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엄마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가야 하는데 같이 갈까?”
“엄마 어디 도서관?”
“아파트 밝은 빛~”
“금방 올 거지? 나 집에 있을게 10분 안으로 오지?”
“응 반납만 하고 올게”
율인 외아들이다. 그래서인지 좀처럼 혼자 집에 있는 걸 무척 싫어한다. 음식물 쓰레기라도 버리러 나가면 한겨울에도 외투도 걸치지 않고 나 몰래 쫄래쫄래 따라 나왔다. 심지어 집안에서도 설거지를 하면 내 옆에 서서 한참을 끝나길 기다렸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도서관이라 곧 있음 초등 2학년이 될 율이를 집에 두고도 마음 편하게 집을 나섰다. 1월의 날씨는 두꺼운 점퍼를 입고도 어깨를 움츠리게 했고 다 떨어지고 앙상한 뼈대만 남은 나무는 마음까지 시리게 했지만 단지안 골고루 뻗쳐 드는 햇살에 기분 좋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천 세대가 넘게 사는 아파트엔 풋살장이 세 개가 있다. 그중 하나는 우리 동 바로 옆 동에 있었는데 우리가 지금 사는 이 곳 아파트로, 이 동으로, 일층으로 이사하게 된 결정적 이유였다.
경사도가 낮은 오르막을 오르는데 풋살장에서 시끌시끌 아이들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다가가자 누구인지 알법한 아이들의 신난 목소리가 깔깔 거리며 웃고 있었다. 좀 더 다가가니 아이들이 풋살장 경계에서 나를 보며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율이 뭐해요?”
“어~ 안녕! 율이 집에 있어.”
“같이 축구해도 돼요?”
“응 전화해서 물어볼게.”
율이가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소리. ‘축구하자’ 율이가 신나 할 걸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율아~ 엄마 지금 풋살장 지나는데 메시형 하고 재민이 형이 축구같이 하자는데 나올 거야?”
한참 벨이 울리고 끊을까 하는 마음이 들 때쯤에야 아들이 전화를 받았다.
“아니 엄마 오늘은 집에 있을래. 엄마 왜 아직 거기밖에 못 갔어. 빨리 갔다 와.”
아들이 신나 할 줄 알았는데 웬일로 시큰둥한 반응에 나마저 기운이 쭉 빠졌다.
서둘러 책을 반납하고 돌아오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네. 여보세요.”
“엄마 나야.”
“응? 이 핸드폰은 뭐야?”
“이거 재민이 형 휴대폰이야.”
“응. 그럼 그렇지 축구하러 나갔어?”
“아니. 엄마 어디야?”
“가고 있지”
“그럼 축구 장으로 빨리 와봐”
난 아들의 심상찮은 목소리에 뛰다시피 풋살장으로 향했다.
조금 멀리서 보이는 아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빨간색 다운점퍼는 아들의 왼쪽 어깨를 다 감싸지 못한 채로 오른쪽 어깨에만 간신히 매달려 있었고 평소 에프엠 성격의 아들이 신은 운동화는 뒤축이 구겨진 채 엄동설한에 양말 한 짝 얻지 못한 발바닥 밑에 깔려있었다.
아들이 나를 보자 달려왔다.
“율아 무슨 일이야?”
“엄마 내가 화장실에서 똥 싸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온 거야. 받기가 무서워서 끊어지길 바라면서 기다리는데 태로(우리 집 강아지)가 아~~~ 올~~~ 아~~~ 울~~~~ 하면서 하울링을 계속하잖아. 어쩔 수 없이 화장실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가 전화를 끊고 나서 전화를 끊으려는데 통화버튼만 있고 끊는 버튼이 없더라고. 띠. 띠. 띠. 띠. 하는 소리가 화장실에 엄청 크게 울려서 너무 무서웠어. 얼른 바지 추키고 대충 점퍼 입고 뛰어나가서 도와달라고 경비실로 갔는데 아저씨가 안 계셔서 축구장에 형들 있다는 말에 이리로 온 거야.”
아들은 숨도 쉬지않고 말했다.
“.......”
이게 무슨.... 난 순간 잠시 멍한 채로 서있었다.
아들의 말을 머리로 그리고 나서야 아들의 어깨에 걸쳐진 점퍼가. 찌그러진 운동화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율이 잘했네~~”
아들이 너무 기특했지만 웬일인지 난 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했다는 말밖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 나 축구할래”
“응 알았어. 양말이라도 신고하지.”
“형! 집에 가서 양말 신고 축구화로 갈아 신고 올 게 기다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중문이 굳게 닫혀 있음에도 화장실에서 울리는 띠. 띠. 띠. 띠. 소리는 중문 밖까지 크게 소음을 뻗치고 있었다.
나라도 혼자 있었다면 무서울만한 소음이었다.
난 빨리 화장실로가서 텅빈 화장실의 벽을 때리며 쩌렁쩌렁 울려대는 소음을 통화버튼을 눌러 꺼버렸다. 통화버튼 하나로 받고 끊고가 모두 되는 것을 모르고 가슴 졸였을 아이를 생각하니 뭐라도 한번 눌러보지 하는 조금은 답답한 마음도 무서워서 문밖으로 뛰쳐나가 보안실에 도와달라고 문을 두드렸을 아이의 안쓰러운 마음에도 화가 났다가 기특했다가 내 감정을 요리조리 끌고 다녔다.
그나저나 난 얼마 안 있으면 초등 2학년이 되는 아이에게 전화 거는 법. 받는 것조차 안 가르치고 뭘 했던 거지 하는 회안이 밀려왔다.
우리 집은 집 전화가 따로 없다. 신랑과 나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기 때문에 집전화는 월패드에 번호만 연결된 채로 한 달에 한 번도 사용할 일이 없이 방치돼있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잘못걸린 전화나 스팸전화만 간간히 울리는 전화를 없앨까 고민하다가 만에 하나 휴대폰이 안 되는 상황이 있을까 봐 없애지도 못했던 건데. 그 정도로 사용할 일이 없어 율이가 집전화를 처음으로 받게 된 날이었다.
율이가 다 놀고 들어왔다. 율이를 앉혀놓고 전화 거는 방법을 가르쳤다. 화장실에서 받고 끊는 방법과 거실 월패드로 전화 거는 방법을.
신랑이 퇴근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상의했다. 결론은 아들에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시기에 키즈폰을 사주기로 한 것이다. 손목에 차는 키즈폰은 순전히 전화 기능만을 가지고 있었다. 워치폰의 단점은 스피커가 외부로 노출되어 있어 통화 내용이 고스란히 주위사람들에게 들린다는 점이었는데 그 점은 주의해서 말하기로 하고 불필요한 기능이 없고 위치추적 기능과 전화 걸고 받는 기능만 있는 워치폰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아들은 덕분에 갖고 싶던 핸드폰을 갖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동네 형들과 친구들에게 내 전화번호를 가르쳐줬었다. 축구라는 게 여러 명이 모여야 게임을 뛸 수 있기 때문에 학원 다니느라 바쁜 아이들이 시간을 맞추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아들의 워치폰은 그 순기능을 너무도 완벽하게 수행했다. 그래서 난 아이들의 휴대폰 사용에 대해 그 전과는 달리 긍정적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아들은 곧 초등 4학년이 된다. 워치폰은 딱 그만큼 1년 8개월만큼의 제 수명을 다했고 다음 타자로 폴더폰을 생각했던 것과 달리 중학교 올라가서 사주려고 했던 스마트폰을 역시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사주게 되었다.
사실 스마트폰은 워치폰과 다르게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이 작용할 것 같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집에 온날 가족이 상의해서 정한 규칙을 읽고 율이가 서명을 했다. 처음 마음처럼 율이가 현명하게 스마트폰을 다룰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