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치 그리고 남태령을 넘은 한판 저항 굿

가짜 굿과 무당이 판치는 세상... 우리 굿을 위한 변명

by 청년홈즈

그날 밤 고개는 몹시 추웠다. 영하 7도, 체감온도는 무려 영하 10도를 밑돌았다. 추위는 배고픔과 함께 인간이 느끼는 가장 처절한 고통 중 하나다. 전국에서 트랙터를 몰고 올라온 전봉준투쟁단 농민들은 그 추위 속에서 무려 28시간 동안이나 경찰의 차벽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불의와 맞선 한판 저항 굿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농민들은 130년 전 넘지 못했던 그 고개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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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7시 남태령 고개에서 사당역을 거쳐 한강진역에 도착한 트랙터 행렬을 환영하는 사람들. 21일 오후 전국 각지에서 트랙터 행진을 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전봉준 투쟁단'이 서울에 들어오려다 경찰에 저지되자,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남태령고개로 달려와 밤샘 시위를 벌였다.


12.3 내란 음모가 밝혀질수록 이번 사태의 배후에 가짜 굿, 가짜 무당들이 도사리고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들의 주술사적 면모는 일찍이 후보 시절부터 드러났다. 손바닥에 王자를 쓰고 나오질 않나, 천공이니 건진법사니 하는 주술사 이름들이 등장하며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지난 여름 갑자기 나타난 명태균이라는 인물은 대통령 부부를 '장님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로 칭하며 그들의 행태를 폭로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번 내란 음모에 깊이 개입한 보안사령관 출신 노상원이라는 인물은 점집을 차리고 아기보살을 모셨던 무당이었다고 한다. 저런 가짜 무당 무리들에게 나라를 맡겼다고 생각하니 그저 귀가 막히고 숨이 막힐 뿐이다.

그러잖아도 사람들은 굿이라는 말에 부정적 인식을 갖는데 저렇게 주술에 물든 가짜 굿, 가짜 무당들이 판치고 있으니 진짜 우리 굿 문화에 대한 편견이 생길까 걱정된다. 정말 굿이 그렇게 부정적이고 나쁜 것인가?


'굿은 참 좋은 것이여." 나의 풍물 선생님이 굿은 푸지고 재미지게 놀아야 한다며 늘 했던 말이다. 초대문화부장관 이어령 선생은 이 굿이라는 말을 부조화 상태를 조화의 상태로 아픔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굿은 참 좋은 것'이라고 했던 말과 상통한다. 두 어른의 말처럼 굿은 참 좋은 것이지 결코 부정적이고 나쁜 것이 아니다. 가짜 굿, 가짜 무당이 문제일 뿐이다. 영어로도 'Good'은 좋다는 뜻이니 동서양 따질 것 없이 굿은 참 좋은 Good이다. 그러니 굿은 나쁜 것이 아니라 Good이다.


한국인에게 굿은 삶이다.

진도씻김굿은 망자의 극락왕생을 빌고 천도하는 대표적인 국가무형문화재이다. 이 굿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하고 춤추며 망자의 맺힌 한을 풀어주고 이를 신명으로 끌어올린다. 맺힌 것을 풀어 부조화의 상태를 조화의 상태로 끌어올리는 화합과 통합의 축제다. 그러니 슬픔도 기쁨이다. 굿의 긍정성이다. 직접 본 사람이라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인들에게 굿이라는 말은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되는 무당굿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굿은 삶이다. 실제로 한국인들은 굿을 일상에 들여와 '무당굿'보다 훨씬 더 폭넓게 쓴다. 때와 장소에 따라 마당굿, 풍물굿, 사랑굿, 노래굿, 화합굿, 평화굿과 같이 한판 마당 문화와 결합시켰다. 인생을 한판 굿으로 본 것이다.


이렇게 부조화의 상태를 조화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굿에는 저항정신이 들어 있다. 부조화를 깨기 위해서는 저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대표적 민중문화인 남사당패 공연이나 탈춤, 마당극 속에는 이러한 저항 정신이 들어 있다. 나라가 도탄에 빠지고 농촌사회가 붕괴되자 수많은 떠돌이 유랑민들은 생존의 도구로서 굿을 팔아야 했다. 떠돌이 광대들은 굿 속에 기득권에 대한 원망과 응어리진 마음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냈다. 그렇게라도 해야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고 살 수 있었다. 이는 바른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천성이기도 하다. ('한국, 한국인'의 저자 이종선 선생은 한국인의 대표적인 천성 중에 하나로 정의로움을 꼽았다.)


이 정의로움을 위해 목숨을 던진 죽음의 저항 굿판이 있었다. 바로 동학농민군의 최후결전지는 우금치 전투였다. 학창시절 풍물 선생님으로부터 우금치전투에서 제일 선두에 섰던 이들이 바로 풍물굿패였다는 말을 들었다. 우금치 고갯마루에 최신식 게틀링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맞선 농민군의 무기라고는 화승총과 조총 몇 자루 그리고 죽창이 전부였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농민군의 맨 앞에는 악기 하나 달랑 든 풍물패들이 섰다. 총알받이가 된 그들은 풍물을 울리며 고갯마루를 향해 나아갔다. 농민군은 사냥감에 불과했다. 하지만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죽은 자의 북을 다시 메고 계속 나아갔다. 그렇게 몰살된 동학동민군의 피가 공주 시내를 가로지르는 재민천을 붉게 물들였고 금강까지 흘러들었다고 한다. 그때 죽어간 조상들의 그 피를 거름 삼아 지금 우리가 있다. 한강 작가의 말처럼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숙연해진다.


"깃발을 흔들고 북을 울리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올라오는 저들은 그 어떠한 의리이며 그 어떠한 담략인가. 그들의 행동을 생각함에 뼈가 떨리고 마음이 서늘하다."
- 관군 좌선봉장 이규태의 '선봉진 일기' 중에서.

그날 처절했던 죽음의 저항 굿에 대한 관군의 기록이다.


우리의 굿은 부정적인 주술이 아니다

조상들의 이러한 저항 굿 정신은 1970,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거쳐 오늘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70, 80년대 학생들은 시대의 풍자와 해학을 마당극에 담았고, 농민군의 저항 정신을 이은 풍물패들은 악기하나 달랑 메고 시위의 맨 앞에 섰다. 8년 전 시민들은 국정농단 세력에 대항해 촛불을 들었고, 이번 내란 음모 세력에게는 응원봉을 들었다. 선배들이 풍물과 짱돌, 풍물과 화염병을 들었었다면 이 시대 청년들은 기발한 문구의 깃발과 K팝 음악과 응원봉으로 저항을 표시했다. 청년들은 ''다시 만난 세계'와 'APT'를 부르며 축제와 같은 한판 저항 굿판을 벌였다. 달랑 북 하나 메고 우금치 고개에서 죽음으로 저항했던 동학농민군과 뼈에 파고드는 추위에도 응원봉 하나 들고 나선 청년들이 무엇이 다른 가? 죽음을 무릅쓰고 우금치 고개를 향하던 농민군의 마음이 곧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깃발이었고 남태령 고개의 응원봉 빛이었다.


우리 굿은 결코 부정적인 주술이 아니다. 굿은 아픔을 치유하고 맺힌 것을 풀어주는 참 좋은 Good이다. 부조화를 조화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화합과 통합의 축제다. 일개 쿠데타 무리들이 벌였던 가짜 무당, 가짜 굿으로 욕보일 우리 굿 문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루빨리 자유와 평등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진짜 저항 굿으로 혹세무민 하는 가짜 굿 무당 무리를 몰아내야 한다.


여의도와 광화문 그리고 남태령 고개를 밝혔던 응원봉 불빛을 보며 세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세대가 바뀌었음을 깨닫는다. 암울한 시절, 그나마 청년들에게 희망을 본다.


오마이뉴스 송고: https://omn.kr/2bm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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