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연기에도 유행이 있다. 세대가 변하면 연기에 대한 대중들의 취향도 기호도 변하니까.
요즘의 대중들은 그 무엇보다 '진짜'에 열광한다. '진짜 같은 가짜'가 너무 많은 세상이라 그런 걸까?
이 시대 사람들은 '진짜'에 그 어느 때 보다 예민해져 있고, 집중되어 있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연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진짜 같은 연기', '진짜 같은 설정'의 영화나 드라마에 열광하며, 보다 자극적이고 새로운 이야기를 원하지만, 진짜 같지 않다면 금방 시시하게 생각해 버린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이야기를 좋아했고 서스펜스를 즐겨왔다. 정말 인류가 진짜 중의 진짜를 좋아하고 추구해 왔다면 가장 가까운 나의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하루종일 따라다니며 재미있어했을 거다. 하지만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리얼한 일상에는 관심이 없다.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법한 자극적인 스토리와 캐릭터에 열광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들어진 드라마에 열광한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이야기를. (요즘은 오히려 신문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더욱 만들어진 이야기 같기도 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 콘텐츠들 속에서 스토리와 캐릭터는 더욱더 본능을 자극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속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충격과 감흥을 주는 드라마나 영화는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들은 언제나 <진짜 인간>에 대한 주제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축이 된다. 그 축을 세우기 위해서는 진짜 인간이 겪는 극한의 감정들을 리얼하게 드러내는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뒷받침이 돼야 한다.
조금 빗나간 얘기이지만, AI로 인해 파업을 선언했던 할리우드 배우들과 작가들이 두려워하던 것은 어쩌면 AI가 따라잡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우리 인간들만이 가진 "진짜" 였는지도 모르겠다. AI가 정말 인간의 참모습을 어디까지 따라잡을 수 있을까? 앞으로 AI가 발전하는 속도는 점점 가속화될 거라고 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연기를 준비해야 할까?
살아있는 연기
실제 같은 연기를 기반으로- 일상과는 다른 극적인 호흡을 담아낸, 감격, 감흥,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연기
살아있는 연기란 무엇일까. 어떠한 것이든 생명이 있는 것은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 연기도 연출도 마찬가지. 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임을 동반한다. 생각이 움직이든, 마음이 움직이든, 눈물이 흘러 아래로 떨어지든.
이것을 연극이든 영화든 상관없이 배우는 꼭 알아야 하고 이를 위해 준비하고, 준비되어있어야 한다. 무턱대고 자연스러움에 취해 전체 극의 흐름을 깨는 연기는, 상대배우도 맥 빠지게 할 뿐만 아니라, 보는 시청자나 관객들에게도 뭔가 묘한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때문에 배우는 자연스럽지만, 극적인 순간에 극적인 호흡을 뿜어낼 수 있어야 한다. 배우가 연기는 자연스럽게 잘했는데도, 작품은 혹은 장면에서 밀도 있게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고 떠있는 경우가 바로 극적인 호흡을 만들지 못한 경우일 것이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는 차츰차츰 하나씩 소개를 해 보도록 하겠다.
최종적으로는 이러한 배우가 되기 위해 목표를 잡고 훈련을 해 나가야겠지만, 그보다 먼저 배우가 되려면 제일 처음 준비해야 할 사항이 있다. 원대한 목표를 잡았다 하더라도, 시작의 기반을 잘 다져놓지 못해 삐딱한 주춧돌 위에 무언가를 쌓기 시작하면 얼마 못 가 그 탑은 쓰러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그 기반이라는 건 대체 무엇인가?
배우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자신을 빛나게 하고, 연기를 잘하든 못하든, 더욱더 이 일을 사랑하게 되는 그 기반.
흔히 얼굴이 좀 예쁘거나 잘생기면, 키가 좀 크거나 멋지거나 하면 배우해보라는 얘기들을 주변에서 많이 듣고, 그래서 정말 배우를 해볼까 생각하고 시작하는 분들도 많다. 어떤 감독은 배우의 90%는 외모, 10%는 목소리라는 말도 했더랬다 (그만큼 배우의 외형적인 조건이 역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라는 의미)
하지만 이 모든 조건들보다 우선되는 전제조건은 바로,
그것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 객관화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도록 배우를 즐겁게 하려면 자신을 객관화시키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예쁜 외모 멋진 외모와 목소리도 물론 굉장한 자산이다. 하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배우가 하나같이 다 눈코입이 조각 같고 인형 같다면, 과연 그 영화나 드라마에서 방금 얘기했던 "인간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고 본다. 특히나 점점 완벽한 외모의 AI배우들이 판을 칠지도 모를 이 마당에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오히려 인간미가 없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될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는 다른 사람과 다른 '나만이 가진 특색'을 알고 사랑해야 한다.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외모, 목소리, 키, 성별이 '상수'라고 한다면,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 헤어, 분장, 옷, 인물의 신체적 습관, 표정은 '변수'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상수에 해당하는 것들을 변화시키려고 하면 괴로울 따름. 내가 가진 눈코입과 목소리 나의 신체의 형태가 대중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 눈코입, 목소리, 신체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 첫 번째 객관화 작업이다. 전형적인 아름다움, Beauty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매력, Attractive을 말하는 것. 나의 매력, 나만이 가진 매력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적극적으로 '나'라는 배우를 내가 먼저 사랑할 수 있으니까.
배우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면, 혹은 현재 적지 않은 세월을 배우라는 직업으로 보냈다면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이것이 준비되어야만 한다. (여기서 본인이 어떤 작품에 출연했었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과거는 과거일 뿐. 지금도 당신의 얼굴은 바뀌고 있다. 현재의 자신을 규정지을 수 있는 단어를 적어 낼 수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나는 프로배우와 아마추어 배우가 나뉜다고 생각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일단, 이미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다'면 당신을 배우를 할 준비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배우라는 직업은 속속들이 자신을 알아가고, 감추고 싶은 것들도 들추어 꺼내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배우를 해 나가면서 겪을 아주 작은 팁부터, 인생을 바꿀만한 꿀 팁까지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이곳이 나의 이야기를 먼저 풀어놓고, 더 나아가 여러분들의 이야기로 함께 생각을 나누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연기도 시대에 따라 그 시대의 관객들이 좋아하는 연기가 있기도 하고, 또 연출자나 배우에 따라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연기가 다르기도 하기에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가 함께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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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여러분들. 예민해져야만 하는 직업이라 어쩌면 다른 사람보다 인생을 더 고통스럽고 힘들게 느끼는 걸 수도 있어요.
우리의 고통이 큰 만큼 기쁨과 행복도 두 배, 세 배로 느낄 수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잘하고 있고, 제대로 가고 있는 거예요.
무엇보다 정답을 가지고 있는 '당신'을 믿으세요.
제가 생각하는 연기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공유하며,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요.
감정에 갇히면 한없이 가라앉는 여러분들에게 오히려 멀리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