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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수 Dec 14. 2023

발상의 전환 : 기준점과 포용적 디자인

발상의 전환 : 기준점과 디자인


<기준점과 포용적 디자인 워크숍> 의 두 번째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리마인드를 위해 다시 설명드리면 워크숍은 우선적으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제품과 서비스의 기준점을 되짚어보면서 시작합니다. 온라인 승차권 예매 서비스의 기준은 애플리케이션 이용이 능숙한 사람, 전동 킥보드는 양손 사용이 가능한 사람, 뮤지엄 갤러리는 시각이 잘 보이는 사람 등 당연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이용이 배제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어르신들이 예매를 못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시각장애인은 뮤지엄을 자유롭게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용자들은 어떤 니즈를 가지고 있을까요? 이제 본격적으로 기획의 시작을 배제되었던 사용자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들이 마주한 장벽과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기존에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지점들을 발견하게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할 수 있습니다.


영화관 관람에서 배제된 사용자를 대상으로 사용자 여정 지도를 그려가는 과정. 특히 개인적 경험에 따라 발에 깁스를 한 사용자를 중점으로 시나리오를 짜본 점이 인상 깊다. 발에 깁스를 한 사용자는 신장이 작아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사용자 혹은 하반신 마비와 같은 장애를 각지고 있는 사용자와도 연결된다. ©미션잇




단 한 사람의 페르소나에서 시작하기


기준점 워크숍 두 번째 시간에서는 첫 번째 시간에 조별로 선정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을 가졌습니다. 우선 사용자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페르소나Persona 를 설정합니다. 페르소나란 사용자의 행동, 목표, 동기, 필요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이죠. 우리 제품과 서비스를 실제로 사용하게 될 사용자를 가상으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보통 페르소나를 여러 명 설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 시간에는 딱 한 명만 만들었습니다. 구체적인 단 한 사람의 고객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N1 마케팅> 의 저자 니시구치가즈키도 실재하는 한 사람의 고객을 만나 상품을 처음 구매한 날부터의 경험을 상세히 들여다보면 행동 이면에 있는 심리가 보이고 반드시 성공하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워크숍에서는 피트니스를 이용하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 청년, 영화관을 방문한 깁스를 착용한 여성, 명절 맞이 온라인 승차권을 예매해야 하는 스마트 폰이 익숙치 않은 고연령 어르신을 각각 페르소나로 설정 했습니다. 


단계별로 터치 포인트와 각 터치 포인트를 이용하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을 시각화하여 그려보는 것은 사용자를 깊이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위 조에서는 휠체어 이용장애인이 피트니스 센터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 곡선을 정리하였다. 한 선으로 이어 붙이게 되면 시각적으로도 파악하기에 용이하다. ©미션잇



사용자 여정 지도를 통해 단계별로 사용자 경험 이해하기


사용자 경험을 깊이 있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사용자 행동을 단계별로 나눠보는 것이 좋습니다. 사용자 경험을 전체적으로 한 번에 확인할 수 있을뿐더러 세부적으로 다시 쪼개어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에 거시적인 시각과 미시적인 시각을 동시에 가지고 사용자 경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4~5단계 정도로 간단하게 나눴습니다. 그리고 각 단계에서 사용자가 제품, 서비스와 상호작용하는 지점인 터치포인트 Touchpoint를 기입합니다. 예를 들면 승차권 예매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해 실행하는 것, 회원 가입을 하는 것, 결재를 하는 것 등 디지털 애플리케이션 내에서 사용자가 행동으로 옮기는 각 과정이 하나하나의 터치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터치포인트에서 느끼는 감정을 어려움, 좌절(Low), 보통(Middle), 좋음(High) 3 단계로 표시했습니다. 어르신 사용자가 앱을 다운로드하는 정도는 하실 수 있기 때문에 보통(M)이라는 표시를 한 반면, 결제하는 과정에서는 카드 번호 입력, 인증번호 등 복잡한 과정이라서 어려움(L) 표시를 했습니다.


어르신 사용자들이 어려움을 갖게 되는 승차권 예매 단계. 모바일 결제화면 창이라는 터치포인트에서 복잡한 결제방식과 화면 때문에 어려움,좌절(L)의 감정을 지니게 된다. ©미션잇



사용자가 어려움을 겪는 터치포인트를 

어떻게 해석하고 개선할 것인가?


비슷한 상황이어도 터치포인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습니다. 신발 끈에 대한 해결책을 예로 들어봅시다. 좌측에 자석이 부착된 신발 끈은 손가락으로 신발 끈을 직접 묶기 어려운 사용자를 위하여 고안되었습니다. 순수하게 ‘신발 끈’이라는 터치포인트에 집중해서 나온 해결책입니다. 조금 더 손을 세밀하게 조정하기 어려운 사용자들에게 용이합니다. 오른쪽 나이키 제품은 신발 끈이 아예 없으면서도 신발에 발을 넣을 때 손을 쓰거나 허리를 숙이지 않도록 발 투입 부분의 각도를 조정했습니다. ‘신발 끈'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지만 보통 사용자들이 신발 끈을 손으로 풀고 묶으면서 신는 행위보다 가능하다면 신발 끈에 손을 데지 않고 발만 집어넣어서 신발을 신고 싶어 하는 행위를 면밀하게 관찰한 것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왼쪽 아이디어가 손 사용에 더 집중했다면 우측은 손 사용뿐 아니라 발을 쓰거나 허리를 숙이기 어려운 사용자들까지 넓게 고려되었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터치포인트를 경험하는 사용자의 문제를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해결책이 나옵니다.


비슷한 상황에 대한 다른 해결책  ©좌)액티브핸즈  우)나이키



한 사람을 위한 해결책이 모두를 위한 것으로, 확장성에 대한 고려

아이디어에 대한 해결책을 발전시킬 때 확장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장벽을 해결하는 배리어 프리 Barrier-free의 단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용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유니버설 Universal 한 디자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음의 세 가지 그룹의 사용자로 나누어 다시 한번 디테일을 가다듬습니다.


선천적, 후천적 장애를 가진 사용자, 생애주기적 요인으로 이동에 제약을 경험하는 임산부, 어르신 사용자, 일시적이거나 상황적 요인으로 짐을 들고 있기 때문에 이동에 제약을 경험하는 사용자. 우리는 누구나 제약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디어의 확장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MSV1 <이동>, 일러스트 박지은 


첫 번째 그룹은 선천적, 후천적 장애를 가진 사용자입니다. 워크숍에서 한 명의 페르소나로 설정했던 사용자가 포함된 그룹입니다. 이들이 우리의 아이디어를 통해 어떤 사용상의 이점을 가지게 되는지, 혹은 개선점은 없는지 파악합니다. 뇌성마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신발 끈을 직접 묶지 않고 신발을 신거나 발에 세게 힘을 주지 않고서도 신발을 신을 수 있는지 여러 가지 관점을 가지고 되돌아봅니다. 두 번째 그룹은 생애 주기 단계로 제품과 서비스에 장벽을 경험하게 되는 사용자들입니다. 어르신 혹은 임산부가 있습니다. 고 연령으로 보행 보조기를 사용해야만 하는 어르신이나, 만삭의 임산부는 분명 허리를 숙여서 물건을 들거나 신발을 신기에 불편함을 경험합니다. 세 번째 그룹은 일시적 주변 상황으로 인해 장벽을 경험하게 되는 사용자입니다. 양손에 물건을 든 채 신발을 급하게 신어야 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혹은 아이와 함께 문밖으로 나가야 해서 빠르게 신발을 신고 싶었던 적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일시적인 상황에 속하는 그룹이 세 번째 그룹입니다.


워크숍에서는 세 그룹의 사용자들을 간단하게 떠올리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켰지만,  이번 워크숍이 실제로 제품을 출시해야만 하는 제품 기획 과정이었다면 세 그룹을 대상으로 사용성 테스트를 진행할 것도 권장합니다. 포용적인 디자인은 결국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잘 잡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걷기 위한 사고의 전환 


더운데 에어컨 키고, 밥 먹고 싶을 때 먹고, 문화생활 즐기고 싶을 때 누리는 이 모든 과정이 평등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준점을 되돌아보며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가 지녔던 사고가 얼마나 철저한 무관심으로 가득했나요? 사실 저 역시도 완전히 단절된 관점으로 실무를 진행했습니다. 회사에서 디자인할 때 장애인을 고려한 경험은 부끄럽지만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냥 일하기 바빴습니다. 어림짐작으로 실무자가 쓰기에 편리한 정도의 수준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사용자 테스트를 거치기는 하지만 포용성에 대한 진정성있는 고민은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왜 하반신 마비를 가진 장애인이 혼자 차를 운전하고, 왜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거동에 어려움이 있는 사용자가 리모컨과 막대기를 이용해 스스로 행동하며,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실내에서 왜 모든 요리 기구를 자신에게 맞춰 셋팅할까? 누구에게나 선택하고자 하는 자유와 스스로 일을 하는 즐거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MSV 1 <이동>, MSV4 <안전>


그러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누구나 공평하게 제품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반신 마비를 가지고 있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운전을 하고, 앉아서만 생활하는 어르신이 리모컨을 사용해 문을 열고, 허리를 제대로 쓸 수 없는 근육병 장애인 청년이 집안 곳곳의 안전바를 잡고 일어서는 모든 것들은 자유의지에서 비롯됩니다. 누구에게나 독립적으로 생활하면서 일하고, 참여하며,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자 하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포용적인 디자인이란 가능한 많은 사용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디자인이라 정의 내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디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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