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이러스는 2020년에 찍힌 마침표였다.
익숙했던 세상은 끝났고 생경한 풍경이 세상에 가득했다. 환자가 가해자인 풍경, 마스크가 X의 1제곱처럼 새삼스럽지 않은 풍경, 재난문자가 메아리치는 풍경, 찝찝함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풍경, 유치원 아이들이 마스크를 코에 꾹 누르는 풍경, 대학교 책상 서랍에 거미줄이 쳐지고 청춘이 생략되는 풍경, 재택근무의 풍경, 손님이 QR코드를 조준하는 풍경. 세상에, 살다 보니 이런 세상도 오는구나 싶었다.
아, 생경한 풍경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사람들이 투자에 빠진 풍경. 아, 열풍(烈風). 언론은 이를 두고 ‘열풍’이라 말했다. 저축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대출을 해서 투자를 하기 시작했고, 주식 관련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고, 경제 방송의 구독자 수가 폭발했고, 투자의 베테랑이 방송에 나와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설파했다. 한국에 팽배했던 IMF의 트라우마는 사라진 듯 보였다.
아, 열풍(烈風).
누구는 치킨값이라도 벌려는 재미로, 누구는 팔자 한 번 바꿔보려고 투자를 했다. 누구는 정부가 쥐여준 보조금으로, 누구는 아파트 담보 대출까지 끌어당겼다. 기업은 싸게 돈을 빌려 스스로의 주식을 사서 몸값을 펌핑했고, 어르신은 코인을 샀고, 대학생은 투자동아리에 가입했고, 청소년은 부모에게 주식을 받았고, 젖비린내 나는 애들은 부모가 삼성과 카카오로 돈을 벌었다며 친구에게 자랑을 해댔다.
저금리와 양적완화가 세상을 바꿔놓은 것이다.
3월부터 댐이 열렸다. 댐에서 돈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누구나 거의 공짜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사람들은 돈을 한 움큼 떠서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에 쏟아부었다. 돈이 저수지처럼 고였고 전 세계 부동산, 주식, 코인이 그 저수지로 살을 찌웠다. 아파트는 청년들을 희롱하며 위로 솟았다. 발도 들이지 말라는 듯이. 지옥을 한 번 터치했던 주식은 핏기를 되찾았다. 위기는 끝났다는 듯이.
한편으론 참 이해하기 힘든 세상이었다.
코로나가 양성과 음성이라는 이진법으로 사람들의 운명을 갈랐듯이, 팬데믹 시대의 돈은 실물경제와 자산 시장의 운명을 갈랐다. 실물경제는 얼어붙고 박살 났지만 자산 시장은 뜨거웠고 쭉쭉 올랐다.
참 기묘한 구조였다.
감염자와 사망자가 많아질수록 봉쇄는 더 오래 유지됐다. 봉쇄가 유지되면 경제는 더 박살 났다. 경제가 박살 나면 중앙은행은 낮은 금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금리가 낮게 유지되면 사람들은 더 오래, 더 많은 돈으로 투자를 할 수 있었다. 투자를 할수록 주식과 부동산은 더 올랐다. 주식과 부동산이 오를수록 투자는 더 뜨거워졌다.
극과 극의 풍경이었다.
한쪽에서 감염으로 사람들이 아프고, 감염으로 사람들이 죽고, 무상급식에 의존했던 사람들이 굶고, 해고된 승무원이 자살하고, 여행 가이드가 우울증에 빠지고, 자영업자가 정부와 의회와 기획재정부와 치고받고 싸우는 동안, 한쪽에선 가진 자들은 더 벌었고, 투자를 아는 사람들은 재미를 봤다. 그들은 유동성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샴페인을 터뜨렸다. 한 잔은 ‘제로금리’를 위하여, 한 잔은 ‘양적완화’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양적완화 시대를 열어준 ‘제롬 파월’을 위하여. 당시 사람들은 연준 의장 파월에게 이런 태그를 달았다. ‘#돈 복사기(#money printer)’. 양적완화 시대에 대한 간략한 주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