 전후의 연세.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진하게 남는다. 꼭 사연들을 직접 듣고 싶었는데.
 
남미의 어려움과 문제점들은 소수인 기득권층의 지나친 탐욕과 이기주의, 과욕의 결과이며 앞날도 쉽지가 않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요소들을 잘 조화하여 같이 함께 잘 사는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의 국가들을 보면 왜 국민 모두가 함께 합의하여 같이 가야 하는지 역사적 교훈을 준다. 모두 같이 시너지를 쌓아야 한다.
 
우리가 이 멋지고 아름다운 남미를 여행할 수 있다니! 정말 눈물이 핑 돌도록 감사한 마음이다.
 
어릴 적 자원도 없고 국민의 교육 수준이 낮아 선거 벽보에 숫자 대신 막대기로 후보를 표시하던 시절 허리띠를 졸라 매고 교육을 통해 짧은 시간에 산업화 정보화 시대에 앞서가는 대한민국을 건설한 우리들! 그리고 그 토대를 마련해 준 박 대통령의 뛰어난 혜안과 리더십, 일제 군국주의 교육을 받으신 그분에게 민주화까지 요구하는 것은 국민의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우리 국민의 우수성과 근면함에 자부심을 느낀다. 교육을 통해 민주화도 이루고 또 그 과정에서 희생을 당하신 수많은 분들께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서로의 공로를 인정하는 타협이 아쉽다. 캐나다 살면서 부러운 점은 서로서로가 각자의 삶을 존중하기에 사회 갈등이 적은 것이다. 부모와 국회가 남을 욕하고 무시하면 절대 좋은 아이들 교육이 될 수 없다.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 특히 대화하는 방법을!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이다. 타협의 시너지가 일류 선진국을 만든다.
 
이번 남미 여행을 통해서 이 자원과 물자가 풍부한 대륙에서 인간의 지나친 욕망, 무지와 과욕이 가져온 폐해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또 위협을 피해 남미 여러 나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수많은 베네수엘라 난민들을 만났다. 도대체 석유와 이념이 무엇이기에 이들이 부모형제를 떠나 이 타국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가치 있고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살면서 또 여행을 하면서 언제나 던지는 화두이다.

남미 여행을 마감하며 여기 시인의 집에서 깊은 상념에 잠겨본다 - -

엘찰텐에서 피츠로이, 세로토레를 배경으로

우유니 소금사막

볼리비아 고원지대

마추픽추

이과수 폭포 (아르헨티나 쪽) 악마의 목구멍

Chilean Patagonia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아르헨티나 북서부 14색깔 오리노깔

파타고니아 엘 갈라파떼 페리토 모레노 빙하

세로 토레와 빙하호

파타고니아  갈라파떼 페리토 모레노 빙하

파타고니아 엘 찰텐 가는 길

볼리비아 고원지대 평균 4,000 미터

우유니의 원근감 없는 투명함

칠레 아타카마 사막 달의 계곡

우유니 소금사막, 우기에 가면 이 장면이 나온다

아름다운 볼리비아 고원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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