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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엽 Aug 07. 2024

삶과 죽음, 냉정과 열정 사이

수림아트랩 재창작지원 2024《낮은 휘파람, 박제된 손》

한바탕 폭우가 내리고 비가 멎자, 기다렸다는 듯 매미가 세차게 울어댄다. 종묘의 담벼락 옆, 습한 공기를 헤치고 서순라길을 걷다 도착한 수림큐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서먹한 공간에 느껴지는 고요한 기운이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었다.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간다는 숙명을 맞닥뜨린다. 죽음이라는 천편일률적인 결말. 다만 죽음에 도달하기까지는 각자 다양한 과정과 관점이 존재할 테다. 두려움, 회피, 공허, 우울과 절묘한 환희, 충동, 새로움 등 유사한 듯 미묘하게 다른 감각들을 나날이 갱신하면서 말이다.


2024 수림아트랩 재창작지원 전시 《낮은 휘파람, 박제된 손》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두고, 이를 말하는 젊은 작가 두 명의 상반된 방식을 다뤄냈다. 일상적인 물건이나 파편들을 통해 이미 사물을 통과하고 지나간 시간을 은유적으로 애도하는 정수 작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생에 대한 집착을 한 쌍으로 보고 깊은 성찰을 제시하는 김희욱 작가. 두 작가의 세계관은 가벼우면서도 묵직하기도 한 삶과 죽음의 형태를 교차하며 그려내고 있었다.




낮은 휘파람
Low Whistle
-
하얗게 소멸한 시간에 대하여
정수

정수, <나른한 죽음, 계속되는 경련 Lazy Death, a Chain of Spasms>,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Found object, Mixed media, Grape, Ticking light, Shadow


이미 타버린 초, 은박지 조각, 바람 빠진 풍선, 와인 코르크 등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고 버려진 듯한 각종 쓰레기. 1층 공간에 들어섰을 때, 일회성 날 것의 느낌이 나서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딱히 좋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생각이 달라졌는데, 미감이 실려 있기도 했고 ‘누구의 생일이었을까? 또 그 생일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였을까?’란 물음을 스스로 던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정수 작가는 자신의 글로 서사와 캐릭터를 설정하고 나서 시각 매체로 해체해 시청각적 작품을 만든다고.


정수, <나른한 죽음, 계속되는 경련 Lazy Death, a Chain of Spasms>,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Found object, Mixed media, Grape, Ticking light, Shadow


녹슬어가고 있는 미술대회 기념 메달과 썩고 있어 날파리가 꼬여있는 청포도 등 지나가고도 계속 흐르는 시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현대 문명 속에서 물질을 소비하는 우리의 태도를 전시하는 것 같기도. 탐욕적이고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특성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것인가 싶었다. 사람은 본인의 결핍을 손쉽게 물질로 채우려는 경향이 있고, 그렇게 발생한 쓰레기를 처리하는데도 돈을 쓰고 있는 상황이니까. 이처럼 작가가 내는 은밀한 수수께끼에 수용자가 응할 수 있는 여지, 가벼워 보이지만 냉소적인 사유의 지점을 발견했다.


전시장 곳곳에서 발견되는 속옷도 뭘 의미하는지 의아했는데, 전시 연계 퍼포먼스 제목인 <더 많은 섹스, 더 없을 생일 More Sex, No More Birthdays>을 보고 이해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선 정수 작가의 텍스트 8편을 일시적으로 공개했다고.



정수, <포토스라는 이름의 신 A God Named Pothos>,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Mixed media, Soundscape(4 channel), Video(Edited version), Natural light and shadow *Video original source: <Steamboat Willie> Public domain, Disney


공간의 주인이 먼 곳으로 떠나버렸나? 설치 작업 <포토스라는 이름의 신>은 흰 천으로 뒤덮은 가구와 생활가전이 들어선 백색 공간을 보여준다. 포토스Pothos는 그리스 신화 속 여러 사랑의 형태 중 부재하는 것에 대한 갈망을 관장하는 신이다. 새하얗게 질려버린 듯 정적인 공간은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뜻한다고. 반복 재생되는 TV나 돌아가는 오브제를 두어 동적 요소를 가미했으나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맥락으로 읽혔다.


정수 작가의 비디오 작업 <사육장의 사람>(2023)에 나왔던 흙구덩이가 <포토스라는 이름의 신 A God Named Pothos>에 재등장한다.


누군가 숨겨진 보물을 찾고 있던 건지 몰라도 하얀 천이 덮인 탁자 위에 파헤쳐진 흙구덩이가 자리하고 있다. 이 공간에 있는 건 모두 인공물인데, 유일한 자연물의 등장이 납득되질 않았다. 그 외에도 제자리에서 돌고 있던 동서남북 종이접기는 왜 있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두 요소 모두 2023년 전시한 비디오 작업 <사육장의 사람>(2023)에 등장하는 시각 장치라고. 비디오 속에서는 각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번 설치에선 이미 그 서사가 관통하고 지나간 텅 빈 사물 혹은 서사가 남기고 간 허물로 바라보면 된다. 더불어 이 자체가 작가의 지난 작업을 회고하는 아카이빙으로도 작용한다는 게 새롭게 다가오기도. 뭔가를 감상할 때 작은 요소 하나하나가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지 고찰하는 습관이 있다. 정확히는 몰라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기류로 읽는 편인데 그런 내게 이 세계관이 흥미로웠던 건 분명하다.


 • 비디오 <사육장의 사람>(2023)



정수, <건초열, 한밤중 태양 Hay Fever, the Midnight Sun>, 135 x 160 x 12cm, Wood, Polycarbornate, Found object, Natural light and shadow




박제된 손
Stuffed Hand
-
붉고도 어두운 감정의 파노라마
김희욱

김희욱, <의자 Chair>, 107 x 189cm, Wood, Wood stain, Epoxy putty, Acrylic paint


어딘가 불안한 요람에 담겨있는 아이는 쉽게 잠들지도 못한다. 겉보기엔 안락해 보이는 요람이 한순간 부서지진 않을지, 그렇게 된다면 아이를 보호해 줄 또 다른 요람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걱정에 걱정을 더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희욱 작가는 전쟁과 죽음에 대한 공포, 현대인이 느끼는 부정적 감정과 이면을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낸다.


이번 전시 첫 번째 작품은 <의자>. 높은 탑과 아치, 성좌 그리고 거센 불길로 짐작해 봤을 때, 부와 명예를 누리면서도 더 높은 곳에 닿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꼬집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 하나가 전시의 전체 내용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누구나 전시장 바깥에서 볼 수 있게 통창 앞에 설치했는데, 이와 달리 파티션 뒷면은 자연광이 들지 않는 상태에 낮은 조도로 연출되고 있어 이면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전달하는구나 싶었다. 천장을 비추는 붉은 조명도 눈에 들어왔는데, 전시 기간 내내 매일 24시간 꺼진 적 없이 켜두었다고. 낮과 달리 늦은 저녁 시간대 거리에서 이 작품을 바라보면 느낌이 사뭇 다를 텐데 직접 보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만 남겼다.


김희욱, <박제된 손 Stuffed hand>, 32 x 40cm (ea.) x 8, Wood, UV resin, Epoxy putty, Water paint


앞서 언급한 <의자>의 파티션 뒷면에는 8개 작품으로 구성된 <박제된 손>이 설치되어 있었다. 상단의 4개 작품은 할퀴는 것처럼 힘이 들어가 있는 손 모양과 직선적 느낌이 강하다면, 하단의 4개 작품은 기도하듯 모은 손 모양과 몽글몽글한 곡선적인 느낌이라 대비가 느껴졌다.


김희욱, <무제 Untitled>, 62 x 85cm (ea.) x 4, Wood, Wood stain, Epoxy putty, Acrylic paint


1층에 전시된 <무제>는 기도하는 사람들과 다투는 사람이 반복 배치된 4개의 부조 작품. 고풍스러운 붉은 벽지에 걸린 어두운 색조의 목재 작품이라 숭고한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서 기억해야 하지만 묻어두는 것에 대한 숙연한 감정이 들었으나, 성찰에 대한 방식이 무조건 무거워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묵직한 아우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과거엔 뻔하게 느꼈을 비장한 무게감이 지금 시대엔 희소하게 다가올 수도 있으니까.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누군가의 욕심이나 갈망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공포를 느끼는 일상들, 전쟁의 역사가 반복되길 바라지 않는 마음이 뒤섞인 작가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김희욱 작가 전시 공간 1층에는 초, 지하에는 향이 놓여 있었다.


<탑>이라는 작품은 보자마자 흉측하고 징그럽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환 공포증을 유발하듯 까맣고 동그란 것들이 다닥다닥 따개비처럼 붙어 있는 모습이라니. 이렇듯 작가는 마주하기 힘든 불쾌한 감정이 드는 것들을 울퉁불퉁하고 뒤틀린 형태로 표현했다. 고사리문, 포도잎 장식 등 고급 가구에 쓰인 마감 양식들이 담겨 있어 꾸준히 작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1층에 놓인 작품보다 지하에 있는 동명 작품에서 칼끝, 사람의 뼈와 같은 날카로운 요소가 돋보인다는 점.


김희욱, <무제 Untitled>, 431 x 188 x 15cm, Wood, Epoxy putty, Water paint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다 음침한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아니나 다를까 어두컴컴한 공간에 입장하니 급격한 공포감이 몰려드는 게 아닌가. 게다가 예상치 못하게 울리는 커다란 물방울 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다른 관람객 역시 나와 같은 부분에서 놀라곤 했다고. 1층에서는 반복되는 근현대의 시간을 다뤘다면, 동굴과 같은 지하에서는 더욱 깊숙한 고대의 시간을 다루고 있었다.


동굴 벽화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부조 작품은 산이라는 자연물과 인간만 존재해 간단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무참히 죽임당하는 사람과 도망가다 붙잡히는 사람, 구원을 바라듯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사람 등 학살의 역사를 묘사하고 있다. 바닥에 놓인 작품 옆 은은히 타고 있던 향의 냄새를 맡으며 잠깐이라도 묵념의 시간을 가져봤다.


*작가와 관객 사이, 원활한 소통에 도움 주신 전시 지킴이 이시우 님께 다시 한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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