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날에 읽어 보는 시집, 내맘내시
#지켄트북스 #작가그룹 #열인백선
보고 싶은 날에 읽어 보는 시집, 내맘내시
내 맘으로 선정하는 내 시
내 맘대로 추천하는 내 시
내 맘을 담아 전달하는 내 시
내 맘을 표출하는 내 시
영화와 노래는 우리가 다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문화입니다
지켄트와 작가들이 추천하는 시들로 또 하나의 공감대가
형성되길 바라며 기획해서 작가들과 함께 만듭니다
지크피디 드림 ( ByJIKPD )
서울인문포럼 2015년1월14일 신라호텔서 개최
배양숙대표 개회사 추천시 : 다시 – 박노해
문전희시인 강연회 추천시 : 꽃밭의 독배 – 서정주
오작가가 추천하는 내맘내시 10선
1. 개미 / 쥘 르나르
한 마리 한 마리가 3이란 숫자를 닮았다.
참 많기도 하다.
얼마나 되나?
3, 3, 3, 3, 3, 3, 3, 3, 3, 3……
끝이 없다.
나에게 시라는 장르는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하다. 하지만 ‘쥘 르나르’의 시처럼 그저 재미있고 한 번에 알아차리고 공감할 수 있는 시도 존재한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쥘 르나르의 가장 유명한 시는 뱀이다. ‘너무 길다.’가 내용의 전부인 이 시는 가장 짧은 시로 알려졌다. 시는 약간의 상상력만 더한다면 소설만큼 흥미로운 장르가 될 것이다.
- 오작가
2.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3.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 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라는 노래를 통해서이다. 멜로디와 함께 애잔하면서 쓸쓸한 가사가 한 없이 외로움을 불러내는 느낌이었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 오작가
4. 내가 나비라는 생각 / 허연
그대가 젖어 있는 것 같은데
비를 맞았을 것 같은데
당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너지는 노을 앞에서
온갖 구멍 다 틀어막고 사는 일이 얼마나 환장할 일인지
머리를 감겨주고 싶었는데
흰 운동화를 사주고 싶었는데
내가 그대에게 도적이었는지 나비였는지
철 지난 그 놈의 병을 앓기는 한 것 같은데
내가 그대에게 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살지 않는 것
이 나라에 살지 않는 것
이 시대에 살지 않는 것
내가 그대에게 빗물이었다면
당신은 살아있을까
강물 속에 살아있을까
잊지 않고 흐르는 것들에게 고함
그래도 내가 노을 속 나비라는 생각
허연 시집 『불온한 검은 피』는 처음에는 강렬한 표지에 끌려 펼쳐보았다. 제목과 다르게 검은 바탕을 수놓은 듯한 하얀 점들에 끌렸고 제목을 읽고 나서 한 번 더 놀랐다. 뜻밖에 위의 시를 읽고 마지막 ‘잊지 않고 흐르는 것들에게 고함 // 그래도 내가 노을 속 나비라는 생각’ 부분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 오작가
5. 이런 시 / 이상
역사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돌을 하나 끄집어 내어 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인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危險)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 소나기 하였으니 필시(必是)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변괴(變怪)로다 간데 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悽)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作文)을 지었다.
「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 평생(平生)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 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시(詩)는 그만 찢어 버리고 싶더라.
6. 오감도 시제1호(烏瞰圖 詩第一號 ) / 이상
13(十三人)의 아해(兒孩)가 도로(道路)로 질주(疾走)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適當)하오.)
제1(第一)의 아해(兒孩)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2(第二)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3(第三)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4(第四)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5(第五)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6(第六)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7(第七)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8(第八)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9(第九)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0(第十)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1(第十一)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2(第十二)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3(第十三)의 아해(兒孩)도 무섭다고 그리오.
13인(十三人)의 아해(兒孩)는 무서운 아해(兒孩)와 무서워 하는 아해(兒孩)와 그렇게 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事情)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중(中)에 1인(一人)의 아해(兒孩)가 무서운 아해(兒孩)라도 좋소.
그중(中)에 2인(二人)의 아해(兒孩)가 무서운 아해(兒孩)라도 좋소.
그중(中)에 2인(二人)의 아해(兒孩)가 무서워 하는 아해(兒孩)라도 좋소.
그중(中)에 1인(一人)의 아해(兒孩)가 무서워 하는 아해(兒孩)라도 좋소.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適當)하오.)
13인(十三人)의 아해(兒孩)가 도로(道路)로 질주(疾走)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이상은 누구나 아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국어책에서 처음 「오감도」를 접한 사람은 이상에 대해서 다시 생각한다. 어렵고 난해한 시 중 하나인 「오감도」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수많은 글이 그림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디자인을 배우고 좋아하는 시로 자리 잡았다. 타이포가 주는 아름다움을 이상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런 시를 세상에 내보인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 오작가
7. 직각 / 이성미
숲에서 너는 드러눕고 나는 서 있는 사람이 된다.
나무가 눕고 너구리가 눕고 햇살이 눕는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하늘이 길쭉해진다.
헝클어진 공기 속에 나는 서 있고,
너는 깊은 바닷속으로 내려가 심해어와 눈이나 납작하게 맞춘다.
누운 숲은 어쩌라고.
나는 가만히 듣는 사람. 저녁 공기가 나무의 몸을 따라 내려오며
차가워지고 무거워지는 소리에 귀를 열어둔다. 귀로 밤공기가 들어오도록.
밤이 내 몸 안으로 들어와 신비한 눈동자를 뜰 때까지.
하지만 오늘은 네가 있다.
오늘은 너를 따라다니면서 너를 깨우고 숲을 깨운다.
네가 아는 얼굴들과 단어들……
먼지 낀 선물 가게 진열장에 늘어놓고 너는 누워 있다.
너에게 묻는다. 밤은 어디에 있지.
너는 나른한 팔을 들어 잡히는 대로 꺼내 놓는다.
네가 부스스 일어나면 그제야 나는 눕는다.
귀는 땅에 가까이 간다. 땅에 묻혀 있는 밤의 숨소리를 엿들으려고.
우리는 같은 모서리를 나눠 가진다.
제목에서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가게 한다. 직각이 되어 생각해본다. 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하면서 재미를 느낀다. 마지막 ‘우리는 같은 모서리를 나눠 가진다.’ 어느 날 문득 생각나는 구절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 오작가
8. 단조로운 공간 / 키타소노 카쓰에
하얀 사각형
안의
하얀 사각형
안의
하얀 사각형
안의
하얀 사각형
안의
하얀 사각형
안의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이다. 하라켄야의 『백』을 읽다 보면 디자이너에게 하얀색, 백이란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위의 시가 재미있는 이유는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의 하얀 사각형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해 열어보면 다시 하얀 사각형이 나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한 기분이 시를 멍하니 계속 읽게 한다.
- 오작가
9. 존재 - 너 / 윤후명
나는 너에게서 아득히 있다
지치도록 아득히 있다
그러길래 이름조차
부르지 못한다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고
메아리도 들리지 않는
눈멀고 귀먹은 세상
아득한 것들의 아득한 짓만
남아 있다 그러길래
아름답다는 것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다만 남의 것일 뿐
나를 배반하는 것일 뿐
10. 소설가 Y의 하루 / 윤후명
소설가 Y씨는 예전에 시를 썼다고 한다
요즘은 안 쓰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를 알고 있다
꽃을 가꿔 식물학자 흉내도 내고
술을 마셔 고래 흉내도 내며
세상을 거꾸로 보려 하지만
사랑이 그를 가로막는다
아무리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가도
사랑이 바로 보라고 꾸짖기 때문에
그는 늘 불안하다
그래서 꽃 피면 꽃 지면 한잔하자고
누구에게나 보챈다는 것이다
소설가 Y씨는 예전에 시를 썼다고 한다
헛소문일지도 모른다
윤후명 시인의 『사랑의 마음, 등불 하나』는 어느 날 우연히 서점에서 사들고 온 시화선집이다. 시를 전혀 읽지도 보지도 않던 사람이 문득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든 것이었다. 그리고 잠이 안 오는 밤에 몇 개씩 읽었다. 그 길고 긴 시간 나를 위로하기도 슬프게 하기도 한 시집이다. 밤에 일도 잡히지 않고 잠도 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아마도 시를 하나씩 읽다 보면 어느새 밤이 괴롭지도 무섭지도 않아 금방 다음 날 아침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 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