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4
변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꼰대가 되어간다(되어가지 않을까?).
나이를 먹어가듯 자연스레 삶 속에 스며든다(스며들지 않을까?).
지금 나의 경험은 과거가 되고
생각이 과정 속에서 과거형이 되듯
공유하는 경험과 생각은 과거의 것이고
나에겐 아름답지만 듣는 사람에겐 아름답지 않은
상대성의 법칙,
꼰대 탄생 상대성 이론이다.
(내가 지어낸 용어지만 결론은 누구나 꼰대가 될 수밖에 없는 상대적인 정의가 아닐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는...)
"라떼는 말이야"
한 개인의 경험에서 서서히 태어난다.
그 경험이라는 것이 일반화되어
어떤 대화, 특정 상황에서 사용이 되고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청자는
이 불합리한 이 순간에 화자를 표현하고자 자연 발생하는 대명사, 꼰대
공감되지 않는 일화를 가지고 와서
이해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이
세대차이, 불통, 공감 불일치, 인지부조화 등 다양한 형태로 발현이 되고
이를 발생시킨 대상을 꼰대라고 하지 않나 한다.
한편,
꼰대라는 단어가 통용되기 시작하면서
불리한 상황에 놓인 약자의 시선이 다수에게 쉽게 공감이 되고
오히려 공감을 통해 역전이 되어 약자의 언어가 상황을 지배하는 언어가 될 때,
'꼰대'라고 하는 단어는 상대를 저격할 무기가 될 수 있다.
달리 말해 불리한 나를 변호해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단어가 꼰대이고
그렇게 지칭하면서 나는 누군가의 공감을 얻고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과도 같다.
꼰대가 오히려 쉽게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사실 누구나 꼰대는 아니다.
하지만 꼰대가 되어간다.
우리가 인정해야 할 수직적인 관계, 조직의 구조에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상사나 손윗사람의 말이 꼰대라는 표현으로
평가절하되고 비하되는 순간들을 최근에 들어서 많이 경험하고 있다.
그러함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요즘에 꼰대는 하나의 상징처럼 활용된다.
직장, 학교, 이를 포괄하는 사회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으며
감정적으로 불편한 상황에 놓일 때, 세대차이를 무시하는 대화가 발생할 때,
경험의 근거로 판단을 강요할 때, 언행불일치할 때 등등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된다.
유머가 없으면
트렌드를 읽지 못하면
공감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면
세대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면
부자연스러우면
옛이야기가 나올 때
힙하지 않으면
결국 꼰대가 된다.
어쩌면 꼰대는 위와 같은 조건에 부합하지 못해 박탈을 경험하는
이 시대의 소외계층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꼰대를 더 이상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위로를 위해 노력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상대성 이론에 따라
나의 대화를 누군가는 잘 받아들일 수도 있고 잘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도 이미 누군가에게 꼰대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경계해야 하나
경계할 수 없고
피하고 싶으나
피할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