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 펼쳐지면 별 말 못 하고 입만 벌리게 된다. 키르기스스탄의 휴양도시 '촐폰아타(Cholpon Ata)' 대형마트에서 벌어진 일이다. 우리는 너무 멋진 호수에 취해 리조트 내 해변 아니 호변 비치체어에서 놀기로 했다. 맥주를 사기 위해 시내 마트에 들렀다. 맥주를 찾아 헤매던 중 진열대 코너에 뭔가 반짝이는 것들이 눈길을 끌었다. 호기심이 일었다.
▲ 촐폰아타 대형마트 진열대 생선 말린 물고기들이 포장도 없이 마트 진열대에 놓여 있었다.
"아이고 깜짝이야. 저게 가능해?"
청어처럼 생긴 말린 생선들이 포장도 없이 진열대에 맨 몸으로 누워 있었다. 아무리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다지만 상상하지 못한 낯선 모습에 그저 혀를 내둘렀다. 맨 몸으로 이방인을 째려보던 그 물고기 눈빛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 생선들은 '이식쿨(Issyk Kul)' 호수에서 잡히는 물고기들로 찜으로 해 먹으면 맛있다고 한다. 실제 호수 주변 시장에서는 이런 말린 물고기를 파는 상점을 많이 볼 수 있었다.
▲ 이식쿨 호수 주변 생선가게 이식쿨에서 잡은 물고기를 말려 팔고 있었다.
"와아~"
생선 눈빛에 놀라 아무 말도 못 했던 것처럼 이식쿨(Issyk Kul) 호수를 처음 접했을 때 딱 그랬다. 하루 종일 끝없이 펼쳐진 벌판과 민둥산 사이를 달려 마주한 풍광에 말문이 막혔다. 이 나라는 평균 해발고도가 2750m에 이르는 고산 국가라고 하는데 이런 장관을 접하게 되니 현실감이 떨어졌다.
▲ 이식쿨호수 이식쿨 호수는 해발 1,600여미터에 위치한 세계에서 두 버ㄴ째 큰 산정 호수이다.
▲ 이식쿨호수 석양 이식쿨 호수에 일렁이는 윤슬이 여행자를 사로잡았다.
"진짜~ 대~박! 와~~!"
눈앞에 펼쳐진 유리처럼 투명한 호수 아니 바다를 접하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고 청량감과 황홀감에 취해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직접 보면 한눈에 반할 거라던 가이드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가기 전부터 이식쿨 호수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실제 눈으로 보는 느낌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컸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은 진리다. 아무리 내가 멋지게 표현한다고 해도 직접 가서 보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임을 다시 밝힌다.
하늘 위에 호수, 이식쿨
▲ 이식쿨호수 해발 1600여 미터에 위치했다고 믿겨지지 않았다.
▲ 이식쿨호수 눈처럼 생겨 "지구의 눈"이라고도 부른다.
이식쿨(Issyk Kul) 호수는 키르기스어로 '따듯한 호수'라는 뜻으로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는 호수로 유명하다. 크기가 우리나라 경상북도 정도로 세계에서 티티카카 호수 다음으로 큰 산정 호수이다. 무려 해발 1600m에 있는 호수라고 하니 '하늘 위에 호수'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이식쿨 호수는 가로 182km, 세로 60km, 깊이 702m에 이르며 우주에서 보면 마치 눈처럼 생겼다고 해 '지구의 눈'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톈산산맥으로부터 시작된 약 80여 개의 강물들이 흘러들어 모인 물이 호수를 이루는데 흘러 나가는 물길이 따로 없는데도 썩거나 오염되지 않고 이렇게 맑은 물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고인물은 썩는다'는 속담이 이곳에선 맞지 않는 셈이다.
이식쿨(Issyk Kul)은 직접 보면 호수라기보다 바다처럼 보인다. 심지어 물도 바닷물처럼 짠물이다. 수평선 넘어 만년설 쌓인 톈산산맥이 없었다면 그저 바다로 여겼을 것이다. 처음 접하면 이런 이색적인 풍광이 신비롭게 느껴지며 사람을 홀리듯 빨아들인다.
호수의 투명함 속에 온몸을 풍덩
▲ 이식쿨 호수 수영 투명한 물 속에 풍덩! 청량감이 온 몸을 감싸 안았다.
▲ 이식쿨 호수 수영 맑고 투명한 호수 물 속은 생각보다 훨씬 청량감을 주었다.
이식쿨 호수 일주 일정 마지막 날은 휴양도시 촐폰아타(Cholpon Ata)의 고급 리조트에서 묵었다. 촐폰아타는 키르기스스탄의 다른 곳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휴양도시답게 최고급 리조트들과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구소련 시절에는 유명인들도 자주 찾는 곳이었고 지금도 주말에는 이웃나라 카자흐스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하니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중앙아시아에선 꽤 유명한 휴양도시인 셈이다.
▲ 이식쿨 호수 잇식쿨 호숫가 도시 촐폰아타는 휴양도시로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우리는 이곳에서 배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로 들어가 수영 체험을 하는 호사를 누렸다. 배를 타고 호수 중앙으로 나가는 동안 눈에 든 풍광이 현실감을 빼앗았다. 바다 같은 잔잔한 호수와 그 뒷 배경으로 펼쳐진 눈 덮인 텐산산맥이 마치 동화 속 나라 같았다.
호수 중앙으로 한 참을 달린 배가 멈추더니 뱃머리에서 직원으로 보이는 청년이 나타나 우리에게 구명조끼를 입혔다. 다들 망설이는데 내가 제일 먼저 호수의 투명함 속으로 뛰어들었다. 호수의 청량한 쾌감이 정수리를 거쳐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바람이 불어 날씨가 조금 쌀쌀했는데 물속에 들어가니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아 이래서 열해(熱海)라고(중국 사서) 소개되어 있었구나.'
살짝 물맛을 보았다. 염수호라고 하더니 바닷물처럼 짜지는 않았지만 입안에 분명 짠맛이 돌았다.
'바다구만 뭐~ 아주 청량한 바다.'
▲ 이식쿨 호수 수평선과 어울어진 텐산산맥이 마치 동화 속 나라를 보는듯했다.
돌아온 지 벌써 3주가 돼 간다. 며칠째 열대야로 잠을 못 자고 있다. 남들은 바다로 산으로 휴가를 떠난다는데 난 이미 휴가권을 쓴 셈이니 투정도 못하고 더위를 맞는다. 이렇게 찜통더위를 버티려니 자꾸 '청량한 바다' 이식쿨(Issyk Kul) 호수가 그리워진다. 마트에서 나를 놀라게 한 그 물고기 눈깔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