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한 날

18년 3월 7일의 일기

by 애로

긴 긴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드디어 입원하는 날.

'드디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나는 아직 살아있구나.


약 한 달 전 목에서 만져질 만큼 커진 2cm가량의 멍울을 발견했다. (그날따라 목을 만지작대다 왼쪽과는 다르게 오른쪽에만 볼록한 무언가가 튀어나와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날따라 집요하게, 그 부위에 어떤 내장기관이 있는지 무엇이 잘못되면 그렇게 되는지를 검색했다.) 그리고 얼마 후 엄마와 언니를 만나 외식을 하는 날 나는 이 사실에 대해 말을 꺼내 놓았다. 엄마는 금세 안색이 안 좋아져서는 얼른 검사를 예약하라고 했다.

왜인지 모를 심각성을 느낀 나는 지체 없이 동네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결과를 듣는 날, 선생님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모양이 안 좋으니 세침검사를 해보자고 말했다. 세침검사는 주사기로 결절 부근을 찔러 세포를 뽑아가는 검사였는데, 아프지 않다고 했지만 눈물이 주르륵 흐르게 아팠다. 그러나 검사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건 시간이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지옥 같았다. 시간은 느리다 못해 기어가는 듯했다. 하루에 수십 번도 더 갑상선 암에 대해 검색해보고, 이런저런 글들을 읽어댔다.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열흘 후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혼자 가겠다고 우겼지만 결국 엄마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다. 결과는 암이었다. 놀랍지 않았다. 지난 열흘 간 수십 번도 더 나는 암에 걸렸고 죽었고 깨어났기 때문에. 그러나 갑상선 암 중에서 '수질암'이 의심된다는 예상치 못했던 소견을 들었다. 암까지는 예상하고 마음 다잡고 갔으나 흔히 발생하는 여포암이나 유두암이 아닌 수질암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렴풋이 읽었던 글 중에 수질암은 생존확률이 낮다고 했던 거 같은데, 알 수 없는 감정에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엄마가 보는 앞에서 울면 엄마가 너무 속상할 테니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한 뒤 화장실에서 다급하게 눈물을 훔쳤다.

집에 가는 길, 버스에서는 심장이 덜컥대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시작된 대학병원에서의 여정.

CT촬영, 흉부 엑스레이, 혈액검사.

또다시 결과 기다리기.......

일주일 뒤 칼시토닌 수치가 애매하여 일단 갑상선을 떼낸 후 조직검사를 통해 정확한 병명을 판단하기로 결정.(수질암인지 아닌지)


비교적 최근인 2016년 말에 팔 수술을 해서 수술 자체가 두렵거나 무섭지는 않다. 다만 갑상선 수술의 부작용, 후유증 중 하나인 성대마비-즉 목소리의 변화나 심할 경우 목소리 안 나옴-가 무섭다.

목에 남을 긴 흉터도 조금은 두렵다.

애써 무덤덤한 척하려는 건지 진짜 괜찮은 건지 나도 헷갈린다.

(싫으면 어쩔 거야 수술은 해야 되는데ㅋㅋ)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라는 물음표를 갖게 되는 순간

현재의 나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노력한다.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힘들다.

끊임없이 무언가 다른 것을 생각하거나 자야 한다.

어제 약을 먹지 않아서일까

불안감과 우울감이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덮쳐온다.


그냥 현재의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내 업보이자 신의 뜻이라고 생각해야 그나마 두근대는 가슴이 진정된다.


지금 내 머릿속은


내가 암에 걸렸구나 (드디어 혹은 결국엔)

암이라니!

암만 그래도 25살인데 너무한 거 아냐?

하다 하다 이젠 암까지 걸리냐

갑상선 암이라 그나마 다행인 걸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암에 걸린 건 내 잘못일까?

암 걸렸는데 담배를 피우고 싶다면 어떡하지?

신은 대체 왜 완벽하지 않은 육신을 창조한 거야

흉터는 얼마나 길고 두드러질까

고양이들이 보고 싶어

혼자 있으니 무서워

전신 마취했을 때 하느님 좀 만나게 해 주세요


그러면 이 모든 답을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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