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때부터 남자아이들은 자동차를 좋아하고, 넘어가면 공룡을 좋아한다 했는데, 율이는 크게 뭔가에 관심이 없던 터라 왠지 모르게 서운함마저 느껴졌더랬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하나뿐인 아들이 놀이터에 가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안 후부 터 (아니 사실은 놀이터를 싫어 하진 않았지만) 놀이터에서 놀다가 부딪쳐 친구들을 다치게 할까 봐 아이들이 없는 시간만 골라 놀이터에서 노는 아들을 위해, 친구들과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킨 축구는, 처음엔 안 하겠다고 엉덩이를 뒤로 빼는 녀석을 "율아 친구들 축구하는 거 기다렸다가 축구 끝나면 친구들하고 놀다 오자" 하며 몇 날 며칠을 꼬신 결과 이젠 축구선수가 아이의 꿈이 되어버렸다. 시간만 나면 공들고 놀자 덤비는 아들 녀석 덕분에 나이 많은 어미는 덤으로 체중을 오키로나 감량하는 효과까지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십 분만 같이 뛰어다녀도 내 폐는 찢어질 듯 숨이 차올랐다. 일단 내 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아들에게 축구를 좋아하는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 주어야 하겠는데, 낯가리기는 지나 나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였으니, 어린 아들은 아무리 밀어봐도 황소보다 고집스럽게 눈만 꿈뻑꿈뻑하며 서있을 뿐이고, 그나마 오래산 내가 제 또래 아이들을 찾아 한데 모았다. 제 나이 또래 아이들은 풋살장에 넣어놓으면, 잡초를 뽑고, 돌을 나르고, 오만가지에 관심이 많아, 정작 축구에 집중하는 시간은 오분이면 족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자기들끼리 팀을 꾸려 하고 있는 많게는 오, 육 학년 형들을 불러 세워 온갖 친한 척하며, 물 셔틀도 마다하지 않고 착한 아줌마라는 인식을 박아 그 자리에 아들을 세우는 데 성공했고, 해가 정수리에서 이글거리는 날도 해가 발끝까지 사그라든 날도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보초를 서고 있어야만 했다. 한겨울은 또 어떠랴, 나중엔 손가락이 얼어붙어 운전을 하기 힘든 상황까지 갔으니, 아들 녀석은 축구를 실컷 잘하고도 괜히 엄마한테 잔소리 듣는 낙으로 살곤 했다. 그리고 그 역사가 우리 아들을 학교에서 제 학년 중 축구를 제일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놓았다. 삼학년이 되는 날을 사개월 앞두고 아들이 일 년 동안 우리 부부를 달달 볶아 기어이 축구 선수반에 들어갔다. 이제는 선수반에 들어가서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아들 녀석 소원대로 선수반에 입단은 했는데, 그럴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이미 일, 이 년 이상 먼저 시작한 아이들과의 실력차가 좁을 리 없음을 알면서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제자리를 찾고 있는 아들 녀석보다, 지가 좋아 시킨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닌 내가 더 서운함은 어찌 받아들여야 할는지, 비장함을 내려놓고 건조하게 격려해야 하는 자리가 오늘은 더 버겁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