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년홈즈 May 31. 2024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예비창업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아 그때 누군가 목숨 걸고 말려줬으면.'
나는 1억2000만 원을 1년 반 만에 870만 원으로 만든 어마어마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말이 1억2천이지 이 돈을 모으려면 직장생활로 생활비 빼고 10년도 더 모아야 한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전설이 된 지는 오래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사용연한은 몇 년일까? 아마 길어야 25년일 게다. 이는 임원까지 탄탄대로를 걸은 사람 얘기다. 대부분은 20년도 안 된다. 그런 면으로 보면 대부분 직장인들은 예비 자영업자다. 이것이 현실임에도 직장생활 동안은 이에 대해 무감각하다. 그러다가 막상 퇴직을 하게 되면 마땅히 할 일을 찾기 쉽지 않다. '치킨집이나 하지 뭐' '할 거 없으면 식당이나 하지'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19년 차에 갑자기 백수, 내가 한 최악의 선택 
나도 한때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첫 직장 19년 차에 갑자기 백수가 됐다. 강제 퇴직당하고 1년여 동안 도서관을 전전하며 퇴직금을 탕진했다. 그때 선택한 길이 국수장사였다. 시작은 맛의 고장 전주에서였다. 국수장사를 하던 선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호텔요리사 경력이 있던 형이었다. 전주에서 국수장사를 한다길래 한번 내려가 그 국수 맛을 보고 반했다.

'이거다' 싶었다. 직장생활 동안 식당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었는데 그런 결정을 내렸다. 국수 맛에 반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긴 백수생활에 몰려 판단이 흐려 그랬는지 여전히 아리송할 뿐이다.

일단 결정을 하고 나니 주변 반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준비하며 읽었던 외식업 성공담들이 자신감을 심어줬고, 사업계획서를 쓰며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더욱 견고해졌다. 앞길이 꽃길로만 보였다. 매일 밤 그 꽃길을 걸으며 희망에 살을 찌웠다. 시작도 하기 전 나는 이미 국수 프랜차이즈 그룹의 총수가 돼 있었다. 그런 큰 꿈을 그리며 국수가게를 오픈했다.

그리고 정신없이 한 달을 보냈다. 제법 장사가 되니 피곤한 줄도 몰랐다. 하지만 두어 달 지나니 '개업 빨'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조금씩 손님이 줄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르스라는 전염병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전주에서도 1명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날 뒤로는 기억하기도 싫다. 1~2주 버티면 다시 원상태가 될 줄 알았는데 그때 빠져버린 손님들은 이후 복구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심정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하기도 했다([자영업자의 겨울나기] 국숫집 사장 속 터지는 사연, 박 대통령은 알까).                                           

▲ 국수장사 개업 나도 한 때는 사장이었다.

근거 없는 믿음이 가져오는 재앙은 참혹했다. 백만장자가 되기 위해 시작한 자영업자의 길은 지옥도 자체였다. 그저 '잘 되겠지'라는 허망한 믿음으로 1년 반을 버텼다. 식재료비 외상값이 쌓여가고 임대료가 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눈 뜨면 그저 하루가 살아졌다. 하루종일 손님 기다리느라 목이 길어졌다. 몇 달이 지나니 이러다가 내가 기린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괜히 기린이 불쌍해 보였다.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어느 날인가 눈을 떴는데 천장이 내려오고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친구 손에 끌려 병원에 갔더니 공황장애 초기 증세라고 했다. 오른손 검지 손가락도 찬물에 닿으면 마치 동상에 걸린 것처럼 감각이 뻣뻣해졌다. 신경외과, 한의원 등 여러 병원을 가봐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피부 이곳저곳이 가려워 긁어대니 온몸이 벌겋게 열꽃이 피어올랐다. 피부과에 갔더니 스트레스에 의한 알러지 반응 같다는 진단을 했다. 장사도 안 되는데 몸이 아파오기 시작하니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열 명 중 한 명은 폐업하는 지옥도 불구덩이


▲ 국수집 메뉴판 맛으로 승부하지 마라.


국수장사 망한 지 근 10년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요즘 이 나라 돌아가는 꼴이 하도 사나워 아픈 상처를 다시 소환한다.


자영업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지금이 코로나 시절보다 더 어렵다고 난리다. 정치권에서는 매일 '민생'을 동네 개이름 부르듯 불러대지만 나아지는 게 없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자영업자 폐업률은 9.5%라 한다. 폐업자 수는 91만1000명으로 전년 대비 11만1000명 늘어난 수치다. '자영업자 지옥공화국'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끔찍한 수치다. 그럼에도 많은 창업자들이 오늘도 이 지옥도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뒤늦은 후회를 한다. 그때 주변 말을 들어야 했고 말리는 책이라도 읽었어야 했다. 사실 시중에 창업을 말리는 책은 거의 없다. 그런 책은 팔리지 않으니 출판되지 않는다. 서점에 널린 책은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의 책이니 말리기는커녕 창업을 부추기는 불쏘시개일 뿐이다. 그뿐인가. 각종 매체는 일부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담을 조미료를 쳐가며 홍보한다. 창업에 대해 공부할수록, 관심을 가질수록 더 빠지며 남의 말을 안 듣게 되는 이유다.


이러니 창업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다른 사람 말은 안 들린다.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자가충전 되며 다른 사람 말이 들어갈 틈이 없어진다. 지금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는 수많은 예비창업자들도 아마 이와 같은 상태일 것이다. 물론 성공한 사람도 1~2%는 있다. 이것이 가장 큰 함정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자영업자는 매일 고용불안에 떨어야 하는 비정규직 삶이나 다를 바 없다. 지금 창업하는 자영업자 10명 중 8명이 5년 안에 폐업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백만장자가 되겠다며 들떠 있는 예비창업자들을 말리고자 이 글을 썼다. 특히 퇴직, 은퇴자 중에 '식당이나 하지' 하는 생각으로 치킨집, 카페, 작은 식당 등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발 하지 마시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안에 망해도 좋다는 배짱이라면 말리지는 않겠다. 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한다는 주의자들은 참으로 말리기 어렵다.


오마이뉴스 기고: https://omn.kr/28us5



매거진의 이전글 화가 허윤희 개인전 <여는 바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