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 if you try sometimes you just might
저는 지정 성별 남성입니다. 사회적으로도 남성으로 간주됩니다. '논리와 놀자!' 담화에서는 논바이너리로서 느꼈던 고통과 불쾌감, 외로움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논리'라는 도구를 통해, 왜 제가 자신을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했는지에 대해서도 말씀드렸어요.
Pride parade. 성소수자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성소수자들을 알리기 위한 행진입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몇 번 참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제 소수자성에 대해 자긍심이나 자부심을 느끼진 못했어요. 제가 타고난 특질들 때문에 남들과 쉽게 어울리는 게 어려워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혹은 좀 더 강한 연대감이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집단에 속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도 생각했어요.
논리.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도구입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사랑하는 이 도구 덕분에 저는 제가 썩 원하지 않던 형태로 저를 정체화했습니다. "나는 절대로 정상성 세계관에 융화될 수는 없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어 씁쓸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제게는 세상이 거대한 젠더 가면 무도회 같습니다.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두 종류의 가면을 쓰고 가면이 상징하는 존재를 연기하는 행사 말이에요. 가면이 충분히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이지 않다면 놀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아냥을 듣죠. 대중적이지 않은 형태의 가면을 보고는 '드레스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비난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가면을 쓰고 무도회장에 입장하더라도 여전히 그들은 여러분의 가면을 품평할 수 있어요. "가면과 행동이 어울리지 않는다", "남성형 가면 치고는 장식이 너무 화려하다" 같은 이야기들이 되겠네요.
어떤 사람들은 가면 없이 무도회에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남자 혹은 여자로 지칭하니까요. "나는 할 때면 하는 남자야" 같은 허세 대사라든가, 젠더와는 전혀 상관없는 장소에서 스스로를 남자 혹은 여자로 지칭한다든가, '테토녀', '에겐남' 같은 용어로 자신을 부르는 경우들이 그렇습니다.
어쩌면 이들 또한 저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을 수도 있어요. 파티가 끝난 뒤 집에 돌아가서 "오늘도 여자(혹은 남자) 노릇하느라 지긋지긋했어" 같은 혼잣말을 내뱉는 거죠. 하지만 이들의 숫자와 연기의 자연스러움을 볼 때, 이들은 스스로가 남자 혹은 여자라고 믿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추론일 것입니다.
아아, 또 갑갑한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고 말았네요. 비둘기, 자신이 좋아하는 도구를 통해 자신이 영원히 정상성 세계로 편입되지 못하리란 사실을 밝혀내다! 그렇지만 이번 이야기도 해피 엔딩으로 끝날 거예요.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며 결론을 내리려는 자세. 그것 덕분에 저는 제가 시스젠더들처럼 세상과 어우러지지 못하리란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만약 그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저는 '평범한 남성'처럼 보이려고 행동하거나 말을 했겠죠. 적절한 결론을 낸 덕에 저는 남성을 연기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제가 하고자 하는 일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태도. 그것 덕분에 저는 제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논바이너리 정체성 그 자체. 남들보다 좀 더 일찍 위화감을 느꼈던 덕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더 일찍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입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고 싶은지도 함께 알 수 있거든요. 반대로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과감하게 포기할 수도 있고요.
앞으로 저는 젠더 가면 무도회에 가면을 쓰지 않고 입장할 거예요. 제 가면에 대한 품평에도 더 이상 연연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면 무도회의 규칙에 따르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것들은 더 이상 저와 제 행복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