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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따비 Mar 24. 2017

11. 그들을 흘려보내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트리밍(streaming). 흘러가다.

이 단어를 어찌나 잘 지었는지 모른다.


요즘 콘텐츠들은 손안에 오래 '상주'하지 않다.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잠시 머물렀다가 흘러가듯 떠나버린다. 그들을 보내는 나도 딱히 아쉬움은 없다. 하나에 집착하고 있기엔 새롭게 접해볼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오히려 한두 개를 움켜쥐고 있느라 지불해야 할 비용이 아깝게 느껴진다. 지금의 내 생각은 그렇다. 예전엔 달랐지만.



# 카세트테이프에서 '멜론'으로


'멜론'의 정기권을 끊은 게 6, 7년 전이었던 것 같다. 카세트테이프나 CD 같은 앨범이 아니라 오직 음원을 위해 결제를 해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소리바다를 이용하던 오랜 습관 탓에, 아직 음악을 돈 주고 듣는다는 개념에 완전히 수긍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처음 정기권을 등록할 땐 결제정보를 입력하기가 영 탐탁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자동결제를 해놓고 보니 5,6천 원가량의 요금에 그리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신세계였다. 미리 다운 받아놓는 번거로움 없이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마음껏 음악을 검색하고 들을 수 있었다. 너무 편했고 또 풍요로웠다. 새로운 음악 감상 방식에 나는 빠르게 적응했다.



멜론의 장기고객이 되어가며 재생목록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곡들이 '스쳐 지나갔다'. 한 번 듣고 지운 것도 있었고, 지웠다가 나중에 꽂혀서 다시 넣어놓은 곡도 있었고, 이미 재생목록에 있는 걸 까먹고 또 추가해놓은 곡도 있었다. 내 이용권엔 다운로드 권한이 없었으므로 모든 곡들은 스트리밍으로 존재했다. '그들'이 나의 온전한 소유권 아래 있지 않아서일까. 문득, '그들'을 향한 애정이 참 얕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지우고 쉽게 추가하고 쉽게 잊는 것이다. 어릴 적 카세트테이프를 하나 사면 정말 테이프의 처음부터 끝까지 질리고 질리도록 들었는데. 아니, 이상하게 쉽게 질리지도 않았다. 한 앨범당 12곡이 있으면 그 하나하나가 소중했던 것 같다. 빨리 넘김 기능을 컨트롤하기가 불편해서였는지 좀 별로인 곡이 흘러나와도 뛰어넘어 듣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래서 그때 한창 듣던 곡들은 지금도 멜로디만 들으면 그 리듬과 감성, 가사를 기억한다.


그리고 스트리밍 음악에 익숙해진지 어언 7,8년. 그 시간 동안 기억에 진하게 새겨지고 마음을 오랫동안 건드린 음악이 몇 곡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앱을 새로 깔거나 멜론에서 다른 서비스로 옮기는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그간 즐겨 들은 음악의 흔적들이 여러 번 삭제되기도 했다. 듣는 곡 안 듣는 곡 마구 뒤섞인 재생목록을 한 번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엄두가 안 날뿐더러 즉흥적이게 된 음악 취향을 이젠 스스로도 알 수가 없어서 관두게 된다. 스트리밍은 분명 콘텐츠 소비방식에 있어 획기적이라는 사실을 소비자로서 깊이 공감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잊혀 가는 것들도 있다. 스트리밍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머묾(stay)? 움켜쥠(grab)? 잘은 모르지만, 막연한 그리움이든 실질적인 필요이든, 그에 대한 수요는 사라지지 않았다.



# 배부름 속 배고픔



요즘은 지니뮤직을 쓴다. 메인창에는 매일 새로운 앨범들이 나왔다고 소개되고, 실시간 차트도 매시간 바뀐다. 내 취향에 맞는 음악을 골라주거나 '오늘의 날씨에 어울리는 곡'들을 추천해준다. 글쎄, 어쩐지 요즘은 너무 많은 곡들이 눈앞에 범람하는 것, 그 와중에 지니가 매진하는 추천 서비스 역시 피곤하게 느껴지곤 한다. 조금 실망한 탓도 있다. 추천받은 곡들을 들어봐도 정말 맘에 드는 걸 발견하기 어려웠고, 그렇게 쉽게 곡을 추가하자마자 쉽게 곡을 지우곤 했던 것이다. 근본적으로 음악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너무 가벼워진 탓일까.


배부른 불평 같다. 다만, 스트리밍이 충족해주지 못한 '어떤 배고픔'은 있는 것 같다. 앨범 하나로 몇 개월을 듣고 mp3 하나에 고작 대여섯 곡이 들어가던 시절, 그 곡들을 듣는 시간이 행복했던 때와 비교해본다면. 양적 풍요로움이 꼭 전부는 아닐 것이다. 질적 풍요로움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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