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시대 개막 이후,
임금과 자산의 괴리는 더 벌어졌다. 쭉쭉 올라가는 주식과 집값은 찔끔찔끔 쌓이는 저축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돈이 돈을 버는 광경이 목격됐다. 노동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다.
가장 괴로운 건 소문이었다.
가까운 사람이 투자를 해서 얄밉도록 돈을 쓸어 담았다는 소문, 주부가 부동산 투자에 성공해 집안에서 위상이 올라갔다는 소문, 어린놈들이 투자로 벌어서 벌써 퇴사한다는 소문. 하늘에 뿌려진 전단지처럼 널린 게 돈 소문이었다. 그리고 돈 소문은 간지럼을 타듯이 참기 힘들었다. 차라리 주식과 부동산이 떨어졌으면 마음이 편할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것처럼 우는소리를 해댔고, 발을 동동 굴렀다. 불과 인생의 몇 페이지 앞에선 비슷했던 동료가 격차를 벌리고 나아갔다는 환상과 숨통을 죄는 불안이 하루하루 갈수록 이자처럼 불어난 탓이었다.
가만히 있는 사람 바보 만들기 쉬웠다.
온갖 놈들이 재잘거렸다. “요즘 이자로는 돈 못 모아요”, “언제 집 사고, 언제 결혼할래?”, “지금 투자 안 하면 병신이야”, “평생 노예로 살래?”, “가만히 있으면 벼락 거지야” 주식 투자하는 놈에게 글러먹은 놈이라며 윽박지르는 시대가 끝난 것 같았다. 대신 온갖 사람들이 V자 반등 차트를 보여주며 저축하는 놈에게 윽박질렀다. 다시 전 고점을 뚫은 주식 차트는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돈 냄새가 진동했다. 뒤처져선 안 된다는 한국인 특유의 신경 회로를, 아니 어쩌면 인간이라면 영원히 느낄 위기감과 질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뜨거운 바람은 여름에 불었다.
특히 주식. 투자라곤 부동산과 자식 교육 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주식 앱을 깔고, 회원가입을 하고, 계좌를 연결했다. 그들은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레이 달리오가 있는 피가 낭자한 스포츠에 입문했다. 젖과 꿀이 가득하다는 소문만 듣고 예루살렘으로 출정한 십자군처럼 보였다.
실제로 젖과 꿀이 있었다.
입문자는 대체로 승리했다. 이때의 대(大) 상승 시장은 가만히 있어도 오르는 에스컬레이터 같았다. 좀만 참으면 시장은 바로바로 화답했다. 가격이 비싸도 상관없던 시절이었고 가격이 비싸지면 손님이 더 몰려드는 유일하고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좋은 시절이었다.
투자 지식이 소화되지 않아도, 재무제표를 볼 줄 몰라도 너도 나도 벌었다. 가족에게 배당금 통지서를 숨기지 않았다. 무용담이 펼쳐졌다. 너도 나도 워런 버핏이었다. 너도 나도 천재였다. 천재는 대 상승장이었지만 자신이 종목을 발굴하는 재능이 있다고 착각했다. 좋은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