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친숙한 도시 비슈케크
오마이 뉴스 연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69603
거리에는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무궤도 전차가 달리고 있었다. 자동차들과 엉켜 달리는 버스 모양의 전차가 왠지 헐거워 보여 촌스러운 냄새가 풀풀 풍겼다. 오히려 그런 모습들이 번잡스럽지 않고 평화롭게 보여 좋았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의 첫인상이다.
낯설지만 친숙한 도시
'낯설지만 친숙하다' 이런 말이 성립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슈케크는 그런 도시였다. 그간 여행하면서 만났던 여느 도시보다 낯설었지만 뭔지 모를 친근감과 포근함을 주는 도시였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총 든 군인 동상들과 전쟁기념공원, 웅장한 레닌 동상과 벽화, 처음 접해보는 언어, 러시아 문자나 키르기스 문자로 쓰여 있는 알 수 없는 간판들이 그간 여행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섦으로 이방인을 더욱 여행자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딱딱해 보이는 도시 분위기와는 달리 대부분 이곳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에게 별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고 늘 웃는 얼굴로 반겨주었다.
유목민들은 손님을 '신이 보낸 선물'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그들의 친절한 미소 속에서 유목민의 후예들다운 그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낯섦'의 정체는 여전히 도시 전체에 물씬 배어 있는 소련풍의 모습이었고, '친근감'의 정체는 이방인에게 열려 있는 비슈케크 사람들의 마음 때문이었다.
비슈케크(Bishkek)는 키르기스스탄의 북쪽 카자흐스탄의 국경과 2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고도 700~900m에 위치한 고산도시다. 우리 동네 옆 산인 청계산 높이가 해발 618m라 하니 비슈케크는 그야말로 하늘 위에 세워진 '천상(天上)의 도시'라 부를 만하다.
처음 접했을 때 느낌은 오랜 역사의 도시처럼 보이지만 이 도시의 역사는 300여 년에 불과하다. 600여 년 역사를 지닌 서울이나 파리나 런던 같은 유럽의 여느 도시에 비하면 비슈케크는 청년 도시인 셈이다.
원래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으나 19세기 군사기지로 사용되면서 지금에 이르러 인구의 6/1 이상이 살고 있는 백만 도시가 되었다. 사실 비슈케크뿐만 아니라 유목민족의 터전이었던 중앙아시아 지역은 정주 개념의 오래된 도시가 드물다.
부러웠던 도심 산책로 에르킨딕 공원
뭔가 촌스러운 도시 같아 보였지만 이 도시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 중 하나는 곳곳에 잘 조성된 도심 공원이었다. 도심 속에 위치한 에르킨딕 공원(Erkindik Ave)은 아름드리나무들과 정원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이곳은 공원이라기보다 도심을 가로질러 길게 뻗어 있는 산책로와 같았다. 구소련 시절 국가가 주도하여 계획적으로 조성한 결과물이다. 이데올로기 시대 교육받은 세대라 그런지 사회주의권 경제개발에 대해 막연한 편견이 있었는데 에르킨딕 공원을 걸어보니 어떤 부분은 국가 주도 개발이 정말 중요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에르킨딕 공원에 도착했을 시각은 저녁 무렵이었다. 낮 동안 더위를 피해 집안에 있었던 시민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산책로를 꽉 채웠다. 이때를 맞춰 버스킹족들은 공원 곳곳에 판을 펴기 시작했다. 공원 중간쯤 걷는데 귀에 익은 바이올린 연주곡이 들려왔다.
"춤 한판 춰 봐!"
친구가 내 등 짝을 밀었다. 얼떨결에 이름 모를 버스커와 낯선 이방인 춤꾼의 협연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등 떠 밀려 나온 터라 잠시 쭈뼛거리다 이내 음악에 몸을 맡기고 여행자의 마음으로 훨훨 한판 춤을 추었다.
연주가 끝나자 박수 소리가 제법 우렁차게 들렸다. 버스커의 바이올린 연주에 박수를 던졌는지 갑자기 끼어든 춤꾼에게 박수를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관객 호응으로는 제법 괜찮은 공연이었던 듯했다. 언뜻 보니 연주자 앞에 펼쳐진 바이올린 가방에 지폐가 제법 쌓여 있었다. 내 춤이 젊은 버스커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기를 빌면서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비슈케크 시민의 자랑, 알라투 광장
우리나라에 광화문 광장이 있다면 키르기스스탄에는 알라투 광장이 있다. 알라투 광장은 번화가인 사베스까야(거리)와 추이(거리) 근처에 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힘을 세계만방에 보여주었던 촛불집회 중심지가 광화문 광장이었다면 키르기스스탄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튤립혁명 중심지가 바로 알라투 광장이다. 키르기스스탄 민주주의 정신이 깃든 알라투 광장은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유명한 승리 광장과 함께 비슈케크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로 손꼽는다.
광화문 광장에 가면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이 서 있듯 알라투 광장에는 키르기스스탄 건국 영웅 마나스 장군 동상과 엄청난 크기의 국기봉이 서 있었다. 실존하지 않는 신화 속 인물이라는 마나스 장군은 키르기스 민족의 영웅으로 불리며 그의 영웅담은 마나스 서사문학으로 구전되어 오고 있다.
마나스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별도로 소개해 보려 한다. 원래 마나스 장군 동상 자리에는 레닌 동상이 서 있었는데 2003년 광장 뒤편 국립 역사박물관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한 시대를 이끌었던 혁명가의 가치도 광장의 뒤편으로 밀어내는 것이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다. 그 현장에 서니 현 우리나라 시국과 겹쳐지며 여러 생각이 스쳤다.
운 좋게 만난 국기 호위병 교대식
알라투 광장 초대형 국기게양대 옆에는 총을 든 2명의 호위병들이 근엄하게 서 있었다. 이 호위병들은 매시 정각에 교대식을 한다. 우리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마침 교대식 시간이어서 운 좋게 그 과정을 전부 구경할 수 있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모습은 걸음걸이였다. 어깨에 총을 받쳐 들고 90도 각도로 발을 높이 들었다 천천히 내려놓으며 걷는 모습은 내가 군대에서 배웠던 제식훈련과 완전히 달라 무척 낯설었다.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구소련의 군대 열병식을 보는 것 같았다. 각을 맞춘 군인들 모습에 이 나라가 구소련 국가였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교대를 마친 군인들은 편하게 걸어갈 줄 알았는데 막사까지 올 때처럼 각을 맞춰 한참을 걸어갔다.
교대병 막사가 있는 국기게양대 뒤편에는 국립 역사박물관이 있다. 작은 광장 앞에 열정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독려하는 레닌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동상의 규모가 커서 놀랐지만 방금 본 소련식 호위병들과 겹쳐지며 반공 이데올로기 시대를 살았던 트라우마가 꿈틀거려 괜히 못 올 데 온 사람처럼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광장 옆 아담한 판필로바 공원(Panfilov Park)을 걸을 때도 공원은 역시 구소련 시절 조성된 공원답게 깔끔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지만 줄줄이 서 있는 이름 모를 동상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역사박물관 옆 길에는 키르기스스탄의 젊은 화가들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화가의 거리'가 있었는데 일정 상 자세히 보지 못하고 꼭 다시 한번 들러 보리라 마음먹으며 지나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어느 도시를 방문하든 한 번에 그 도시를 다 아는 건 불가능하다. 비슈케크의 아주 일부분이지만 여행자의 눈으로 느꼈던 내 주관적 느낌은 낯설지만 친숙함이었다. 비슈케크를 가게 된다며 위에 내 경험은 참고 사항임을 잊지 말고 새로운 느낌으로 여행을 즐기기를 바라며 비슈케크 단상을 마무리한다.
비슈케크 전경 보며 맥주 할 그날을 기다리며
키르기스스탄에서의 마지막 날, 다마스 호텔 스카이라운지(D-Bar)에서 비슈케크 시내를 바라보며 홀짝이던 키르기스스탄 맥주 아르빠가 생각난다.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스카이라운지에서 바라본 비슈케크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한 여름에 보는 톈산산맥의 만년설의 모습은 아주 비현실적이어서 마치 동화 속 공중 도시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뉘엿뉘엿 햇빛과 어울린 도시 모습이 신비감을 주었다. 황홀한 비슈케크 전경을 바라보며 '반드시 다시 한번 오리라' 꼭꼭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술에 취해 그랬었는지도 모르겠다. 꼭 다시 방문해 확인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