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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숲 Sep 12. 2017

말 할 수 없었던, 말 하지 못했던.

그리고 이제는 말 할 수 있는.

이제훈 배우를 좋아한다. 그가 나온 작품들은 열심히 챙겨서 보는데 심지어 <점쟁이들>까지 봤으니까. 나름대로 열혈 팬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그의 작품들을 보며 느끼는 한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너무 무거워 진다는 것. 깡패 고등학생 역할일 때에도, 일제강점기 도쿄에 살고있는 조선인 역할일 때에도, 너무 '연기 하고 있음'이라고 힘이 들어가있는 무거운 연기가 아쉬웠다. 그런 아쉬움속에 찾아온 <아이캔스피크> 티저 예고편은 그야말로 반가웠다. 오래간만에 힘 뺀 이제훈의 연기를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연휴용 '깔깔깔 대잔치'를 담당해줄 킬링타임용 영화가 반가워본것은 또 처음인 것 같다.



브런치무비패스 시사회로 개봉 전에 이 영화를 만나볼 수 있었다. (무대인사를 하러 온 이제훈 배우를 직접 본것도 행-복-)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극명하게 바뀐다. 단순히 진상민원인 VS 원칙주의자공무원의 대립구도로 웃음을 유발하던 설정을 넘어 비로소 이 영화의 메세지가 드러난 순간, 영화의 제목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말 할 줄 몰라서 말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말 할 수 없어서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드디어 CAN SPEAK 할 수 있게 된 옥분할머니의 사연을 알게된 순간 영화관은 정적에 빠졌다. 아마, 아예 처음부터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모른 채로 영화를 봤다면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몇 배 더 커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기자시사회가 끝난후, 배급사는 이 영화가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기사화했고 불행한 나는 평소 영화보러갈 때 왠만해선 검색따위 하지 않고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하필 이 때 검색이란것을 하여 스포를 당해버린 채로 영화를 보았다. 그러나 상관 없다. 감동의 크기가 작아진 것 따위는.




중학생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20년 전이라니...) 열 명 남짓의 반 친구들을 모아 할머니들이 계신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집에 데려가 주신 적이 있다. 바람이 꽤 차가워진 초겨울이었다. 자원봉사 시간을 채우러 가는 길이었다. 그땐 나눔의 집의 의미를 잘 몰랐었다. 할머니들은 화장실 청소며 마당 청소를 하던 우리들을 난롯불 옆에 데리고 가 살짝 언 귤을 손에 쥐어주셨다. 그때 우리들은 '위안부 피해자'라는 의미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성'에 대해 무지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곳에 계시던 할머니들은 그저 나의 할머니, 옆집의 할머니, 그와 다를 것 없는 분들이었다. 아무것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들이 준비해간 재롱을 보고 웃음지으셨고, 맛있는것을 나누어 주셨다. 나는 한참 더 자란 후에야 할머니들의 삶을, 나눔의 집의 의미를 알게되었다. 우리를 보고 그렇게 웃음지으실 수 있게 된 것이 불 과 몇 해 전의 일이라는 것을, 그 전엔 숨어서 피해사실을 숨겨야만 했다는 것을.


어떤 비극의 역사 앞에, 무례하기 짝이 없는 몇 몇 영화가 있다. <아이캔스피크>는 그런 영화 앞에 비극을 상업적으로 팔지 않아도 괜찮다고 아니, 팔지 말아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피해'사실 보다는 그로인해 온 삶을 도둑맞아버린 '피해자'의 그 '이 후'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다. 영화 <한공주>가 공주의 '이 후'의 삶의 무게를 그려내었던 것처럼. <아이캔스피크>는 옥분할머니의 비극 이후의 삶을 그려내보인다. 나는 몇 몇 범죄 뉴스를 보며 왜 가해자는 저리도 당당하고 피해자가 부끄러워해야하는지 분통을 터트릴때가 있다. 죄를 짓는것이 부끄러워야함에도, 그들은 너무 뻔뻔하고, 힘이 없어 '당한'것을 부끄러워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할머니들은 세상앞에 당당히 맞서며 우리에게 '피해를 당한것'은 결단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용서를 빌어야 하는 일을 저질러 놓고도 용서를 빌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임을 몸소 보여주셨다. 그 고단한 삶을 따스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그려낸 이 영화가 나는, 고마웠다.




(스포가 있습니다 >>) 영화가 담고 있는 의미를 제외하고나면 사실 아쉬운점도 꽤 눈에 띄는 영화이기도 했다. 연출이 촌스러워 아니야 아니야, 하지마! 하는 순간 하지 말았으면 하는 행동을 하고야 마는 이제훈 배우의 모습을 보고 아아 하고 탄식을 내뱉는 순간이 몇군데 있었다. 특히 민재가 그렇게 미국에 꼭 가야만했는지가 (...) 아무리 10년 전이 배경이라해도 고오급 스캔 기술과 세계로 뻗어가는 이메일망, 그리고 글로-바르 로오밍 시스템을 무시하고 민재가 꼭 그렇게 미국에 가서, 그곳에 그렇게 들어가야만했는지. 나는 아직도 꼭 그래야만 했,냐아-하고 외치고 싶은 것이다. 간간히 터져주는 개그요소도 좋았고, 갈등요소도 나름 괜찮았지만 종종 약간의 판단미스적인 구시대적 연출이 눈에 거슬리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나문희 배우님 원톱 영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머지 배우들의 깨알 연기들도 즐거웠다. 특히 구청 식구들. 그리고 <더킹>에서 눈에 띄였던 김소진 배우님의 얼굴을 다시 본 것도 좋았고. 세련되고 잘 빠진 영화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영화가 주는 메세지와 따스함, 감동, 재미를 가득 담아 무거운 소재를 무겁지 않게, 그러나 하고 싶은, 해야만 하는 이야기는 적확하게 이야기하는 영화여서 좋았다.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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