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거기 있었다.
어둠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처음부터 나는 어둠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 빛 같은 순간이 있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건 나조차 희미해진 기억이다. 기억보다 오래 남는 건 느낌이라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건 차가운 등, 닫힌 문, 돌아서던 발끝, 그리고 늘 뒷모습만 보여주던 너였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너를 오래 기다리며 아주 조용히, 아주 오래도록. 너는 몰랐겠지. 아니, 모른 척했겠지.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말할 줄 몰랐다. 아니,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러다 어느 날, 너는 내 앞에 서서 물었다.
“너… 누구야?”
그 물음에 나는 잠깐, 몸이 움찔했다. 처음이었다.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나는 본능처럼 몸을 굳혔다. 가시가 돋았다. 날카로움으로 나를 숨겼다. 그것밖엔 할 줄 몰랐다.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왔으니까. 너는 조금 당황한 얼굴이었다. 아프지 않냐고 묻지도 않고, 왜 그러냐고 따지지도 않고, 그저 미안한 얼굴을 했다. 그런 너의 얼굴이 나는 더 미웠다. 미안할 거면 왜 그토록 나를 외면했느냐고. 오래도록 나를 내버려 두었으면서. 나는 미웠다. 사실, 네가 너무 미웠다. 그런데 그 미움을 내가 지키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미움이 내가 살아있는 증거가 아니었을까.
너는 그런 나의 손을 잡았다. 참 어리석은 사람. 참 따뜻한 사람. 그 온기에 나는 그만, 눈이 생기고 코가 생기고 입이 생겼다. 나에게도 얼굴이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아, 나는 말할 수 있는 존재였구나.
나는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 이야기를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내가 어디서 태어났고, 어떤 기억을 먹고 자랐고, 왜 이렇게 뾰족해졌고, 왜 이렇게 오래 머물렀는지. 그리고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떠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고. 나는 그냥 네가 나를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라고.
아주 오래,
아주 오래도록.
그런데 그 순간, 너는 울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용히. 그러다 참을 수 없다는 듯, 엉엉, 서럽게, 오랫동안 눌러두었던 울음처럼. 나는 그 울음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처음엔 조금 당황했고, 조금 어색했고, 조금 멀리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울음이 내 마음을 조금씩 적셨다. 나는 알았다. 그건 내가 울고 싶었던 마음이기도 했다는 걸.
울음은 거기까지면 돼.
눈물은 흘렀으니, 이제 비워내면 돼.
앞으로의 길엔
조금 더 빛이 스며들기를,
조금 더 너답기를.
그리고 이제,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
아주 오래, 네 안에 머물던 나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