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체'에 대한 생각

피터 시스와 호안 미로

by 진청
Me painting Dolphins (2020), 진청

좋아하는 작가 중 피터 시스(Peter Sis)라는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가 있다.

출판사를 다닐 때, 어떤 책 속의 삽화를 보고 처음 접하게 된 작가다. 아래 사진처럼 장인정신으로 한 땀 한 땀 그려낸 것 같은 그림의 깊이 있는 밀도와 신비스러운 분위기에 한눈에 매료되었다.

THE THREE GOLDEN KEYS, Peter Sis

그렇게 마음속에 좋아하는 작가로 저장해두었는데, 몇 달 전 우연히 가게 된 그림책 모임의 주제가 마침 피터 시스였다. 발제자가 다른 사람이라서 크게 리서치를 하지는 않고 갔는데 책상 위에는 처음 보는 낯선 그림책 몇 권이 놓여있었다.


놀랍게도, 전혀 다른 사람이 그린 것 같은 그림책은 다름 아닌 피터 시스가 그린 그림책이었다. 내가 보고 어리둥절했던 피터 시스의 또 다른 그림체는 바로 아래 이미지다. 사전 지식 없이는 같은 작가가 그린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 그림의 감성과 분위기는 상이하다.

FIRE TRUCK, Peter Sis

피터 시스 뿐 아니라, 그림체가 변하거나 동시에 다른 그림체를 가지고 있는 작가들은 수없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작가인 호안 미로(Joan Miró) 역시 전기와 후기의 그림체가 아주 다르다. 많은 회화 작가들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구상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추상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아래 두 이미지 중 전자가 전기, 후자가 후기에 해당하는 그림이다.

Poble i església de Mont-roig, Joan Miró
Peinture, Joan Miró


한 작가에게는 여러 그림체가 있을 수 있다.

당시의 감정, 환경에 따라 그림체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작가 그림들을 볼 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데, 이 사실을 스스로에게도 적용하고 수긍하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렸다.


나는 어떤 소재를 어떤 재료로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그림체가 조금씩 바뀌는 편이다. 아래 세 그림은 모두 내 그림이다.

첫 번째 그림은 동양화 안료인 분채로 풍경을 그린 작업이다.

두 번째 그림은 아크릴 물감으로 동물을 그린 작업이다. 세 번째 그림은 색연필로 정물을 그린 그린 작업이다.


마음이 사막으로 달음질치는 모든 이들에게 (2016), 진청
Save the Sea (2018), 진청


Shell Drawing (2018), 진청


실은 그 동안 그림체가 바뀌는 것 같으면, 일관성이 없다고 스스로를 조금 책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동시에 여러 그림체를 가지고 있거나, 마음과 상황에 따라 그림체가 바뀌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림체가 바뀌는 것은 지양할 일이 아니라 자신만의 그림의 정체성을 구축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스타그램: @byjeanc

https://www.instagram.com/byjea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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