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인 올해 초등 3학년이다. 이제 몇 달만 있으면 4학년이 된다. 작년까지 꼬박꼬박 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가 아들이 원하는 선물을 가져다주셨다. 떼를 쓰고 우는데도 때론 나쁜 말을 하고 친구들과 싸웠는데도. 산타 할아버지는 율이를 사랑하셨다.
아들은 크리스마스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고, 우리 부부는 복잡한 머리를 굴리며 아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고르느라 매년 고민했다. 조금이라도 인기 있는 캐릭터는 미리부터 품절이 되기 때문에 빨리 주문을 넣지 않으면 아들이 말 안 듣는 아이가 되어 산타할아버지로부터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때문에 우린 아들이 일 년 동안 말을 잘 들었음을 그렇게 증명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의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날은 우리 부부의 눈치 작전이 빠르게 진행됐다.
“엄마 나 얼티밋 디 버스터 다이노 코어가 정말 갖고 싶었는데 마음이 바뀌었어. 산타할아버지한테 축구화 달라고 할 거야.”
“율아 산타할아버지도 바쁘셔 아마 율이가 갖고 싶은 선물을 이미 포장해놓으셨을 거야. 그렇지 오빠?”
“그럼 그럼 그날 산타할아버지 혼자 온 세상을 다 돌려면 너무 바쁘시잖아. 그래서 아이들 선물은 빨리 준비해서 포장까지 끝내셨을 것 같은데. 아마도 율이가 처음 생각한 거 보내주시지 않을까. 음흠흠..”
매년 크리스마스를 한주도 안 남겨놓고 번복되는 변덕에 우리 부부는 식은땀을 흘렸었다.
신랑은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다.
결혼 전에도 정해진 기념일 생일, 처음 만난 날 외에는 본인이 원하는 날에 선물을 사주었었다.
성탄절? 우리가 왜 남의 생일을 챙겨야 하는데.
빼빼로데이? 그건 상업적으로 팔아먹으려고 만든 날인데 우리가 거기에 놀아나면 되겠어?
부부의 날? 그건 또 언제 생겼데? 우리 부부의 날은 10월 19일이잖아. 왜 우리 날짜를 바꿔.
그날이 무슨 의미든지 상관없이 선물을 주고받으며 약간의 설렘을, 설렘이 감동으로 바뀌는 순간을 밋밋한 하루에 행복을 충전하는 날인 것을 신랑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들이 태어나고 신랑도 조금 변해갔다. 신랑이나 나 나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가 특별한 날이 아닌 집안에서 태어난지라 아들에게만큼은 남의 생일이어도 하나의 이벤트로 다른 가정들처럼 따뜻한 설렘을 주고 싶었다.
내가 어렸을 때 설날이나 추석이 그런 날이었다. 물론 아래층 큰집에(우리 집은 주택에 층 층이 3대가 모여 살았다) 모여 하루 종일 허리도 못 펼 정도로 만두를 빚고, 송편을 만들어야 했지만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고, 죽은 사람보다 집으로 인사 올 산 사람이 많아서 그들의 음식을 수북이 준비했었다. 설 날은 특히나 일 년에 한 번도 제대로 만날 수 없는 친척분들이 할아버지께 인사를 오는 날이라 그분들 게 세배 후 받을 세뱃돈은 아이들을 그만큼 들뜨고 신나게 했고, 세뱃돈이 없는 추석에도 친척분들의 방문에 어느 정도 용돈을 기대할 수 있었다. 용돈이 아니더라도 또래의 친척 언니들과 만나 우르르 몰려다니며 놀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지금은 우리 집만 해도 설 날과 추석이 제사를 위한 음식을 조금 하는 것뿐 우리 세 식구에 어머님만 올라오셔서 세는 명절은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이라기보다 제사 지내는 날이라는 인식만 남은 조용하고 밋밋한 날이 되었다. 사실 설과 추석이 아버님 제사와 다른 점은 티브이에서 명절을 맞이하는 프로그램을 하루종일 방영한다는 것뿐이다.
특히나 세 배를 해도 세 뱃 돈은 어머님과 신랑 지갑에서만 매년 같은 금액이 나오기 때문에 그만큼의 설렘이 율이 에겐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가 학수고대한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또 산사람 위주의 먹고 싶은 음식을 준비하는. 설레고 들뜨고 기다리는 마음에 있어서는 남의 생일을 더 반기는 이유가 되었다.
율이가 일 학년 때부터 이미 형이 있는 아이들 집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온 산타 할아버지의 정체가 들통이 나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율이는 나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선물과 온갖 감언이설에 휩싸여 또 외동이라는 이유로 지금껏 산타 할아버지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3학년이 되던 해 한 번의 고비가 찾아왔다. 삼 형제 중 막내인 율이 친구가 아주 호탕하게 웃으며 율이 에게 약간의 허세를 더해 아직도 산타할아버지를 믿는다는 건 어린아이라며 얘길 해줬고 그 얘길 다 듣고 난 율이가 잘 밤에 동글동글한 눈동자로 나에게 진중하게 산타 할아버지의 정체를 숨김없이 말해줄 것을 요구해왔었다. 그리고 더 이상 선물을 엄마 아빠에게 말하지 않겠다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했다. 하지만 추위에 힘들게 축구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빠는 많은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아들 마음의 빗장을 스르륵 풀어 버리게 했고 율인 자기도 모르게 받고 싶은 선물을 아빠에게 이야기해버렸다. 역시 신랑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고 우리 부부는 그렇게 다시 한번 완벽한 산타 할아버지가 되었었다.
이젠 정말 율이가 크리스마스를 한 달 남짓 남겨둔 상태에서도 우리에게 선물 이야기는 입도 뻥긋하지 않아 더 이상 숨길 방법이 없겠다고 판단했고, 아들의 자주 바뀌는 선물에 너무 부담을 느낀 나머지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마음을 정했다. 아들이 산타할아버지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면 그건 당연히 우리 부부이 입을 통해서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율아 얼마 있으면 크리스마스네. 율인 갖고 싶은 게 있어?”
“응. 흐흐흐 엄마 궁금해?”
“뭔데? 뭐 좋은 거 생각했어?”
“응. 당연하지 근데 엄마 아빠한테는 비밀이야.”
“아. 그렇구나. 비밀. 엄마 아빠한테는 비밀이구나. 근데 율아 요번엔 특히나 꼭 엄마 아빠한테 말해줘야 하는데 어쩌지?”
“왜? 내가 엄마 아빠한테 얘기해야 하는데? 설마... 엄마 아빠가 산타클로스구나? 맞지?”
아들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 일 년이 지나왔는데도 친구들한테 들은 산타 할아버지의 정체를 잊지 않고 있었다.
“응. 사실은 말이야. 엄마 아빠가 맞아.”
“어? 정말이야? 아. 정말이야? 엄마 아빠가 산타클로스야? 와~ 정말 실망이야. 어떻게 그렇게 속일 수가 있어?!”
아들은 반신반의했던 심정을 배신당한 쪽으로 몰고 갔다.
“아~~ 너무해. 근데 전에 엄마 산타할아버지 선물 말고도 엄마 아빠 선물이라고 토끼 인형 큰 것도 줬었잖아. 그건 뭔데”
“이미 율이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샀는데 너무 이쁜 애착 인형이 엄마 눈에 들어왔었어. 우리 율이가 꼭 끓어 안고 자는 모습을 상상하니 꼭 사주고 싶어서 그랬지.”
“와! 진짜 말도 안 돼. 그럼 산타할아버지가 주신 카드는?”
아들을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참 많은 것들을 준비했던 것 같다. 어느 크리스마스엔 정말 좋아하는 만화 슈퍼윙스의 주인공들을 갖고 싶어 했는데 품절될까 미리 사서 장롱 속에 숨겨두었던걸 집에 놀러 온 친구와 집짓기 놀이한다고 작은키에 이불들을 잡아당기다가 장롱에서 쏟아지는 선물에 아들이 환호성을 지른 적도 있었다. 결국 크리스마스 선물을 다시 사야 했던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아들은 계속해서 크리스마스 때마다 있었던 믿기 어려운 일들을 추억하며 질문을 쏟아냈다.
“아 그럼 이제 난 어떻게~~~~ 그럼 난 선물 못 받잖아~~~”
“아들 많이 서운해?”
“아휴~~~ 엄마 당연하지 벌써 갖고 싶은 거 생각해놓았는 데에~~~~~”
“그렇겠다. 율이가 서운할 테니 엄마 아빠가 율이 크리스마스에 선물 하나씩 사줄게. 그럼 어때?”
“오예~~~~~~ 아싸 감사합니다.”
“아 근데 다시 생각해야지. 갖고 싶은 게 너~~ 무 많다고오~~~~ 아 어려워 어려워 선물 정하기는 너무 어려워!!!”
율아 선택은 어려운 것이란다. 특히나 좋은 여러 개를 놓고 하나만 선택하는 것은 일면 고통이 따르기도 하지 그렇지만 선택 후에 후회가 없으려면 신중해야 해. 삶의 과정은 싫든 좋든 선택한 모든 것들을 살아가는 일이기도 하니까.
우리 부부는 산타할아버지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 더 이상 아들의 마음에 산타할아버지가 없겠구나. 어떤 선물을 받게 될지 상상하고 기대하는 작은 설렘이 없겠구나 생각하니 내 마음이 조금 섭섭해진다. 산타할아버지가 없는 올 크리스마스는 어떤 모습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