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람들은 천살 까지 살 수 있어?”
“글쎄, 율아 신선 얘기하는 거야?”
“아니~ 아니~ 진짜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음. 엄만 아직 천살까지 산 사람을 보진 못했는데.”
“그럼 엄마 엄만 이백 살 까지만 살아라.”
“그럴까?”
“근데 그게 엄마 마음대로 돼?”
“음.. 건강한 음식 먹고, 운동 열심히 하고, 건강한 생각하고, 생활 규칙도 잘 지키면 좀 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을까?”
“엄마 엄만 나를 몇 살에 낳았어?”
“엄만 율이를 서른세 살에 낳았어.”
“그럼 엄마가 이백 살이면 내가 백육십칠 살이니까. 안 되겠다. 그럼 내가 더 빨리 죽을 수도 있잖아. 엄마. 엄마 그냥 백오십 살까지만 살아라”
“그럴까?”
“그럼 내가 백십칠 살이니까. 안 되겠다. 그래도 내가 더 빨리 죽을 수도 있겠다. 엄마, 그냥 엄마가 백 살에 죽을 때 나랑 같이 죽자. 난 엄마가 없는 게 너무 싫어. 차라리 엄마랑 같이 죽고 싶어.”
아들이 이학년 되는 해에 내가 죽는 날 같이 죽자고 말하며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가슴에 통하는 핏줄을 모조리 고무줄로 꽁꽁 묶었다 푼 듯 가슴이 찌릿찌릿 저려왔다. 한번 내뱉는 숨에 울음이 왈칵 넘칠 것 같아 깜깜한 방 안에서 숨조차도 마음대로 쉬지 못하고 아이만 꼬옥 껴안았다.
태어나서 이토록 수북이 사랑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난 어떤 자격으로 이렇게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일까. 만약 신이 계신다면 내가 엄마에게 못 받은 사랑을 아들에게 몽땅 받도록 율이를 내게 내려 주신 것만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싸우고 엄마 미워를 외쳐대던 시간들을 아들은 그저 물 흐르듯 다 떠나보내고 조금의 앙금도 남겨놓지 않은 듯 하루하루 어제처럼 다시 사랑하는 아들은, 이만큼 어른이 된 나에게 사랑이 뭔지를 가르쳐주는 것만 같다.
“율아. 엄마가 백 살이면 우리 율이가 예순여섯 살이네. 그럼 우리 율이 곁에 율이 닮아 멋지고 사랑스러운 아들 딸과 율이를 사랑하는 아내가 있을 텐데,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놔두고 죽을 수 있겠어?”
율인 외아들이다. 감성적이고, 외로움을 조금 아는 것도 같다. 그런 아이가 안쓰럽고 형제를 만들어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율이 다섯 살 때 강아지를 입양했다. 그걸로 됐다고 아이 마음 대신 내 마음을 위로했던 것 같다. 율이랑 상관없이. 내 마음이 덜 아픈 쪽으로. 결국 어쨌거나 내 마음대로. 난 항상 아이를 위하는 척 그렇게 내 마음을 달래 왔다.
“괜찮아. 난 동생 싫어. 내 친구들도 그랬어. 정말 귀찮고 싫다고. 자꾸 자기 물건 빼앗고 놀아달라 한다고. 그런데 내가 동생이 좋겠어? 동생이 없는 게 나아.”
어느 날 율인 묻지도 않았는데 괜찮다며. 동생이 싫다고 했다. 율이 말에 웃으며 맞장구쳤지만 ‘동생이 정말 필요해요. 엄마 나 너무 외로워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아이의 외로움에 내 가슴이 한겨울 살얼음 얼 듯 얼어서 주먹으로 가볍게라도 치면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았다.
잠든 율이가 엉엉엉 울며 눈도 못 뜬 채로 나를 더듬었다.
“엄마 엉엉엉.... 엄마 죽지 마. 으으 흐흐흑흐흑..... 엄마아~~ 엄마가 죽었어 흐흐흑 엄마~~~ 무서워 ~~ 엄마아~~엉엉엉 나 무서워~~~~엄마 나쁜 사람이 총을 들고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왔어. 바로 엄마랑 아빠를 쏴서 죽였어. 바닥에 피가 흥건했어. 근데 난 혼자잖아. 엉엉엉 흐흐흑.. 아무도없잖아아~~ 엉엉엉. 난 너무 무서웠는데 난 형아도 동생도 아무도 없잖아. 흐흐흑 엄마아~~엉엉엉어엉.....무서워~ 흐흑흑흐... 엄마 죽지 마. 엉엉 엄마아~~~~”
캄캄한 밤에 아이의 비명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도 아이처럼 너무 무서웠다. 혼자 남은 아이를 떠올리자 가슴에 못질을 하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이를 안고 흔들어 잠을 깨웠다. 엄마 여기 있어. 율아. 무서운 꿈을 꿨구나. 괜찮아. 꿈이야 율아. 율아 엄마 여기 있어. 율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집에 쳐들어온 침입자의 총에 엄마 아빠가 죽고 혼자 남은 아이의 공포를 그 온몸이 일그러지는 처참한 고통을 언니가 셋에 동생까지 있는 내가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어른인 나로서도 소름 끼치도록 참아내기 힘든 고통이었다. 아이를 겨우 안정시키고 품에 안은 채로 상체를 왔다 갔다 하며 토닥여서 재웠다. 눈물이 흘렀다. 꾹 참고 있었지만 턱이 덜덜떨리고 어깨가 들썩였다. 내가 입고 있는 잠옷 목덜미 안쪽 어딘가에서 끝없이 내 눈물을 뽑아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제발 꿈을 꾸며 느낀 그 공포를 율이가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작은 티끌 하나 남김없이 잊어버렸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이를 하나만 낳은 벌을 받고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우리 집은 딸만 다섯이다. 우리 자매들은 아빠가 생전에 제일 잘한 일이 하나 있다면 그건 형제를 많이 낳아 준거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곤 했다.
결혼 초 어떤 이유로 나와 신랑은 아들이든 딸이든 꼭 하나만 낳기로 정했었다. 외아들이나 다름없는 신랑 역시 시부모님께서 손자를 원하시더라도 상관없다며 무조건 하나만 낳자고 했었다. 그리고 잘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혼자인 아이들이 더 많을 거야. 그럼 혼자인 아이들 편의로 세상이 만들어질 거고, 벌써부터 혼자인 아이들을 위해 장례절차도 바뀌고 있다고. 자식 많다고 다 사이가 좋진 않아. 하나 낳아서 하나라도 잘 기르는 게 좋은 거지. 너 언니들 많다고 안 외로워? 인간은 원래 그런 동물이야 외로움을 탈 수밖에 없는 그런 동물. 형제 많으면 원하는 것 다 해 줄 수도 없어 너도 알잖아?” “그럼 어쩔 거야 지금이라도 하나 낳던가.”
하나같이 다 맞는 말이다.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말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기도 했고, 언니들이 많은 나도 수시로 외로웠으니까.
아이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힘과 곁에서 일으켜 줄 좋은 사람들이 항상 아이와 함께 하게 해달라고 아이 역시 그들의 그런 친구이게 해달라고 난 밤마다 쌔근쌔근 잠든 아이 곁에서 주문을 외듯 기도를 한다.
오늘도 아이가 형제가 없는 외로움을 덜 느끼도록 나는 진짜 짓궂은 형제처럼 율이와 싸움 놀이를 했다. 화내고 삐치고 토라지고 화해하고 이해하고. 내가 형제와 같을 순 없지만 내가 낳은 내 아이니까 최선을 다하고 싶다.
아이가 외로움이 커지는 날엔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를 종종 돌아보게 된다.
삶에서 많은 것들이 양면성을 갖는다. 어느 길로 가더라도 안가 본 길엔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 율이가 느끼기에 “혼자여서 부모님 사랑을 아주 듬뿍 받고 자랐지” 하며 웃을 수 있도록 율이를 행복한 아이로 키우도록 계속 나를 돌아볼 것이다. 내가 좀 더 나를 잘 보살펴서 율이와 친구로 엄마로 오래도록 행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