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없이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포장할 수 있을까
보통 작업실에서 밤 열한 시나 열한 시반쯤 집에 오는데, 그때는 우리 동네에 쓰레기 수거차가 오는 시간이다.
아파트 앞에는 분명 작업실에 가는 길에는 없던 쓰레기 언덕이 하나씩 생겨있다. 쓰레기 더미를 볼 때마다 심난하다. 저 쓰레기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 동네에서만 저렇게 나오는데, 서울, 한국, 세계를 다 합치면 매일매일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 걸까.
도시에 사는 현대인이 일주일 동안 평균적으로 섭취하는 미세 플라스틱은 약 2천 개로, 매주 신용카드 한 장을 먹는 것과 동일하다고 한다.
플라스틱을 점진적으로 전 세계가 아예 생산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수는 없는 걸까? 현재로서는 마땅한 대체품이 없고, 코로나로 어쩔 수 없이 일회용품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을 알지만, 인류는 분명히 플라스틱 없이도 살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 삶(Zero Waste Life)을 실천하고 있는 Lauren Singer라는 환경운동가이자 사업가의 강연을 봤다. 3년 동안 그녀가 쓰고 남은 쓰레기는 작은 유리병 하나에 다 들어갈 정도로 적다. 그녀가 처음 이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칫솔과 치약조차도 플라스틱이 아닌 제품은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pF72px2R3Hg
그녀는 플라스틱에 담긴 치약 대신 천연치약을 사용하고, 비닐 포장된 식료품 대신 근처 농장에 가서 필요한 식자재를 직접 구해왔다고 한다. 나는 환경학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그녀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도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지구를 아껴주고 싶다.
2018년에 나는 처음으로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 참가했다. 판매 품목은 포스터, 엽서, 스티커와 같은 지류 상품이 대부분이었다. 지류 상품은 손톱 같은데 긁히면 쉽게 흠집이 나기 때문에 인쇄소에 주문할 시에 낱개 포장할 수 있는 플라스틱 봉투를 함께 주문했다. 그리고 페어를 진행하면서 바로 후회했다.
어차피 대부분의 상품의 포장지는 구매 후 벗겨진 후 버려지는 수순인데, 흠집 없이 집까지 가져가기 위한 목적으로 플라스틱 봉투를 사용하는 것은 낭비라고 밖에는 생각이 안되었다. 내가 그림 상품을 제작하고 판매함으로써, 불필요한 쓰레기를 생산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2019년에 또 페어를 참가하게 되었고, 나는 플라스틱 봉투 대신 청첩장용으로 쓰는 종이봉투를 대량으로 주문했다. (원래는 플라스틱 봉투처럼 투명하게 그림이 다 비치진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그림이 보이는 기름종이 봉투를 사용하고 싶었는데 기름종이 봉투가 그렇게 비싼지는 생각도 못했다!) 청첩장 봉투를 500장 정도 주문하고, 페어 부스에는 다음과 같은 작은 안내문을 붙였다.
"플라스틱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종이봉투를 사용합니다.
원하시는 상품을 말씀해주시면 새 상품을 넣어드리지만, 작은 흠집이 생길 수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현재 그림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준비 중인데,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바로 포장방식이다. 작은 지류 상품은 청첩장 봉투로 해결이 되지만, 큰 사이즈의 제품은 또 다른 포장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종이 포장재도 어쨌든 나무를 잘라야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대체품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 뿐만 아니다. 내가 매일 쓰는 아크릴 물감들도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고, 붓의 핸들도 플라스틱이다. 아크릴 물감 대신 분채나 석채를 쓰고, 서양화 붓 대신 나무로 된 수제 동양화 붓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연은 내 그림의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이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자연을 해치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 모순을 줄이고 지구를 지켜줄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인스타그램: @byjea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