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잔다르크, 작가 박정란
하얀 풀밭에 무수히 많은 구슬들이 흩뿌려져 있다.
이곳은 붉은 도마뱀, 혹은 여우가 지키는 곳. 문득 엿보게 된 그곳에는 피처럼 새빨간 여우가 구슬들을 품고 있었다. 아니, 여우는 죽은 것일까? 기도하는 것일까.
분명한 한 가지는 그것이 열렬히 구슬 혹은 알들을 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 욕망은 생명을 위한 것일까 혹은 파괴를 위한 것일까. 분명치 않다. 움켜쥔 손, 감은 눈이 말하는 원시적이고 은밀한 욕망의 순간과 마주하자니 묘하게 불편하면서도 왠지 눈을 뗄 수가 없다.
피가 생명이자 죽음의 상징이듯이 우리 안에 있는 욕망과 죄책감, 때론 아프고, 때론 숭고하고, 때론 저열하고, 때론 비겁하며, 향기롭고도 비릿한 수많은 것들 때문에 삶은 힘들면서도 아름답다.
산다는 것이 어떻게 몇 마디 말로 설명될 수 있을까.
작가 박정란을 만나러 간다. 역 앞에서 만난 그녀는 흐트러진 까만 머리칼에 다정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넨다. 세찬 바람에 익숙한, 자유로운 몽골 소녀의 이미지가 언뜻 지나갔다.
그림 속의 붉은 여우, 혹은 도마뱀. 혹시 그녀인 걸까? 작업실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니 집으로 안내한다.
거실 한편이 작업실이다. 그림들과 물감들이 쌓여있고 한쪽 벽면엔 공부 중인 미학 서적들이 가득했다. 다른 쪽은 주방이다. 주부에서 학생으로, 강사에서 화가모드로 금방 모드 변경이 가능한 공간이다.
대학교 1학년인 큰딸은 바쁜 엄마를 위해 점심으로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내민다. 저렇게 큰 딸이 있구나. 작가의 일상이 얼마나 바쁘게 돌아쳐 왔을지 잠시 짐작해 본다. 한 가지 일만 해도 수많은 문제가 불시에 터지는 게 삶이다. 매년 개인전을 여는 화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 남편에겐 아내, 학생들에겐 선생님인 그녀. 1인 4역. 존경스럽다.
그런데도 저렇게 언제나 여유 있어 보이다니 그녀의 에너지가 부러워진다. 갑자기 작가에게 뚜루루 전화가 온다. 이런. 현장에서 사고가 터졌어요. 그녀는 전화로 남편과 일을 수습하기 위해 이런저런 상의를 한다.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슈퍼우먼의 인간적 면모구나. 그녀는 컴퓨터로 은행 업무를 몇 가지 보고 현재 상황을 대략 설명해 준다. 어쩌면 만남의 날짜를 잘못 잡은 게 아닐까. 미안해졌다. 그녀는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으니 괜찮아요. 일종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는데 그게 오늘일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금세 얼굴이 밝아져서는 웃으며 말한다. “제가 남편과 2년 전부터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했어요. 아티스트가 사업이라니 조금 안 어울리죠?”
그리고 그녀는 생각난 듯 나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거기엔 ‘대표이사 박정란’이라고 쓰여 있었다. 하얗고 평범한 명함. 그녀는 예술가의 안목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 꽤 멋지다고 했다.
“전 스스로에게 엄격한 명령을 내려요. ‘나는 예술가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예술이어야 한다’라고요. 돈을 버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일과 반찬을 만드는 것도요. 아무리 사소한 일들이라도 다 그렇죠. 캔버스에만 예술이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요.” 작가는 5년 동안 한시적으로 남편의 사업을 도우며 작품 활동을 병행할 예정이다. “남편이 그러더군요. 자신을 돕는데 쓰는 시간이 아깝지 않느냐고요. 근데 전혀 아니더라구요. 오히려 환기가 되니 집중이 잘 되고, 시간이 없으니 효율이 좋아져요.”
게다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사실도 깨달았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예술의 가치를 알게 됐어요. 예전엔 예술이란 게 사람에게 어떤 효용이 있을까, 어떤 가치가 있을까 고민했거든요.
하지만 삶의 다른 땅에서 미술을 바라보니 오히려 확신이 생겨요. 힘들지만 예술은 분명히 가치가 있다는 것을요.”
치열한 삶에 정면 승부하는 작가를 보니 그림이 이해된다. 화면 안의 그림은 화려하면서도 섬뜩하다. 평화로우면서도 어쩐지 위험해보인다. 생명과 죽음, 순수함과 기괴함의 이중성은 아름답고도 잔혹한 삶과 다름없다. 쨍하고 깨어질 듯한 날카로움과 포근함, 소름끼치는 아름다움, 위험함 속의 안락함, 공포 속 친숙함. 이것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우리는 당황하며 매혹되고 상처받지만 결국 이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산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생명인지 죽음인지 우리는 모른다. 모든 것을 암시하는 작가의 그림처럼. 씩씩해 보이는 그녀는 스스로의 상처와 기쁨, 아픔을 붓질을 통해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그녀는 곧 비즈니스 사무실 한편에 작업실도 옮길 생각이다. 일하다가 돌아서서 그림도 그릴 수 있게. 그녀에게는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서로 방해가 되지 않는다.
“더 자유롭고 싶어요.”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며 토해내듯 그녀가 말했다. 내 주변의 여성 작가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자유는 세계일주 여행이나 주부로서의 의무의 해방이 아니었다. 더 많은 것들을 해내고 싶다는 말이었다. 살아있는 동안 남김없이 열정을 불사르기를 원한다는 소원이었다. 순간 내 심장까지 두근거렸다. 그녀의 얼굴 위로 아까 본 몽골의 바람이 또 한 번 스쳤다.
*작가 박정란은 누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4년 문화일보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 ‘자아의 이중구조’를 시작으로 뉴욕에서 ‘Korea art festival’, 2010년 포스코 미술관 ‘에로스의 눈물’ 등을 주제로 꾸준히 개인전을 열었다. 이외에도 네덜란드와 독일 등 수많은 아트페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최근 네이버 오늘의 미술 ‘우리 미술의 걸작’에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홍익대, 충북대, 청암예술학교에 출강 중이며 주식회사 이연솔루션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