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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망태 Jun 05. 2024

지긋지긋한 숙취의 아침

만약 거울치료가 금주에 도움이 된다면


  당신은 어쩌다 보니 눈이 떠졌을 것이다. 아직 깜깜한 새벽일 수도 있고 해가 밝은 아침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이 휴일이라면 좋겠지만 만약 평일이고 당신이 매일 아침에 규칙적으로 출근을 해야 하는 처지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왜냐하면, 당신은 어젯밤에 엄청나게 많은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일단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눈길이 닿는 곳에 휴대전화가 있다면 일단 다행이다. 그게 아니면 가방이라도. 가방도 휴대전화도 보이지 않는다면 약간의 당황스러운 마음과 함께 고개를 들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아마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머리를 들어보니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목은 쩍쩍 타들어간다. 분명히 말하지만 타들어가는 느낌이면 천만다행이다. 왜냐면 빙글빙글 도는 세상과 더불어 위장도 울렁울렁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위장 속에 채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남아있다면 최악의 상황을 마주해야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눈을 뜨고 머리를 든 곳이 집이나 익숙한 장소 혹은 기억 속의 내가 잠든 곳이 아니라면? 그땐 최악의 최악, 아니 최악이라는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최악이 아니라 숙취이므로 더한 가정은 멈추도록 한다.


  일단은 가방과 휴대전화를 찾아야 할 것이다. 현대인의 필수품이 집약되어 있는 가방과 휴대전화를 찾지 못한다면 문제가 커져버린다. 마찬가지로 숙취에 집중해야 하므로 그것들이 방구석 어딘가에 얌전히 놓여있었다고 하자. (하지만 그것들이 사라졌고 다시는 찾을 수 없다고 상상한다면 거울치료에 더욱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일단 화장실로 향할 것이다. 알코올이 이뇨작용을 통해 가져가고 남은 몸속 수분을 배출하고 나면 손을 씻으면서 거울 속의 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얼굴은 부어있을 것이며 머리카락 상태도 꽤나 심란할 것이다. 만약 전날 밤에 샤워를 하지 못했다면 더욱 처참한 몰골이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볼 것이다. 이때 자신이 약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이런 아침에 오랜 시간 반복돼 왔다면 그 생각은 무뎌질 수 있다.


  샤워를 하기 전에 타들어가는 갈증을 잠재우기 위해 물을 한 잔 마시기로 한다. 물을 마시기 전에는 언제나 조금 걱정되는데 이 물 한 모금이 당신의 하루를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이 무리 없이 소화된다면 오늘은 조금 순조로울 수 있다. 숙취해소제가 있다면 더욱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이 시점의 숙취해소제야 말로 모든 고통을 이겨내는 슈퍼물약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위장이 모금도 소화시킬 없이 민감해진 상태라면, 그리하여 모금 마신 물에다가 위를 가득 채우고 있던 노란색 위액이나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들까지 얹어서 다시 내보내려고 한다면, 혹은 내보냈다면? 다시 한동안은 다시 잠자리에 누워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것이다. 그와 동시에 본격 참회 타임이 시작될 것이다.


  당신은 기억을 더듬어보게 될 것이다. 어젯밤의 일들을 빨리감기-되감기하며, 무리 없이 생각나는 시간들은 빨리 넘기고, 그러니까 언제쯤부터 취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지난밤을 즐겁게 보냈다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더없이 지루하거나 심지어 누군가 실수라도 했다면 괴로움은 더더욱 커져만 갈 것이다. 캐나다의 작가 쇼너시 비숍 스톨은 그의 『술의 인문학 Hungover (2018년)』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 클레멘트 프로이트Clement Freud의 말을 인용해 숙취를 이렇게 설명한다. 

  “‘술 취했다’는 너무 많이 마셨을 때를 가리킨다. 반면에 ‘숙취Hangover’는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취했었는지 기억할 만큼 정신이 든 상태를 뜻한다.”

  프로이트는 이 문장을 통해 섬뜩한 진실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취했었는지는 기억하지만 나 자신이 얼마나 취했었는지는 논외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양심을 가진 사람이므로 자신의 모습 또한 기억 속에서 외면할 수 없다. 때로 이불킥을 하며 돌아누울 때마다 함께 울렁이는 이 세상과 내 위장을 부여잡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계를 바라보면서 출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가늠해 보다가 택시 탈까, 월차 쓸까, 반차면 되려나 고민하는 사이 딱 지구가 이대로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지금은 간혹 웃으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이 상상은 2n년 동안 수없이 반복해 온 나의 '지긋지긋한 숙취의 아침'의 고백이다. 상상이 아닌 실제였던 수많은 아침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내 미래에 없을 아침. 만약 당신이 금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술 마시기 전에 이 글을 한번 떠올려 본다면, 다음날 아침의 지긋지긋함을 상상할 수 있다면 술을 딱 끊지는 않아도 절주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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