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방학했다.

by 지은

아들이 방학했다.

아주 중요한 사실은 코로나 시대에 방학을 했다는 것이다. 방학과 외동이란 단어를 합쳐놓으면 굉장히 끈질긴 무시무시한 것이 된다. 거기에 코로나라는 단어까지. 이 삼합은 코를 뻥 뚫는 시원함을 넘어선 아주 코를 날려버릴 수 있는 놀라운 힘이 만들어진다.


코로나가 생기기 전 방학이 시작되면 아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자전거를 타고 축구를 하며 하루 종일 밖에서 신나게 뛰어 놀았다. 놀다 보면 끼니도 거르기 일쑤였다. 처음엔 그런 아이를 끼니때가 되면 찾아 나섰고, 찾고 나서도 “엄마. 더 놀다 들어갈게 응? 제발~~”하는 아이의 애교 섞인 목소리를 들으면 ‘그래 그 나이엔 노는 게 중요하지 끼니가 뭐가 중요하겠어’ 하며 터덜터덜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저 노는 게 먹는 것보다 좋은 나이. 밥도 안 먹고 나가 논다고 내가 주변에 하소연을 하면 “집구석에서 게임하는 것보단 백 배는 나은 거 아냐?”하는 다른 엄마들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아들은 우르르 친구들을 몰고 다녔다. 다들 밥을 안 먹고 놀다 보니 배가 고프다며 우리 집으로 몰려오는 것이다. 누구 엄마는 일가시고 누구네는 동생이 어리고 누구네는 형이 공부해야 하다 보니 외동인 아들이 생각해도 우리 집 밖에는 갈 곳이 없어 보였 나보다.

방학이 되기 전엔 냉장고를 두둑이 채워 넣는 일이 방학을 순조롭게 맞이하는 자세가 되었다. 아들이 수시로 친구들을 데리고 와도 척척 맛있는 걸 내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으면 난 친절하고 인자한 내친엄이(내 친구 엄마)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아이들이 몰려오면 내 얼굴이 심술궂은 마귀할멈으로 변하기 때문에 심장 약한 아이들을 위해 냉장고는 항상 가득 차 있어야만 했다. 그땐 음식을 차리고 내주는 일이 힘이 들기도 했지만 그저 외동인 아들이 친구들과 잘 어울려 건강하게 뛰노는 게 고맙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라도 비가 오거나 장마가 시작돼서, 또는 한파가 몰려와서 못 나가고 집에 있다 보면 하루 종일 아들과 씨름 아닌 씨름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즈음 가장 무서운 단어는 심심해와 놀아줘다. 둘은 때려야 땔 수 없는 하청일과 서수남처럼 붙어 다녔다. 눈을 뜸과 동시에 아들의 입에선 자동으로 심심해 놀아줘 가 흘러나왔다. 꼭 인형의 손을 누를 때마다 흘러나오는 “사랑해”라는 단어처럼 아들은 눈 한번 깜빡할 때마다 “심심해 놀아줘”를 외쳐댔다. 냉장고 채우는 일은 아들과 놀아주는 일보다 당연히 누워서 코딱지 파는 것 만큼 쉬운 일이기었기 때문에 기꺼이 난 냉장고에 최대한 쑤셔 넣을 수 있는 만큼 또 떨어지기가 무섭게 식품을 채워놓았다.

다들 방학이 힘들다고 할 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마음이 내게는 조금 있었던 것이다. 단지 방학 동안 난 집을 비울 수가 없어서 친구를 만난다던지 근처에서 강의를 듣거나 배우고 싶은 걸 배우는 게 안되었지만 그것도 두 달 후 아들이 학교를 가면 자연히 해소가 될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스트레스는 아니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우왕좌왕하며 못한 학습 일수를 채워야 했기 때문에 작년 여름엔 방학이 열흘뿐이었다. 나이가 마흔을 넘기자 열흘이라는 시간은 숨만 쉬어도 빨리 지나갔다.

그리고 맞이한 코로나 시대의 겨울방학은 전 연도와 같이 두 달이다. 온라인 수업으로 학습 일수를 다 채웠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서울과 달리 봄방학이 없다. 1월 8일 방학을 시작해서 3월 개학날까지 쭉~~ 방학이다.


그리고 어제가 그 방학 첫날인 것이다.


코로나가 심해지자 아파트는 놀이터 풋살장 광장을 폐쇄했다. 아이들이 놀 곳이 없었다. 폐쇄하지 않았을 때에도 전보다 밖에서 노는 아이들이 확실히 많이 줄었다. 친구들에게 놀 수 있나 물어보는 것 자체가 민폐 아닌 민폐가 되었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에서 놀자고 물어보는 것은 분위기 파악 못하는 철부지 어린아이 와도 같았다. 아들과 단둘이 집에서의 24시간. 당장 다음 주까지는 축구를 제외한 학원도 올스톱해놓은 상태다. 온라인 클래스도 없다.


아들은 9시 40분쯤 기상했다. 나 역시 아들이 빈둥댈 때 최대한 같이 빈둥대야 후에 쓸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느지막이 함께 기상했다.

아들은 피아노를 20분 치고 아침밥을 먹고 버튼을 눌렀다. “놀아줘!!!! 나 몸 놀이하고 싶다고!!” 아들은 누가 아들 아니랄까 봐 싸움놀이, 씨름놀이, 닭싸움, 총싸움, 축구 등 몸을 쓰는 놀이를 아주 좋아한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하는 몸놀이는 나에겐 화생방 훈련 같은 매운맛이다.


마침 엊그저께 아들에게 가르친 고무줄놀이가 생각났다. 그땐 고무줄이 없어서 아주 굵은 밧줄로 고무줄을 했었다. 탄성이 없는 밧줄은 고물줄 놀이 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또 굵어서 맨발로 밟으면 발이 아팠다. 토요일엔 그 한파에 나가서 고무줄도 사 왔으니 본격적으로 우린 고무줄놀이를 했다. 정말 다행히도 우리 집은 일층이다. 내가 학창시절에 많이 해서 자신 있는 놀이. 두줄 고무줄. 여차하면 난 고무줄만 잡고 있어도 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수월한 놀이가 된다. 월계 화계 수수 목단 금단 초단 일. 와~ 평소 운동량이 없던 탓인지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아들은 웬만해선 지치지 않는다. 거미가 똥꼬에서 끊임없이 줄을 뽑듯 엄청난 에너지가 작은 몸에서 계속 만들어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아들도 고무줄 앞에선 삼십 분 만에 땀을 줄줄 흘리며 두 손을 들었다. “엄마. 허헉 너무 힘들어~~ 우리 화투 치자~” 나는 브라보를 외쳤다. 앉아서 하는 보드게임은 얼마든지 함께해도 힘들지 않았다.

방학을 즐겁게 보낼 한줄기 빛이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처럼 내 몸을 감쌌다. 기쁨의 눈물이 흐를 지경이다. 이 광경을 보다 못한 아들이 한마디 한다.

“엄마~ 뭐해~~~ 심심해 놀아달라고!!!!!!”

그 후로도 두 번의 고무줄과 화투, 공기놀이를 했다.


고무줄놀이는 작은 공간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세명 이상이 모이면 더 재미있지만 두명만 있어도 한쪽은 나무에 묶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뛰는 동작이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농구 못지않게 성장판을 자극한다. 겨울 철 몸 튼튼 마음 튼튼 아이들에게 고무줄놀이를 가르쳐 보심이 어떨지 생각해본다.

모두 모두 즐겁고 건강한 방학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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