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호수 앞두고 끙끙 앓다.
키르기스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유목민 후예의 나라들이다. 그들은 톈산산맥과 파미르 고원이 품은 초원을 오가며 수천 년 동안 말과 양과 소 등 가축을 따라 이동하며 삶을 이어왔다. 산업화나 도시화가 되면서 많은 유목민들이 유목의 삶을 버리고 도시로 모여들었고 일부는 돈을 따라 더 큰 도시, 더 잘 사는 나라로 떠났지만 아직도 도시 외 지역에선 여전히 유목민의 후예들이 초원을 따라 가축을 몰며 살아가고 있다.
유르트 천장의 환기창 무늬
그들이 유목민의 후예임을 알려주는 상징들을 키르기스스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 나라 국기에도 유목민의 상징이 형상화되어 있다. 키르기스스탄 국기는 붉은 바탕에 가운데 태양 닮은 노란색 모양으로 되어 있다. 그 정중앙에 표시가 바로 그들의 이동식 주거지 유르트 Yurt(유르타-러시아어, 키르기스어에선 '회색 집'이란 뜻의 '보즈위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유르트라고 함)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유르트는 몽골의 게르와 유사한 이동식 천막으로 키르기스스탄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유목민들의 상징과도 같은 거주지다. 이 유르트 천장 중앙에는 열고 닫을 수 있는 둥근 환기창(구멍)이 있는데 키르기스스탄 국기 가운데 그려져 있는 문양이 바로 이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유목민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유르트를 그들이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키르기스스탄에서는 국기 외에 거리 곳곳에서도 이 천장 문양을 만날 수 있었다.
유목민들은 유르트 천장의 창을 통해 태양을 볼 수 있고 밤하늘 별을 볼 수도 있다. 유목민들에게 하늘은 지도와 같다. 수천 년 동안 유목민들은 하늘의 별을 보며 시간을 읽고, 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고, 하늘의 별을 보며 삶을 이어왔다. 하늘의 별을 보고 겨울이 다가옴을 읽어 내고, 하늘의 별을 보고 겨울이 지나는 것을 읽어 내어 말과 양, 소 등 가축과 함께 생존지를 찾아 옮겨 다녔다.
하늘의 보고 시련을 준비하고 하늘을 보고 풍요로움을 찾아 떠났던 유목민들에게 유르트 천장의 창은 오래된 지도였던 셈이다. 유르트 천장 문양이 키르기스스탄 국기 정중앙에 자리 잡은 이유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쉽게도 날씨와 여러 가지 여건 상 유르트 천장으로 별을 보지 못했다. 꼭 다시 가서 유르트 천장으로 초원의 별을 보며 춤을 추고 싶다. 가이드에게 살짝 얘기했더니 이번에는 일정 때문에 못 갔지만 송쿨 초원에서 별을 한 번 봐야 진정한 초원의 맛, 유목민의 삶을 알 수 있다고 귀띔한다. 못 먹어 본 떡이 더 먹고 싶고 갖고 싶은 법이다. 다음에 다시 키르기스스탄에 간다면 송쿨 호수는 무조건 첫 번째 목적지가 될 듯하다.
유목민의 땅 정령들에게 신고식
'몸이 왜 이러지?'
여행이 시작된 둘째 날 비슈케크에서 느지막이 출발하여 저녁 무렵 이식쿨 호수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식쿨 호수 주변 유르트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묵는 일정이었다. 관광객을 위해 유르트를 지어 놓고 숙박객을 받는 체험형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전기불과 손님용 간이 매트리스를 빼고는 전통방식 그대로였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오른쪽 엉치뼈가 아파서 걷지도 못할 정도의 통증이 왔다. 친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유를 물었지만 나도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차를 오래 타서 그런가? 조금 쉬면 괜찮겠지 뭐.'
별 일 아니라고 넘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몸이 떨리면서 오한이 왔다. 처음 겪어보는 몸 상태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저녁 먹으며 반주도 한잔하며 춤추며 놀 생각이었는데 물거품이 되었다. 그토록 기대했던 유르트에서 직접 자보는 날인데 아픈 내가 실망스러워졌다. 무엇보다 이제 여행 시작인데 혼자 몸이라면 일정 조정하면서 다니면 되는데 일행에 짐이 될까 봐 더 걱정이었다.
식사 후 '일단 쉬면 낫겠지'하면서 숙소 유르트로 걸어가는데 오한이 심해지며 온 몸이 벌벌 떨렸다. 너무 아파 매트리스에 그대로 누워 두 겹으로 이불을 덮고 비상용으로 가져온 핫팩을 배에 붙였다. 잠깐 잠이 들었던 모양인데 내리치는 비바람 소리와 이식쿨 호수의 파도소리에 잠을 깼다. 비몽사몽 중에 몸이 붕 뜬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떤 힘이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 같았다.
'어라 몸이 안 아프네.'
밤새 비몽사몽 끙끙 앓았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몸이 안 아프니 여행의 흥분이 다시 돌아왔다. 그 뒤로는 엉치뼈도 다시 아프지 않았고 여행 내내 무탈하게 지나갔다. 마지막 날 여행 뒤풀이 겸 술 한잔 하는데 첫날 내 몸이 아팠던 원인을 스스로 진단해 냈다.
"이식쿨 호수의 정령과 유목의 땅 정령들에게 신고식 하느라 그랬던 거 같아."
농담으로 던진 내 말에 친구와 형은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살아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역마살이 끼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20여 년 직장 생활 중에도 반 이상은 지방근무로 전전해야 했다. 생각해보니 역마살이라기보다 나에게 유목민의 피가 섞여 있지 않았나 싶다. 이번 여행 중에 아팠던 것도 다 그런 연유라고 나는 철석같이 믿고 있다. 먼 조상들의 땅에 처음으로 갔으니 그곳 정령들이 나를 알아보고 '너 왜 이제 왔니?'하며 신고식을 치른 것이다.
'이식쿨에서의 알 수 없던 아픔, 이거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시 오라는 말이 확실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