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주 오래전, 아주 멀고 먼 은하계에...

by 비둘기

나는 지정성별 남성인 논바이너리 데미섹슈얼 그레이로맨틱이다. 그리고 나는 고지능자다. 잠깐. 당신이 내게 어떤 질문을 하게 될지 맞춰보자. “완전 기억능력 같은 것 있어요?”,”성욕 자체가 없는 건가요?”, “사랑이 무뭐라고 생각하세요?”, “명문대 출신이세요?”.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래와 같다.


“아니요. 아니요. 잘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으레 이어질 만한 질문이 있다. “그래서 네가 여자라는거야?”, “트랜스젠더? 비슷한 거야?”, “네가 정말 ‘여자’와 자는 ‘남자’ 면 너는 그냥 보통 사람인 것 아니야?”, “암튼 머리 좋으면 좋은거 아니야?”


나도 안다. 장황한 설명은 모두를 피로하게 만든다는 것을. 복잡하고 힘겨운 사회에서, 넷플릭스를 보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넷플릭스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는 대신에 알록달록한 깃발이 나부끼며 시작하는 뜬 구름 잡는 느낌의 설명문 - 성 소수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설명문 말이다! - 을 읽는 데에 자유 시간을 허비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당사자성에 기반한 농담입니다. 혹시나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당신은 아마 대형 TV에 중계되는 야구 경기를 보면서 여자 얘기, 남자 얘기, 넷플릭스 얘기, 연예인 이야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Nonbinary_flag.svg.png 알록달록한 깃발의 예시 1 - 논바이너리 플래그


사실 나도 그 자리에 끼고 싶다. 시시한 안주를 씹으며 연예인 얘기에 웃거나 화를 내고 싶다. ‘그것 참 게이 같다'는 추임새도 덧붙이고 싶다. 두 시간 동안 내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모두를 웃기고 싶다. 자리가 파하고 나면 우정이나 친밀감, 따뜻한 연결감 같은 것들을 들고 집에 가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장황하고 복잡한 설명을 할 필요 없는’, 쿨하고 단순하고 명쾌하며 평범한 사람이길 진심으로 바랐다. 별 다른 설명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연기를 시작했다. ‘남성'인 척, 일반적인 화제들에 흥미가 있는 척. 그리고 자리가 파하고 나면 항상 못다 한 이야기들이 대한 갈증을 들고 돌아갔다.


내 친구들은 지금쯤 ‘잘 ㄹ들어 갓ㅅㅅ지?’ 따위의 카톡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나는 못다 한 이야기들이 남았다. 책상 앞에 앉아 SETI 프로젝트와 같은 전파를 보낸다. 세상의 어느 누군가 한 명쯤은 이 이야기들을 듣고, 해석하고, 답신해 주길 바라면서.


“얼마 전 제법 가까운 지역구에…”


ChatGPT Image 2025년 7월 25일 오후 10_12_12.png SETI 프로젝트.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으려는 시도들.

* SETI 프로젝트 주소

https://www.set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