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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봉주 Oct 24. 2021

손 닿는 곳에 예술

YardⅹLocal Stitch 프로젝트《Bed&Pieces》

 공예工藝는, 오랜 고민을 가진 단어입니다. '기능과 장식의 양면을 조화시켜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일(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뜻에서, 공예는 기능이 강조된 공산품工産品과 아름다움이 강조된 예술품藝藝品 사이에 서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양보하는 쪽은 예술입니다. 예술성을 아무리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일상에서 사용해야 하는 물건임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공예가 가지는 예술성은 점점 디자인design으로 타협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예工藝의 가치를 계속 공산품工産品의 영역에 양보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예藝는 자리를 잃고, 공工만이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공예는 '공예' 자체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익숙함과 낯섦 사이를 줄타기하며 느낌표를 던지는 예술의 가치를 안고 일상에 침투한 매개자媒介者. 이것이 '공예'의 숨은 정체가 아닐까요? 결국 참다못한 예藝가 공工에게 한마디 합니다.


 "야, 계속 내가 양보했잖아. 이번엔 네가 양보해."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이젠 최소한의 기능만 남기고 한바탕 춤판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호기롭게 마음껏 춤추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공工은 공工입니다. 공예품工藝品의 무대는 예술품과 다릅니다. 공예품이 전시되는 곳은 예술품과 달리 화이트큐브whitecube가 아닙니다.


(왼쪽) 1601호실 <Jinguk's Ball Pool>, (오른쪽) 1605호 <연결(緣結)>


Bed!


 "세상에, 어떤 전시공간에 침대가!!"

 "우린 어쨌든 생활용품인걸?"


 경악하는 예藝에게 공工이 속삭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예藝라고 하더라도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전시공간이라고 말하기 전에, 숙박공간인 방입니다. 침대와 수납공간, TV가 가장 먼저 자리를 차지한 공간에서 예는 어떻게든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1601호실 <Jinguk's Ball Pool>

 

1601호식 <Jinguk's Ball Pool>


 1601호실에 들어간 예藝는 우선 자신이 공工과 생활生活에 밀려 가장 먼저 타협해야 했던, 질감과 외향을 마음껏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오늘만큼은 예가 아름다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도 묻지 않기로 합시다. 


 반짝반짝하고 우둘투둘한 검은 의자와 검은 탁자(Six Legs Armchiar and Footrest_폴리우레탄, 레진, 에폭시_790x710x800mm, 460x500x400mm)를 마주했을 때, 모두가 이 둘이 의자이고 탁자임을 알지만, 쉽게 앉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옆의 주황색 북엔드(Face Bookend_폴리우레탄, 레진, 에폭시_145x100x250mm)와 노란색 북엔드(2-Ball Pot_폴리우레탄, 레진, 에폭시_135x135x245mm)는 이미 그 자체로 용도를 다 하는 예술품藝術品의 자태를 뽐냅니다.


 유연하고 미끈하지만, 우둘투둘하여 거친 질감이 느껴지는 박진국 작가님의 작품은 예藝가 공工에게 양보했던 다양한 외형 중 하나를 보여줍니다. 생활용품으로 사용되기 전, 매끈하게 마감되어야 했던 예藝의 아름다움의 의지는 유용성을 위해 희생되어 언제나 적당히 보기 좋은 수준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Jinguk's Ball Pool>에서는 예藝가 어린 시절의 순수하던 때로 돌아가 볼풀BallPool 안에서 뛰어놀던 것처럼 거리낌 없이 자신의 드러내며 놉니다.




1605호실 <연결(緣結)>


1605호실 <연결(緣結)>


 1605호실로 넘어옵니다. 예藝는 이미 만족한 것일까요? 평소의 공예품工藝品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1605호실에 놓인 수많은 작품들을 뜯어보면 예藝는 1601호실에 있을 때와 달리, 명상을 하듯 내면의 '의미'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집니다. 


 작품에 대한 연구와 구상이 담긴 종이가 책상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 주변에 다양한 필기구와 받침들. 어느 공간에든 쉽게 녹아들 것 같은 공工적인 외양이 두드러지지만, 결코 자기 색깔을 잃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침대 머리맡에 올려져 메모를 끼워두기 좋은 철판(궤도_스테인리스 스틸, 황동, 자석_255x50x55mm)과 그 위에 올려진 여러 자석들(달, 태양, 우주비행사_황동에 Black C 착색, 자석_26x26x20mm, 61x61x18mm, 20x40x24mm) 역시 세련된 존재감을 가지며 그 특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주변 작품의 존재감을 잡아먹지 않습니다.


 이구은 작가님의 작품은 일상용품에서 홀대된 '연결'을 강조합니다. '연결' 역시 예藝의 특징입니다. 예술藝術이 작품을 통해 작가와 관객을, 혹은 작품과 관객을, 나아가 가치와 가치를 잇는 특징을 가지듯, 이구은 작가님의 작품 역시, 예술이 가지는 연결을 담습니다. 이 때문에 각각의 작품들은 자신을 크게 드러내거나 죽이지 않더라도 주변의 물건들에 쉽게 어울립니다. 이 과정에서 연결된 작품과 관객은 서로의 가치 층위를 극대화합니다.




 18층 라운지


정채린_Punch-hole Mug_가입 성형과 석고 캐스팅, 백자 소지, 색유(유광)_137x30x80mm


 18층 라운지에서 정채린 작가님의 머그컵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1601호와 1605호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즐기고 온 예藝는 18층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공工을 만납니다. 그리고 정채린 작가님의 머그컵에 나란히 걸터앉아 예藝와 공工은 화해합니다. 외적 아름다움이 실용實用적 외양과 나란히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와 함께, 머그컵이 가지는 예藝적 특이성은 공간의 색을 바꿉니다. 카페 라운지에 예술관 한편 휴식공간의 분위기를 가져옵니다. 


 공예에서 뽐내는 예藝의 힘입니다. Bed&Pieces에서 예藝는 일상에서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자신의 특성을 끄집어냅니다. 나아가 예藝가 일상에 안착했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더 이상 자신을 희생시키지 않고도 공工과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그런 맥락에서 공예작품에 차를 담아 마시는 경험은 일상과 아름다움이 서로를 격리시키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로컬스티치 크리에이티브 타운 을지로(서울 중구 창경궁로 20 1601호, 1605호)에서 진행하는 YardⅹLocal Stitch 프로젝트 Bed&Pieces는 8월 25일부터 9월 24일까지 누구나 관람이 가능했던 작가의 방은, 9월 24일부터 12월 31일까지는 예약을 통해 숙박하며 만나실 수 있습니다.


/주최: Yard (https://www.instagram.com/yard.kr/), Local Stitch (https://localstitch.kr/)

/장소: 로컬스티치 크리에이터 타운 을지로 (서울 중구 창경궁로 20) (https://www.instagram.com/localstitch_creatortown/)

/참여작가: 박진국 (https://www.instagram.com/jinddaguk/), 이구은 (https://www.instagram.com/im_nine925/), 정채린 (https://www.instagram.com/l.i.m.a_b.e.a.n/)

/사진출처: 홍예지 (https://www.instagram.com/yeji_cu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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