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Dear Demisexuality

사랑하는 내 데미섹슈얼리티에게

by 비둘기

사랑하는 나의 데미섹슈얼리티에게.


연애 이야기. 와! 모두가 흥미로워하는 바로 그 주제 말이에요! TV를 볼 때도, 유행가를 들을 때도, 고전 소설에서도 누구나 그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안타깝게도 저는 그런 주제에 대해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특히나 영상 매체를 볼 때에는 더더욱. 주인공들이 갑자기 서로를 빤히 응시하다가, 입을 맞추고, 이윽고 같이 성관계를 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요. 그런 장면들이 싫었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저는 그런 장면들이 나와야 할 인과관계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대충 정적 > 눈 맞춤 > 입맞춤 > 잠자리를 보여주면 ‘저 사람들은 연인 관계임’을 효율적으로 보여줄 수 있나 보다.. 했습니다.


hmmteresting

성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상세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네요. 다만 그러한 컨텐츠에 나오는 행동들을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누군가와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연결 짓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보통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럽게 잠자리를 할 수 있었을’ 상황을 많이 겪었거든요.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섹시함’ 에게.


관용적 표현이라 생각했던 용법이 알고 보니 나 빼고 모두가 알고 느끼던 세계관이었던 건에 대하여! 정말로 저는 ‘몸매가 좋고 얼굴이 예쁘거나 잘 생겼으며, 활력이 넘치는 사람’ 에게 하는 상투적인 비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사람들은 그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과 실제로 ‘자고 싶다’는 기분을 느낀다면서요? 왜 아무도 저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었는지. 아마 다른 분들에게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었겠죠.


저는 매일 이방인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 혹은 타인의 섹시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혹은 저와 성애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ex: 플러팅)을 하려고 할 때마다, 저는 외국어로 진행되는 스탠드업 코미디 프로그램 방청객이 되어 맥락만 보고 억지로 웃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눈치가 없다’, ‘잔뜩 헷갈리게 해 놓고서는 손을 잡지도, 안아주지도, 고백하지도 않는다’던가, ‘남자답게 속옷 좀 잘 풀어보라’던가, ‘나만 밝히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한다’ 던가 하는 말들이요.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립니다. 제가 잘 몰랐습니다.


다시, 사랑하는 나의 데미섹슈얼리티에게.


사랑 없는 사이에서 성애적 맥락(신호?)을 주거나, 받거나, 읽고 해석할 능력의 완벽한 부재. 제게 데미섹슈얼이란 이런 의미입니다. 이쯤에서 누군가는 제게 질문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슨 느낌”이냐고요.


저도 모릅니다. 없음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 스스로에게도, 여러분께도 말입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서로 아주 자연스럽게 성애적 신호를 주고받거나 읽어낼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이젠 충분히 알 것 같아요. 제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항상 돌아오던 “도대체 무슨 느낌”이냐는 질문, ‘외적 이상형’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 남자는 어떻고 여자는 어떻고 하는 SNS 찌라시 같은 것들로부터 충분히 귀납 추론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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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유성애자 여러분들이 알려주세요. 여러분들이 이상형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어째서 ‘쌍꺼풀이 있는지’, ‘키는 어느 정도 되는지’ 등과 같은 아주 구체적인 조건들이 붙는지, 특정 아이돌 멤버의 섹시함에 대해서 밤을 새우도록 토론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특정 대상이 정말 마음에 든다면, 별 다른 감정적 공감대 없이도 자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는지 말이에요.


물 한 잔만 하고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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