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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Aug 27. 2022

일곱 마리 붉은 황소를 품은 계곡 제티오구즈

유리 가가린이 최초의 우주비행 후 쉬었던 그곳

"지구는 푸른빛이다."


우리에게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가 푸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려 준 이는 바로 유리 가가린이다. 그는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시간 29분 동안 지구 상공을 한 바퀴 돈 후 귀환에 성공한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였다.


우주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가 휴식을 취했던 곳이 바로 키르기스스탄의 제티 오구즈 계곡이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가 푸른빛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던 그가 푸른 숲이 울창한 이곳을 휴식처로 찾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 제티 오구즈: 찢어진 심장 방위 제티오구즈 계곡을 알리는 찢어진 심장 바위에는 슬픈 전설이 얽혀 있다.
▲ 제티오구즈 계곡 제티 오구즈:설산에서 흘러 내린 시냇물을 따라 들어 가면 제티 오구즈가 나온다.

찢어진 심장 바위

스카즈카 계곡의 감흥에 젖어 회색빛 시냇물이 흐르는 옆 도로를 따라 들어가다 보니 눈앞에 마치 하트가 쪼개진 형상의 커다란 붉은 바위 두 개가 나타났다. 바로 제티 오구즈 계곡의 시작을 알려주는 ' 찢어진 심장 바위(Broken Heart)'이다.


이곳 '찢어진 심장' 또는 '깨진 심장' 바위에는 얽힌 전설이 있는데 구전 문학이 발달한 키르기스스탄 문화 특성 때문인지 대부분 전설들은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여 그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결투를 하게 되었고 결국 두 사람 모두 죽게 되어 그 사실을 알게 된 여자의 심장이 둘로 갈라졌다는 전설이다. 또 한 전설은 견원지간이던 두 나라 왕 중에 한 왕이 상대 왕의 아름다운 왕비를 시기하여 왕비를 납치했는데 왕비를 되찾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욕심 많은 상대 왕은 그에게 고통을 주면서 전쟁을 끝내고자 납치한 왕비를 협곡 제단에서 칼로 찔러 죽였다고 한다. 이때 죽은 왕비의 피가 바위를 갈라 붉은색의 찢어진 심장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어떤 전설이 진짜이든 한 여인의 심장을 찢어지게 했다는 것은 일치하고 있으니 저 '찢어진 심장 바위'는 바로 이 세상 남자들에게 '여인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말 것'을 가르쳐주는 '경계 바위'라는 생각을 했다.       

▲ 제티 오구즈 제티 오구즈는 일곱마리 황소라는 뜻이다.
▲ 제티 오구즈 제티는 "일곱"이란 의미이고 오구즈는 "황소"라는 의미이다. 제티오구즈는 "일곱 마리 황소"라는 뜻이다.


일곱 마리 붉은 황소

찢어진 심장 바위를 지나 계속 들어가니 저만치 붉은색 일곱 마리 황소 바위 '제티 오구즈'가 보였다. '제티'는 '일곱'이란 뜻이고 '오구즈'는 '황소'라는 의미로 '제티 오구즈'는 '일곱 마리 황소'라는 의미다. 제티 오구즈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도 여러 버전이 있는데 들려주는 사람마다 조금씩 각색이 되어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우리 가이드가 들려준 버전은 다음과 같다. 


'아주 오랜 옛날에 한 왕이 죽기 전 일곱 명의 아들에게 재산을 공평하게 나눠 주었다. 하지만 왕이 죽자 형제들은 재산을 다 가지려는 욕심으로 서로 싸우며 서로를 죽이게 되는데 형제간의 피로 얼룩진 싸움을 지켜보던 마법사가 그들의 피로 일곱 개 산을 만들었는데 그 형상이 마치 황소처럼 보인다 하여 제티(일곱) 오구즈(황소)라고 한다.'              

▲ 제티오구즈 계곡 붉은 사암 바위: 바다가 융기 해 만들어진 사암지대로 붉은 이유는 바위 성분에 철분이 많이 함유 되어서라고 한다.


자료를 조사해 보니 제티 오구즈 계곡이 전체적으로 붉은 바위산인 이유는 고생대에서 신생대로 넘어오는 시기 바다가 융기해 생긴 사암지대로 성분에 철이 많이 함유되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붉은 바위 곳곳에 하얀 눈물 자국 같은 소금 흔적들이 바로 그 증거이며 바위 근처에서는 조개 화석 같은 바다 생물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붉은 빛이 피 때문이 아니라 함유된 철 성분이 주원인일지라도 이곳에 서면 그저 전설 속의 이유를 더 믿고 싶어지는 건 나뿐일까.    

▲ 제티 오구즈 계곡 트레킹 제티 오구즈 계곡은 유리 가가린이 휴식을 취했을 만큼 아름답다.

우리는 계곡 안에 펼쳐진 초원지대에서 가벼운 트레킹을 하기로 했기에 계속해서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제법 물이 많은 냇물에는 아슬아슬하게 다리가 놓여 있었는데 가이드 말이 다리 5개를 건너야 목적지가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다리 2개를 건너고 3번째 다리에 다다랐을 때 길이 막혀 있었다. 전날 갑자기 내린 비 때문인지 다리 보수 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공사가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아 우리는 차를 돌려 도로 상황을 기다릴 겸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 국립공원에서 취사를 키르기스 사람들은 가족 단위로 휴식을 위해 제티 오구즈 계곡을 찾는다.
▲ 멋진 풍광 속 라면맛 라면은 역시 멋진 풍광이 최고의 재료


국립공원에서 라면을


"국립공원처럼 보이는데 여기서 라면 끓여 먹어도 돼요?"

"됩니다. 여기 사람들은 휴일이나 휴가 때 이곳 계곡에 놀러 와 고기를 구워 먹으며 쉬었다 가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에서 라면을 끓여 먹다가는 곧바로 쫓겨나거나 아니면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해 부끄러워 스스로 도망쳐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이게 가능하다. 아직 우리나라처럼 관광지 개발이 많이 되지 않은 키르기스스탄은 공원 관리가 빡빡하지 않다.


우리 같으면 벌써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공원 내 취사는 꿈도 꾸지 못하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제티 오구즈 계곡으로 들어와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 먹고 쉬었다 가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고 한다. 실제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 곳곳에 조금 넓은 곳이 있다 싶으면 어김없이 불 피운 흔적이 있었다. 우리도 잠시 캠핑의 맛을 느껴 보기로 하고 가이드가 챙겨 온 휴대용 버너에 불을 붙였다. 


원래 야외에서 먹는 라면 맛은 일품인데 설산을 배경으로 설산이 녹은 시원한 계곡물 옆에서 끓여 먹는 라면 맛은 '죽여준다'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표현이 너무 가난했다. 우리는 젓가락질을 하며 "말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던 어느 광고처럼 연신 "와~ 죽인다"만 연발하였다. 그때 라면 맛을 생각하니 다시 입에 침이 고인다. 설산을 배경으로 울창한 침엽수립 계곡으로 잠시 차를 세워 놓고 설산이 녹아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옆에 두고 끓인 라면 맛을 보지 않은 사람은 진짜 라면 맛을 말할 자격이 없다. 

▲ 제티오구즈 계곡 안 넓은 초원 제티오구즈 계곡 안에는 생각보다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
▲ 자작나무 숲 제티오구즈 계곡 안 자작나무 숲
▲ 제티 오구즈 계곡 제티 오구즈 계곡에 가면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라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중앙아시아의 알프스

제티 오구즈 계곡은 키르기스스탄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경관 중 하나다. 그만큼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멋진 경관이다. 실제로 비슈케크 시내 화가의 거리에 갔더니 그곳 그림 속에도 이 멋진 계곡을 만날 수 있었다. 


계곡에 들어서면 산 아래에 넓은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과 말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보았던 드문드문 풀들이 누워있던 스텝 지역의 초원과는 차원이 다른 초록 초록 살찐 풀들과 어우러진 수줍은 야생화들이 진짜 초원이 어떤 모습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능선이 시작되는 곳부터는 잘 생긴 자작나무들이 도열해 있고 그 위쪽으로는 쭉쭉 뻗은 가문비나무들이 빽빽하게 산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울창한 침엽수 숲으로 둘러싸인 만년설을 품은 설산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 풍광이라니. 스텝 지역 특유의 건조하고 황량한 벌판을 보다가 전혀 다른 이곳 풍광이 우리 눈을 호강시켰다. 과연 유리 가가린이 쉬러 올 만한 곳이었다.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라 부르는 이유가 딱 이거였다."

▲ 아름다운 제티 오구즈 계곡 제티오구즈 계곡은 초원과 울창한 침엽수림이 어우러져 키르기스스탄 다른 곳과 완전히 다른 풍광이었다.
▲ 제티오구즈 계곡 제티 오구즈 계곡에서는 유목민의 후예들이 권하는 가벼운 승마 체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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