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의대 입시 (1)
자소서. 미국에서는 Personal statement.
아무도 쓰고 싶어 하지 않은 그냥 괴물과 같아 보이는 이 숙제는 많은 사람에게 두려움을 준다.
사실, 계속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한 마디로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에 대한 질문을 잘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려울까?
가족이나 친구랑 이야기할 때 나에 대해서 분명 쉽게 이야기할 때도 있는데 글을 막상 쓰자니 너무 어려워진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내가 나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까? 아는 게 맞나? 이런 생각이 가득 차면서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아무것도 쓰지 못할 때가 있다.
Who really are you?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학교를 다니면서 사실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은 많지 않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무얼 잘하는 지도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은 어째서 그렇게 잘 쓰던지 하며 한숨을 쉬게 된다. 그리고 곧 압박감이 찾아온다.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그런지 뭔가 번지르르하게 써야 할 것만도 같다.
답답하다. 그래서 힘들다. 한 줄 더 쓰기 위해서 무언가 더 해야 할 것 같고 그것도 사실은 이력서에 한 줄 채우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해 보니 전부 쓸 때 없는 것 같다. 겉치레만 하는 활동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해도 시간은 부족한데 세상은 왜 내게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 것인가.
바로 위 상태가 자소서를 쓰면서 한 번 즈음은 거쳐가는 생각의 과정일 것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달라질 것은 없다. 여태까지 나에 대해서 정확한 진단을 내려보지 않았다면 어차피 자연스럽게 생각나게 될 것이다. 필자 역시 그 과정을 거쳤고 무언가 완벽하게 짜인 계획 속에서 산 것이 아니기에 내 활동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기 어려워서 그 속에서 대단한(!) 의미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나오는 진도준과 같이 다시 태어날 수도, 회귀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이전에 못 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하는 것은 사실 시간낭비다. 후회할 시간이 있다면 나의 내면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내 주변사람에게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물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소서를 쓰기 정말 어려운 이유는 내 관심사와 활동에 대한 서사를 풀어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이기에 짜깁기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누군가의 생각과 의도를 통해서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했다면 당연히 그러한 활동들은 내 삶에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얼마나 이런 것을 알고 부모님을 반대해서 자신의 뜻대로만 할 수 있었겠는가? 당연히 불가항력적인 요소가 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자아가 성립이 된 이후로는 자신의 의사표현을 제대로 해야 하며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보호자의 원치 않는 압력으로 인해서 무언가 한 것이 많다면 글쓴이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껍데기만 있는 삶을 글에 실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없는 나의 이야기가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까?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한다면 풀어갈 이야기가 정말 많을 것이다. 그것이 취미활동이 될 수도 있고 남들이 하지 않는 봉사가 될 수도 있다. 나만의 이야기는 결국 내 주관을 빼놓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관점이 들어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그 이야기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입시를 준비해 주시는 분들은 서로 상관이 없어 보이는 내용을 가지고 짜깁기를 정말 잘해주신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그 학생의 입시는 망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학생에게 제발 관심 있는 활동을 하라고 부탁한다. 활동들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 보여도 학생 본인이 즐기고 열심히 한다면 그것을 왜 선택하고 오랫동안 했는지 이유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가 없는 활동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냥 원서에 좋아 보이기 위해서 한 것과 같아 보인다.
Doing things for the sake of doing things.
무언가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변에 누구누구가 뭐를 한데 해서 하는 것은 먼저 검토가 필요하다. 다양한 것을 시도해 보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따라 하지는 말자. 다른 이의 성공을 모방한다고 해서 같은 성공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지원서는 미국에서 cookie-cutter application이라고 부른다. 쿠키를 만들 때 쓰는 모양틀을 빗대어 서로 비슷해 보이는 지원서를 이리 칭하는 것이다.
입학을 위한 지원서뿐만 아니라 입사를 위한 지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고 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명언은 사실이다. 당신의 이야기는 결국 당신이 여태까지 한 결정의 산물이다. 자소서에 쓸 것이 없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스스로 선택을 많이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주도하지 않은 인생에서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것은 전문가의 손길이다.
그렇지만 모두가 전문가의 손길을 바랄 수 없다. 비싸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력 역시 무시할 수 없고 수천 만원 혹은 달러를 들여서 고쳐진 자소서는 정말 차원이 다르다. 쓰레기더미에서 마치 보석을 만들어낸 연금술사의 작품이다. 많은 학생들이 이러한 기적을 바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의 도움을 청할 재력이 없다면 앞으로는 의도적으로 살아야 한다.
내 이야기는 내가 저자다.
부모님도 아니고 형제도 아니다. 친구도 아니고 애완동물도 아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온전히 당신이 서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개입이 필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누군가에 의해 이끌려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스스로 결정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가?
언젠가 부모님은 돌아가실 것이고 내 형제 역시 가족의 품을 떠날 것이다. 나 혼자 남겨질 때, 내가 스스로 내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온다. 그게 바로 성인이다. 혼자 남겨질 나를 위해서 내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실수를 해도 괜찮고 실패를 해도 괜찮다. 청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자소서는 결국 내가 나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한 편을 담은 글이다. 거창할 것 없다. 솔직함과 진중함을 담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인생에 대한 내 고민이 깊었으면 깊을수록 글에 그 고민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아직 고민이 없으면 지금부터 하면 된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자.
내 이야기는 누가 주인인가? 내가 스스로 내 이야기를 쓰고 있는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누가 뭐래도 나는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