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사라진 뒤,
집 안에서 가장 먼저 어른이 된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엄마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은
피를 토하던 장면이었다고 했다.
그때는
병 이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어른들은
“속병이 깊었다”는 말로
모든 이야기를 대신했다.
엄마는
나중에야 가끔 그런 말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암이었을지도 모르지.”
한 사람이 사라진 집은
생각보다 빨리 중심을 잃었다.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정해놓은 적은 없었지만,
누군가는
그 자리에 서야 했다.
엄마는
그 자리에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이었다.
집 안의 공기는
엄마를 더 이상 아이로 두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부탁하지도 않았지만
엄마는
어디에 손을 보태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월급봉투가 식탁 위에 놓인 날 이후로
그 봉투는
이따금이 아니라
계속해서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럴수록
엄마의 자리는
조금씩 안쪽으로,
더 중심으로 옮겨갔다.
누군가
“이제 네가 해야지”라고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
누가 먼저 일어나야 하는지,
누가 먼저 참고 넘어가야 하는지,
집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어디를 붙들어야 하는지를.
아버지가 사라진 뒤
집 안에는
울음보다 생활이 먼저였다.
장례가 끝나고도
밥은 지어야 했고,
동생들은 학교에 가야 했고,
하루는
그렇게 다시 흘러가야 했다.
엄마는
그 흐름을 멈추지 않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직 젊은 나이였지만
엄마는
집 안에서 가장 먼저
하루를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
이번 달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누구의 걱정을
조금 더 덜어야 하는지를.
그렇게
엄마는
집을 떠나는 딸이 아니라
집을 지탱하는 딸이 되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었고,
희생이라고 부를 만큼
대단한 각오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자리에
엄마가 있었을 뿐이다.
그때부터였다.
엄마의 삶이
‘내 것’이 아니라
‘함께 버텨야 할 것’으로
굳어지기 시작한 건.
그리고 그 흐름은
아주 자연스럽게
다음 선택으로 이어진다.
다음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