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혼자인 시간이 이토록 절실한가

나와 엄마라는 역할 사이에서

by 별밤

새해 첫날부터 이 꼴이라니

2025년 1월 1일 새벽 1시, 밤 12시가 지나서야 겨우 잠든 아이를 뒤로하고 노트를 펼쳤다.


화가 나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겨우 이 노트, 나에게 어떠한 대답도 들려주지 않는 노트,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 펼치고 쓰기만 하면 고요히 내 분노를 받아주는 노트뿐이다.


화가 난 상태로 새해 첫날을 보내다니. 어쩌면 모든 게 매끈해야 할 새해 첫날이라는 벽장 속에 갇혀서 더욱 처참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내가 화가 난 이유는, 겨울방학에 아이와 단둘이 종일 시간을 보내서다. 단 한순간도 혼자인 시간을 갖지 못한 채로 하루가 끝나서다. 새벽 1시에 겨우 혼자가 된 나는, 숨이 턱 끝까지 차서 헥헥대는 꼴로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Photo: Oliver Guhr, Unsplash




도대체 왜 이토록?

나는 왜 새해 벽두부터 이렇게 분노에 차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는 걸까? 정말 내가 이상하리만치,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고 있는 건가? ‘보통’ 혹은 ‘평균’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해서 내가 별종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한들, 그게 나에게 무슨 위로가 될 수 있나? 그냥 내가 이런데? 아니, 하루쯤은 혼자인 시간이 없어도 되는 거 아닌가? 스스로도 답답해서, 물었다. 도대체 왜?


아이와 종일 시간을 보내지만, 이 시간이 몰입도가 높거나 퀄리티 타임인가? 아니다. 긴 시간을 매 순간 몰입하면서 보낸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는 내 태도가 대충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엄마로서의 역할을 잘하고 싶다. 그래서 폰 알림이 궁금해도 참고,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 하나라도 더 시켜주려 하고, 기분이 별로여도 다정하게 말하려고 애쓴다. 태도는 진심이지만 완벽하게 몰입할 수 없는, 이 대-충의 모순 덩어리 시간을 견디고 나면, 오늘 하루를 '대충 보낸 시간들의 합'이 아닌, 적어도 어떤 것만은 괜찮은 하루였다고 마무리 짓고 싶다.


게다가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나는 나로 있을 수 없다. 내키지 않아도 움직이고, 내키지 않아도 말하고, 내키지 않아도 놀고, 내키지 않아도 나가고, 내키지 않아도 어둠 속에서 아이가 잠들기를 숨죽이며 결국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맞이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내키지 않은 상황들을 견뎠으면, 내키는 시간도 필요하잖아. 팽팽히 스스로를 조여온 고무줄에 질식할 듯할 때, 나는 폭발한다. 잠들지 않는 아이를 보며 “이제는 제발 좀 자자.”라고, 효과도 전혀 없는 말을 한다. 그냥 아이가 덜 기운차고, 더 빨리 잠들기를 바라야 할까? 나는 무엇에 더 희망을, 소망을 걸어보는 게 실망이 적을지 생각한다.


그러다 깨닫는다. 그래, 내 아이가 늦게 자고 에너지를 종일 뿜어내는 아이든 아니든, 나는 그냥 편안하게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고, 그걸 갖지 못했을 땐 경보가 울리듯 불같이 화가 나는 인간이구나.



결국 나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단순히 '혼자'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매일의 기분을 아이라는 타인이 아닌 내가 주체적으로 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운 나를 스스로가 얼만큼 견딜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아이와 종일 붙어있어야 하는 어느 시기까지만 이라고 한정 지어 생각해 본들 현재의 내가 이 매일의 한계를 마주할 때 도움이 될 리가 없다.


이로 인한 고통 또한 오직 나만 이해할 수 있다. 고로 이 문제의 답 또한 오직 내가 알고 있다. 낮 시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와 나를 분리하고 나만의 시간을 쟁취할 것, 저녁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찍 침대에 누울 것. 이걸 실행할 사람도 나뿐이다. 나를 챙겨줄 사람은 나뿐이다. 결국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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