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이가 허둥지둥 신발을 벗으며 신이 나서 들어온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있잖아.”
“율이 학교 잘 다녀왔어?”
“응응 엄마 나 학교에서~”
율인 말을 끊지 못하고 마스크를 벗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고 나올 때까지도 계속 재잘거렸고 난 아들이 신난 이유가 궁금해서 쓰레기통으로 화장실로 끌려다니며 아이의 말에 집중했다.
“오늘 연극을 했는데 다들 잘했다고 선생님이 하**젤리를 하나씩 주셨어.”
“우와 너희 좋았겠다.”
“근데 있잖아. 우리 코로나 때문에 쉬는 시간이 한 번밖에 없잖아. 그래서 수업 중에 화장실을 가도 되거든. 난 젤리가 너무너무 먹고 싶어서 참고 참다가 주머니 속에든 젤 리가 계속 바스락 거리며 나를 유혹하는 바람에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변기 뚜껑 내리고 젤리를 뜯어 한입에 다 털어 넣고 마스크 쓰고서 안 먹은 것처럼 수업 들었다.”
입꼬리가 하늘로 올라가서 신나게 떠드는 아이는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했다.
“아이고, 율아 똥내 나는 화장실에서 먹은 젤리 맛은 어땠어?”
“크크크 아주 꿀맛이었지.”
“정말 맛있었겠다. 수업시간에 선생님한테 걸릴까 봐 가슴이 두근 대거나 조마조마 하진 않았어?”
“가슴이 쿵쾅대긴 했는데 그래도 맛있었어. 엄마 엄만 그런 적 없었어?”
고등학교 사 교시 국사 수업 시간이었다. 키가 작고 안경을 코에 걸친 남자 선생님께서 작지도 크지도 않은 나른한 목소리로 책상 열과 열 사이를 지나다니시며 수업을 하고 계실때였다. 옆 짝꿍의 손이 내 허벅지를 두어 번 찔렀다. 고개를 교과서에 파묻을 정도로 숙이고 있던 난 고개를 옆으로 돌려 친구를 쳐다봤고 친구는 다시 눈을 내리깔고 아래를 가리켰다. 집에서 새끼손가락 만한 찐 고구마를 싸온 친구의 손이 책상 밑으로 고구마를 내게 건네고 있었다. 난 순간 놀래서 친구를 쳐다봤고 친구는 씩 웃으며 제 입을 벌려 이미 입에 넣은 고구마를 보여주었다. 나는 고구마를 받은 손을 책상 밑에 가둔 채로 친구와 공범이 될 것인지를 잠깐 가늠해보았다. 하지만 사교 시의 출출함은 곧 공범이 되기로 마음먹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선생님이 어디쯤 계시는지를 살폈다. 심장을 여러 개의 다듬이로 다듬질 치는 것만 같았다. 고구마는 나의 작은 손에도 살짝 말아쥔 주먹 속에 쏙 들어가는 크기라 숨기기가 쉬웠다. 나는 한입을 베어 물고 시치미를 뗐다. 긴 머리카락을 볼 옆으로 살짝 늘어뜨렸다. 달콤한 고구마가 입속에서 으깨지며 단맛이 입안을 가득 메웠다. 천천히 침으로 녹였다. 입안에서 없어지는 게 아쉬울 만큼 고구마는 달고 맛있었다. 새끼손가락 만한 고구마는 자꾸자꾸 입으로 들어갔다. 친구가 싸온 고구마의 양은 하나도 아쉬움이 없을 만큼이었다. 한입 먹고 남은 반을 마저 입안에 쏙 넣는데 뒤에 앉은 친구가 내 등을 쿡 찔렀다. 그 모습을 본 내 짝꿍은 뒷자리 친구의 입막음용으로 조심스레 고구마를 뒤로 넘겼다. 나와 짝꿍은 공범이 늘어서 기쁜 마음으로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선생님이 멀리 계실 때는 재빠르게 입을 오물오물거렸다. 역시 여자의 긴 머리카락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세 개쯤 먹으려 할 때 뒤에서 또 내 등을 쿡 찔렀다. 난 손을 뒤로 최대한 뻗어서 고구마를 전달했다. 아니 그런데 친구가 내 손을 잡고 안 놔주는 것이 아닌가? 평소에도 장난기가 많은 친구라 물 불 안 가리고 장난을 치는 친구가 짜증이 났다. 선생님이 보실까 봐 심장이 엄청 빠르게 두근거렸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급하게 손을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친구의 거칠고 큰손은 내 손을 더욱 꽉 잡았다. 어떻게든 말려야겠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본 순간 머리에 난 털들이 쭈뼛 섰다. 앗! 거기. 왜.... 선생님이. 그랬다. 우리의 행동을 멀리서 지켜보시던 선생님이 조용히 다가와 주변 친구들에게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고 시키신 뒤 내 등을 찌르신 거였다. 주변 친구들의 웃음이 터졌다. 선생님도 웃음을 참느라 콧구멍을 벌렁대셨다. 난 고구마를 수업시간에 먹은 댓가로 그 크고 거친 손에 내 오른쪽 귀를 내주어야 했다.
아들의 깜찍한 행동이 나를 잠시 학창 시절로 데려갔다.
“엄마도 고등학교 때 수업시간에 고구마 먹다가 걸린 적도 있고 도시락 까먹다가 걸려서 혼난 적도 있지.”
“엄마도 엄청 맛있었겠다.”
그렇게 우린 서로의 비밀을 공유했다. 사실 나야 비밀이랄 것도 없이 이미 지난 과거가 되었고. 아이는 현재 진행 중이니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하나 짧은 시간 잠시 고민되었다. 아이의 일탈이 귀엽기도 하고, 내가 고등학교 때 하던 일탈을 벌써 하는구나 하는 조바심과 왠지 이대로 두면 그게 나쁜 줄 모르고 계속 그럴 것 같은 불안이 내 머리를 뒤죽박죽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수 있는 재미난 추억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한 번이면 좋을 추억으로.
난 머릿속 불안을 더 이상 키우지 않은 채 아들과 서로의 시시콜콜한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며 마무리 했다.
다음 날. 아이가 학교 가기 전 아침을 먹을 때 내가 넌지시 물었다.
“율아. 오늘도 선생님이 젤리 주시면 화장실에 가서 몰래 먹을 거야?”
“왜?”
“음. 율이가 한번 해봤으니 이제 안 했으면 해서. 선생님이 앞에서 수업하시는데 몰래 먹는 건 좋은 게 아니니까. 율이도 가슴이 두근두근하잖아.”
“알았어. 엄마”
이틀 후 학교 갔다 돌아온 율이가 내 얼굴 앞으로 바짝 다가와 입을 크게 벌리고 하~ 하고 숨을 뱉었다. 율이의 입에서 달콤한 과일향기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어? 율이 뭐 먹었어?”
“응~ 오늘도 선생님이 우리반 애들 과학 발표 잘했다고 젤리 주셨는데 참았다가 집에 오면서 먹었어. 도현이랑 같이 왔는데 도현이는 아까운지 안 먹더라고”
난 그만 율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바스러지도록 꼭 끌어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