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바로 지식의 표정아닐까.
헬레네세르프벡의 자화상속의 저 묘한 눈빛이 책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던- 읽고, 사유하고, 그리고 쓰기를 지속하는 열두명의 사람들과의 인터뷰집, 지식의표정 을 <랩 걸> 이후로 오래간만에, 책에 밑줄을 치며 읽었다. 문화비평가, 저널리스트, 정치학자, 역사가, 과학자, 번역가, 작가, 그리고 한문학자. 자신의 분야에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쉼 없이 세상을 연구하며 세상에 선명하게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있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읽으며 삶에 있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마주하는 것'의 중요함을 새삼 깨닫고, 또 더 치열하게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똑똑한 기계는 주어진 질문에 입력된 정답을 제시하려 들겠지만 인문학의 응답은 묻는 이를 놀라게 합니다. 예기치 않은 곤경에 빠뜨립니다. 그럼으로써 자문하게 합니다. 대만작가 탕누어는 그것을 '곤혹'이라 불렀습니다. 확답을 통한 종결이 아니라 불확정으로의 진입이자 모험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성장하고 상승합니다.(p.9)'라는 인터뷰어 전병두님의 말에서 우리가 책을 읽고, 질문을 하는 이유, 생각과 사유를 통해 답을 찾아가는 이유를 발견한다. '그렇게 성장'하기 위하여 우리는 자발적으로 곤혹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선택지속에서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고 선택지에는 없는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해 즐거이 곤혹스러움에 빠져보아야 할 일이다.
이런 인터뷰집의 좋은 점은 이 책의 인터뷰이 #데이비드브룩스 의 말로 정확히 짚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칼럼니스트가 할 수 있는 사회에 가장 유용한 일 중 하나가 학술 전공자들 열 명이 읽고 말 연구 결과를 가져와서 일반 대중에게 소개하는 겁니다. 우리는 대중화할 수 있습니다.(p.77)" 수많은 가치 있는 이야기들이, 일간지의 작은 코너기사로, 전문가들끼리의 학술지로, 잠시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 사라져가고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그 사람들을, 눈 밝은 편집자가 캐치해내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주는 일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는 이런 책의 존재가 감사하다.
모든 인터뷰가 재밌었지만 특히 <성장하는 인간> 섹션의 탕누어, 데이비드브룩스, 최연혁 님의 인터뷰가 생각할거리가 많아 좋았다. 특히 첫번째 인터뷰이 #탕누어 의 말을 읽으며 올해의 책 읽기를 반성하게 되었더랬다. '좋은 질문은 사유를 일으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와 함께 살아있게 하고, 인간과 세계를 대단히 친밀하게 만들어 주는(p.22)'데, '반면 빠른 해답은 통상적으로 문제를 소멸시키며 사유의 문을 닫아버린(p.22)'다는 말을 읽고, 그간 한 권의 책을 읽고 다음 책, 어서 다음 책 하며- 한 권의 책을 읽고 빼꼼히 열렸던 사유의 문을 발로 걷어차 쾅, 닫아버리고 서둘러 자리를 떠버린 2017년의 나의 독서태도를 반성, 또 반성한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걸 읽어 뭐 하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러한 곤경을 탕누어는 '진전된 성과를 곧바로 느기기 어렵다는 것 (p.35)'라고 분석한다. '읽는 동안 자신이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컴퓨터를 갖고 하는 인터넷 게임은 인간의 능력을 수치로 보여주기 때문에 사흘 또는 일주일 후면 얼마든지 등급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독서는 그런 식으로 수치를 보여줘서 용기를 주는 것이 아니기 떄문에 눈에 보이는 목표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의기소침하게 됩니다.(p.35)'라고 말이다. 이른바 '성질급함'이 꾸준한 독서를 의심하게 만든다는 이야기. 나는 정말로 성질이 급한데, 그래서 사실은 가끔이 아니라 아주 자주, 독서에의 곤경을 느끼곤했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조급해해서 사유의 문을 쾅쾅 닫아버리는거겠지. '자기 통제의 작은 습관들을 실천한다면 시간이 지나며 큰 것들에 대해서도 자기 통제를 할 수 있는 강한 힘을 기를수 있다(p.49)'고 데이비드 브룩스는 말했다. 2018년엔 나의 이 성질급함을 작은 일에서부터 '통제'해야겠다.
'사유하는 시간의 유무'에 대해서 철퇴를 맞고 바로 이어지는 데이비드 브룩스의 인터뷰에선 '자만'의 존재에 또다시 철퇴를 맞았다. 나는 내가 그다지 똑똑하지 못하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어이없게도 또 엄청난게 센스있는 사람이라는 자만을 가지고 있다. (풋) 브룩스는 '라인홀드 니부어'의 말을 인용하며 그러한 내 속을 들여다본것마냥 '우리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 옳다고 자신하고 자만하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정말 사악한 사람에게는 대항해서 전쟁도 해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자의자득해서 폭력적이 되고, 남들을 단죄하는 것에 비해 자신에게는 더 관대해지는 경향에 대해서도 늘 경계하고 맞서 써워야 한다고 했어요. 그것은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경고돼 있기 때문이에요.(P.62)'라고 말했다. 모두 '내가 옳다'는 자만에 빠져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을, 항상 인지하고 있어야겠다. 자만할 껀덕지도 없지만, 관대함으로 스스로를 현실보다 높은 자리에 놓지 않기를.
내년엔 읽는 책의 권수를 좀 줄여야겠다. 그리고, 그 책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좀 더 길게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헬레네의 자화상의 표정처럼, 확신에 차 있지만, 자만에 빠져있지는 않은 표정. 그것이 아름다운 지식의 표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확신과 자만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세상을 걷고싶다. 물론 지금은 미물이라, 불신과 자학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인생이지만. 언제나 무엇이나 열심히 자세히 들여다보고, 공부해야지. 변화하는 세상속의 기술과, 생각에 뒤쳐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으려 노력해야지. 이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매일매일 '자신을 반복해서 재발명해 가도록(p.137)' 애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