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been living to see you
오랜만에 뵙습니다! 무려 일주일, 아니 한 시간 만이네요. 우선 지금까지 제 쇼에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더 드릴지 많은 고민을 해보았어요. 사실 지금까지 제가 늘어놓은 저의 정체성 - 논바이너리, 고지능자, 데미섹슈얼, 지정 성별 남성 - 과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정체성 - 모국어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 군대를 경험한, 기술에 익숙한 - 만으로도 제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 같거든요.
고민해 보았습니다. 어떠한 의도로 처음 이 쇼를 기획했는지. 왜 제가 매주 목요일 오전마다 이렇게 무대에 올라야 하는지.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자기 계발을 하는 대신에 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대본을 쓰고 있는지. 현실 세계에서 어떤 것을 이루지 못했기에 직장인이자 쇼 호스트로서 이중생활을 해야 하는지 말이에요.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종종 쓰곤 했습니다. 네이버에서 도서/영화 평론 블로그를 운영하며 일 방문자 평균 100명을 기록했습니다. 교내 신문 등에 제 글을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대학교 과제 리포트는 항상 제 이야기를 깊게 녹여낸 에세이 형태로 작성했습니다.
글을 읽어주셨던 분들의 호평과 응원이 생각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나의 솔직한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제겐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겐 죄송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쇼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 여러분들과 저 사이의 비밀이거든요. 저도 다른 공개 코미디 쇼처럼 개인 SNS에 행사 일정을 업로드하고, 홍보용 숏폼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이 쇼를 진행하고 있는 이유 말이에요. 우선 ‘제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이미 제가 누구인지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는 이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으니까요. ‘제 정체성을 소개’하는 것 역시 그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학술적인 담론들은 이미 수많은 젠더학 서적들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제 정체성을 이해시키고 싶다’는 것 역시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와 제 정체성을 이해시키고 싶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사례들을 바탕으로 제 생각을 말씀드렸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갑갑함의 해소. 그를 위해 이 쇼를 기획했던 것 같습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쌓아왔거든요. 제가 누구인지, 저와 같은 사람들을 뭐라 부르는지 알지 못했던 시절부터 느껴온 불편감과 위화감을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5회의 쇼와 인터미션을 통해 잘 풀어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쇼를 계속 이어 나가려고 합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숨은 의도가 생각났거든요. 바로 ‘나와 같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2부에서는 지금까지 훑었던 소재들을 기반으로 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 혹은 왜 그 때문에 - 제가 행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해요. 저와 같은 분들에게는 ‘그럼에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될 것이며, 순수하게 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에게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하는 해피 엔딩을 전달해 드리고 싶으니까요.
이 자리에 함께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귀한 시간을 내 제 부조리 코미디 쇼에 참여해 주셔서 말이에요. 덕분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첫 화부터 제 쇼를 들어주신 제 두 명의 친구에게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이 세상이 조금은 덜 외롭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아남아 줘서요.
바로 들어가보죠. 논리야 놀자!(reprise)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