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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안 정상은 변호사 Dec 29. 2021

70년 우정과 ..... 사이

두 할아버지가 동네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사정


 어느 날 나이가 많아보이는 두 할아버지께서 번영법률사무소에 찾아오셨다. 덩치가 조금 있으신 할아버지께서는 휠체어를 타고 계셨고, 조금 마른 할아버지께서는 그 휠체어를 미시며, 조심조심 사무실로 들어오셨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고, 근처 병원에 들렸다가 찾아오셨다는 두 할아버지는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


'변호사님 우리가 뭐 소송을 하거나 할 것은 아니고, 변호사님한테 판결을 받고 싶어서 왔는데, 혹시 가능합니까?'


판결은 법원에서 판사님이 하는 것이라 판결은 못해드리는데, 무슨 일이시냐고 여쭤보았다. 두분은 쭈뼛거리며 말을 꺼내셨다.


'그 소송을 할 것은 아니고, 우리 둘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데 해결이 안 되가지고 변호사님께서 누가 맞는지 결정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이것도 가능하시죠?'


'어르신 두 분 사이에서요?'


'네. 우리 둘이요.'


 호기심이 동한다. 우리 사무실은 법조타운이 아닌 유동인구와 거주인구가 많은 불당동에 있어서인지, 소송을 할 생각은 없지만, 법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상담해보려고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꽤 계신다. 그래도 합의가 되서 계약서나 합의서 등을 쓰러오는 경우를 제외하고, 분쟁이 있는 상태에서 양 당사자가 함께 오시는 경우는 드물다. 다툼이 있는 둘이 함께 왔는데 변호사가 한쪽을 편들면 제 무덤을 판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적 조언이 궁금해도 한쪽만 먼저 오셨다가 법적으로 유리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제서야 상대방과 함께 설명을 들으러 오거나, 불리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때부터는 법적인 이야기는 배제하고 협상에 들어간다.


  러다보니 두 어르신처럼 두 분 사이에서 다툼이 있는데, 한쪽이 휠체어를 밀어주고 챙겨주며, 함께 변호사사무실에 방문하시는 경우는 생각해보기가 쉽지 않다. 일단 두 분을 안으로 모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일단 나는 저기 OO읍에서 온 박OO이고, 여기 휠체어에 이놈은 동네 동갑내기 김OO입니다.'


  간단한 소개와 두 분이서 억울하다며 주거니 받거니 쏟아낸 흥미로운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관계없는 많은 이야기가 섞여있었지만, 그 이야기들은 빼고) 휠체어를 밀고 온 어르신을 박할아버지, 휠체어에 타고 온 어르신을 김할아버지로 부르겠다.



박할아버지김할아버지는 한 동네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사는 오랜 친구이다. 그런데 동네에 얼마전부터 꽤 큰 들개 한마리가 나타나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들개는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전혀 없었는데, 개똥 때문에 집 앞이 더러워지거나, 집집마다 묶여 있는 개들과 짖으며 싸우며 시끄럽게 하고, 개가 크다보니 어르신들이 무서워서 개를 피해다니곤 하는 일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가끔은 밭을 파헤치며 노는 들개 때문에 손해를 보기도 하였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농한기가 오자 오랫동안 참고있던 김할아버지가 나섰다. 박할아버지의 만류에도 김할아버지는 올가미로 만든 덫을 설치하고 미끼를 바꿔가며 며칠간 기다렸다. 마침내 들개가 김할아버지의 덫에 걸렸다. 의기양양해진 김할아버지박할아버지를 불러서 자랑하였다. 그리고는 박할아버지의 도움을 요청했다.


  원래 김할아버지는 잡은 들개를 트럭에다가 싣고 멀리가서 풀어주려고 하였다. 그런데, 들개가 사납다 보니 차에 싣을 방법이 없었다. 케이지라도 있으면 어떻게 케이지에 넣어서 데려가볼까 싶지만, 케이지도 없거니와 두 어르신 힘으로는 케이지를 트럭에 싣는것도 어려워 보였다. 또, 들개 목에는 김할아버지가 만든 밧줄로 된 올가미가 걸려있는데, 개가 사납게 짖어대니 풀어줄때 목에 묶인 올가미를 푸는 것도 어려웠을것이다. 잡긴 잡았는데 이걸 어떻게 하나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박할아버지가 한가지 제안을 하였다.


  바로 이 들개를 목 매달아 잡아 먹자는 것이다. 두 분의 설명에 따르면 요즘에는 그런일이 없지만, 예전에는 개를 나무에다가 목 달아 잡고, 많이 잡아 먹었다고 한다. 김할아버지는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내키지 않았지만, 박할아버지가 자꾸 잡아먹자고 하고, 잡힌 들개가 하도 짖어대는 통에 시끄러워 죽겠는데 특별히 방법도 없었기에 박할아버지의 의견에 따르기도 하였다. 마침 들개 목에 김할아버지가 만든 올가미 덫도 걸려있어서 나무에 걸어서 그냥 당기면 되었다.


  김할아버지 박할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개를 나무에 달았다. 잠시 후 나무에 달린 들개가 축 늘어졌다. 박할아버지는 이제 되었으니, 내리라고 하여서, 김할아버지는 들개를 내려놓고 목에 묶인 올가미를 풀었다. 그런데, 축 늘어져서 죽은줄만 알았던 들개는 갑자기 발버둥을 치더니 깜짝 놀라 당황하던 두 노인 사이를 빠져나가 달아나버렸다.


  며칠 뒤 회복된 들개가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온 들개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들개는 여전히 동네를 배회하였고, 여전히 이전처럼 동네 개들과 짖어대며 싸우거나, 개똥을 싸고 가는 등 하는 행동은 이전과 다른바 없었지만, 딱 한가지 변한 것이 있었다. 바로 김할아버지박할아버지를 발견하면 미친듯이 짖어대며 덤벼들듯이 위협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는 짖어대기는 커녕 눈치를 보며 도망가기 바빴다.


  김할아버지박할아버지는 공포에 빠졌다. 노인의 몸으로 어떻게 젊은사람도 버거울 커다란 들개와 싸우겠는가. 혹시나 몰라 지팡이라도 들고 나오면서도, 들개를 마주치면 가장 가까운 이웃 집으로 부리나케 도망가기 바빴고, 집주인이 개를 쫓아내줘야 비로소 나올 수 있었다. 이렇게 전전긍긍 하는 생활을 하다보니 김할아버지박할아버지는 서로 '나 어디가야 하는데, 너 때문에 이 사단이 난것이니 따라와라'며 서로를 탓하면서도 싸운다는 핑계로 매일같이 붙어 다녔다.


 하지만 결국 사고가 발생했다. 그날 김할아버지는 아침부터 박할아버지의 집에 찾아갔다. 김할아버지박할아버지 집 앞에 도착하였는데, 갑자기 그 들개가 뒤에서 나타나 짖으며 위협한 것이다. 놀란 김할아버지는 허둥지둥 하다가 넘어져버리고 말았다.


  소란에 놀라 뛰쳐나온 박할아버지는 지팡이를 들고 맨발로 뛰쳐나와 들개를 쫓아내고 김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김할아버지는 발목에 금이가서 깁스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 발목 이외에는 크게 다치거나 하지 않아서, 퇴원을 하고 안정을 찾기 시작하니 두 할아버지는 다투기 시작했다. 문제는 치료비를 누가 내야하냐는 것이다.


  두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누가 책임이 있냐고 판단해달라고 하였지만, 일부 사람은 김할아버지 책임이라고 하고, 일부 사람은 박할아버지 책임이라고 하였다. 두 영감탱이가 괜히 개를 괴롭혀서 벌받은 것이니 반반씩 부담하라며 중립아닌 중립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동네사람들의 중재가 이루어지지 않자, 김할아버지박할아버지는 파출소를 찾았다. 그리고 경찰관에게 서로의 억울함을 한참이나 토로하였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다 들은 경찰관은 곰곰히 생각하고 다른 경찰관들과 한참을 이야기 나누더니, 갑자기 두 할아버지에게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어르신들 요새 동네에서 개를 잡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개 나무에 메달고 이거 처벌받는거 아시죠! 지금 자수하러 오신거에요? 늙으막에 징역사시려고 오신거냐구요? 경찰관은 이런거 있으면 체포해야되요! 지금 체포합니다! 신분증 꺼내세요!'


 친절히 이야기를 들어주던 경찰관이 갑자기 돌변하여 징역을 살아야 한다며, 체포하려고 들자 두 할아버지는 혼비백산 했다. 신분증을 뺏어들고 이름을 적은 경찰관은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어르신들! 원래 제가 체포를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르신들 이제와서 징역가시면 어쩌려고 하십니까? 지금 그냥 나가시면 이번 한번만 제가 잘못 들은걸로 할게요. 다음부터 절대 그러시면 안 됩니다! 개 잡으시려고 하신것 잘못 말하신거죠?'


혼비백산한 할아버지들은 착각해서 잘못 말하였다며, 다툼은 전혀 해결하지 못한채, 경찰관의 배웅을 받으며(?) 얼른 도망나왔다.


경찰관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동물보호법 제8조(동물학대 등의 금지)

① 누구든지 동물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2. 노상 등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거나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중략)

② 누구든지 동물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학대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도구·약물 등 물리적·화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상해를 입히는 행위. 다만,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2. 살아 있는 상태에서 동물의 신체를 손상하거나 체액을 채취하거나 체액을 채취하기 위한 장치를 설치하는 행위. 다만, 질병의 치료 및 동물실험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3.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 다만,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3의2. 반려동물에게 최소한의 사육공간 제공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사육·관리 의무를 위반하여 상해를 입히거나 질병을 유발시키는 행위

4. 그 밖에 수의학적 처치의 필요, 동물로 인한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의 피해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

③ 누구든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동물에 대하여 포획하여 판매하거나 죽이는 행위, 판매하거나 죽일 목적으로 포획하는 행위 또는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동물임을 알면서도 알선·구매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개정 2017.3.21]

[[시행일1.  2018.3.22]]

1. 유실·유기동물

2. 피학대 동물 중 소유자를 알 수 없는 동물

(생략)


 비록 이 케이스는 죽음에 이르지 않았고, 죽일 목적으로 포획한 것도 아니니 동물보호법 제8조 1항 3항에는 해당하지 않겠지만, 제2항 제1호 도구 등 물리적 방법을 사용하여 상해를 입히는 행위에는 해당될 수 있다.


두 할아버지는 결국 내가 맞니 너가 맞니 다투시다가, 김할아버지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들리신김에 누가 치료비를 내는 것이 맞는지 결판을 짓고자, 번영법률사무소를 찾으신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 역시 고민에 빠졌다. 그 사이 두 할아버지는 한치의 양보없이 때로는 자신의 억울함을, 때로는 친구의 부도덕함을, 덧붙여 과거의 서운했던 이야기까지 어필해오셨다.


이 사안에 대해 굳이 법리를 검토해보자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민법 제396조 (과실상계)

채무불이행에 관하여 채권자에게 과실이 있는 때에는 법원은 손해배상의 책임 및 그 금액을 정함에 이를 참작하여야 한다.


민법 제763조 (준용규정)

제393조, 제394조, 제396조, 제399조의 규정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에 준용한다.




우리 민법은 고의이든 과실이든 위법행위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른바 불법행위에의한 손해배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손해가 발생한 데에 손해를 입은자에게 과실이 있다면 이를 책임과 그 금액에 참작하여야 한다. 교통사고가 나면 흔히들 이야기하는 과실이 몇대몇이냐 따지는 것이 이 과실상계 규정때문이다.


그렇다면, 1. 김할아버지박할아버지의 행위가 각자 서로에게 불법행위인지 여부가 먼저 문제 될 것이고, 2. 불법행위라고 한다면 두 사람 각자의 과실비율은 어떻게 될 것인가가가 문제될 것이다.


서로가 주장하는 상대방의 잘못한 점은 이렇다.


 김할아버지가 잘못했다고 하는 점

  · 김할아버지가 괜히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들개를 잡아왔음

  · 김할아버지도 개를 잡아먹자고 하니 동의하였음

  · 김할아버지가 개를 직접 달았음

  · 김할아버지가 개가 죽은지도 확인하지 않고 올가미를 풀어 줘서 도망치게 만들었음

  · 박할아버지는 개를 잘 피해다녔는데, 김할아버지가 몸이 둔해가지고 넘어졌음

  · 박할아버지는 넘어져있는 김할아버지를 구해준 것임에도 고마움을 모름


박할아버지가 잘못했다고 하는 점

  · 김할아버지는 개를 풀어주려고 했는데 개를 잡아먹자고 하였음

  · 박할아버지가 개를 달라고 하였음

  · 박할아버지가 개가 죽었다며 내리자고 하였음

  · 박할아버지도 개 놓칠때 못 잡았음

  · 김할아버지가 다친건 박할아버지집에 가다가 그랬음



  이걸 그 누가, 누가 얼마만큼 잘못한 것인지 모두가 납득할 수 있게 판단할 수 있을까? 그나마 소송으로 흘러가서 법조계의 많은 인사들이 골치썩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이제와서 경찰관의 체포하기 전에 돌아가시라는 으름장이 얼마나 현명한 조치였는가 생각한다.



 일단 두 할아버지에게 두분 다 잘못하신게 있는데, 치료비 반반씩 내는게 맞지 않냐고 던져보았다. 두 할아버지는 역정을 내신다.

'반반씩 내려면 여기까지도 안 왔습니다. 우리는 복잡하게 반반씩 내고 이런거 안해요. 누가 티끌만큼이라도 더 잘못했으면 다 내야지!'


 어렵다. 누구의 티끌이 큰가. 고민에 빠져있는 동안 하소연 하던 김할아버지의 한마디가 귓가를 스쳤다.

'저놈을 내가 70년을 알고 지냈는데, 한 번을 잘못했다고 사과를 안하는 놈이여.'


'두 분 알고지내신지 70년이나 되셨어요?


'거 저놈이랑 나랑 말그대로 불알친구요.' 두 할아버지가 불알친구라는 말이 쑥쓰러운지 민망해 하신다.


'와 그럼 평생 친구 이신거에요? 두분 다 대단하시네요.'


젊은 변호사의 추켜세움에 한마디씩 꺼내시던 두 할아버지는 어느새 다투던 이야기는 뒤로한채, 두 분의 우정에 대한 무용담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이놈이랑 같이 지낸지 70년도 넘었지.'

'우리 둘이 한 마을에서 한해에 태어나가지고, 평생 토박이여.'

'아버지끼리 지음이셔가지고 625때 피난도 같이갔어.'

'변호사님 전쟁통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시요? 이 영감탱이 코 찔찔거리면서 울고 있는거 이 형님이 손잡고 데려온것이 한 두번이 아니요.'

'아 이놈아 내가 언제 그래야!'


자랑은 다툼이 되었다가 다툼이 자랑이 되었다가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놈이 학교 다닐때 옆 학교놈들한테 까불다가 두들겨 맞고 있어가지고, 내가 동네 애들 싸그리 긁어 모아가지고 저놈을 구하러 가기로 했었거든, 내가 제일 먼저 뛰어갔는데, 막상 도착하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 동네놈들은 아무도 안 오는것이여. 그래가지고 나까지 같이 두들겨 맞는디, 한참 맞다가 생각헜지. 아~ 이놈 오죽 성격이 지랄맞으면 나빼고 구하러 오는 놈도 없구나. 이놈이 그렇게 친구를 잘못 사귀는 놈이여'


'아, 그 때! 네놈이 장소를 잘못가르쳐주고 와가지고 네놈 때문에 계속 처 맞은거 아녀!'

...

'우리 셋째 딸이 저놈 둘째 아들을 좋아했단 말입니다. 그래가지고 몇년을 쫓아다녔는데, 그놈은 한번도 안 받아주다가 딴 여자랑 결혼해버렸어요. 우리 딸이 몇날을 울었는디. 그놈이 저놈을 닮아가지고 아주 싸가지가 없고 매정한 놈이여.'

'그야 우리 둘째가 잘났은께 그제, 그럼 OO이를 그렇게 쫓아다닌 OO이는 아부지 닮아가지고 사람보는 눈이 없구만.'

'아 우리 딸이 뭐 어때서!'

'OO이가 OO이랑 결혼했으면 저 답답한 놈이랑 사돈 될 뻔했구만'

...

'제수씨가 저놈이랑 더 이상 못 살겄다고 애들 데리고 가출을 해버린겨. 근데 저 놈아는 찾으러 갈 생각도 안 하고 갑갑스럽게 집에서 맨날 술만 퍼마시고 있는거여. 그래가지고 내가 한 달을 찾아다니다가, 서울에서 제수씨 사는 집을 찾은겨! 그래가지고 저놈한테 전화를 했어. 제수씨 여기있다 데려가라. 그러니까 자기는 마누라 필요 없다고 절대 안 온대. 그래가지고 내가 안간다는 놈을 억지로 억지로 차에다가 싣어가지고 데리고 왔어. 아니 안간다고 지랄지랄 하던 놈이 딱 제수씨를 보자마자 펑펑 울면서 여보 내가 잘못했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더라니까. 그니께 제수씨가 울면서 안아주고 그날로 다시 집으로 돌아온거 아녀. 내가 저놈아 젊어서 홀애비될뻔한것 구해줘가지고 따땃한 마누라 밥 먹게 해줬은께 내가 은인이제.'

'아 그 얘기를 왜 해!'

...

'아 변호사님 이런 일도 있었소.' ...


 두 분이 질수 없다며 화수분 속에서 에피소드들이 하나씩 하나씩 계속하여 쏟아내자, 사무실에는 박장대소와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마무리도 지어야 하는법이다. 두 분의 무용담 속에 슬쩍 미끼를 던져 넣는다.


'지금 김할아버지 박할아버지가 챙겨주시는 거에요?'

'그럼. 이놈 다리도 이 모양이어가지고, 내가 안 챙기면 굶어죽기 쉽상이여.'

'굶어죽기는 얼어죽을 ㅎ'

'자제분들은요?'

'아! 창피하게 애들한테 어떻게 이야기해! 애들한테 말 못해!'

'변호사님도 부모님이 다쳤다고하면 속이 속이겄습니까? 세상 천지에 다 말해도 애들한테는 절대 말 못해요. 이럴때 그나마 나나 되니까 도와주지.'

'그럼 앞으로도 다 나을때까지 박할아버지가 챙겨주셔야겠네요?'

'미우나 고우나 어쩔 수 없제.'


 바로 이것이다! 두 분이 만족할만한 판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럼 어르신들 이렇게 하시죠. 결론 내릴테니 두 분은 꼭 따라주셔야 합니다. 약속하세요.'

두 어르신이 서로 자신의 편을 들어줄것이라며 잔뜩 기대하는 눈치이다.


'치료비 10만원 좀 넘는다고 하셨죠? 두 분 다 잘못하셨어도 다치신건 김할아버지시니 치료비는 김할아버지가 내세요. 대신 박할아버지김할아버지 다 나으실 때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수발 들어주는걸로 합시다.'

'아니, 변호사님 내 편인줄 알았더만.. 거 참.'

박할아버지의 의기양양함을 뒤로 하고 김할아버지가 풀이 죽는다. 이제 김할아버지의 풀죽음도 달래드릴 차례다.


'어르신들 벌써 상담오신지 세시간이 넘었어요. 상담료는 누가 내시기로 하셨어요?'

'벌써 세시간이나 되었어? 워메.'

'아니 이걸 어째?'

 두 할아버지는 서로에 대한 험담과 웃는 수다에 재미붙이셔서 도끼자루가 다 썩는지도 모르셨다. 두 분이 서로 눈치를 보시며 쭈뼜대신다.


'어르신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원래 상담료가 이만큼입니다. 치료비보다도 훨씬 많죠? 일단 이건 외상으로 해둘게요.'

'외상이요?'

'대신 제가 결정한대로 안 듣고 김할아버지박할아버지한테 치료비 내라고 화내시거나, 박할아버지김할아버지 안 도와주시면 천안변호사 번영법률사무소로 다시 오세요. 그럼 어기신 분께 상담료 받을게요. 박할아버지 김할아버지를 성심성의껏 수발들어주셔야 합니다!'

'그니까, 내가 이놈 나을때까지 도와주면 상담료를 안 받고, 안 도와주면 나한테 받겠다 이거지요?'

'그럼 나는 치료비는 내고 상담료는 안 내고?'

'대신 또 박할아버지한테 치료비 달라고 하시면 상담료 받으러 갈겁니다.'

'으흠, 이 놈아 똑바로 해! 제대로 안 하면 변호사님한테 네놈 상담료 받으라고 할거여!'

'아, 너나 잘해!'


김할아버지는 어느덧 변호사가 자신 편을 안 들어주고 자신한테 치료비를 내라고 했다는 노여움은 살짝 잊어버리시고, 박할아버지가 자신의 수발을 들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에 살짝 통쾌함을 느끼고 계셨다.


  박할아버지박할아버지대로 어쨌든 변호사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고, 또 일단 상담료도 안내고 돌아간다는 것에 의기양양했다.


'그럼 고마워요. 박OO야 가자. 좀 편안하게 모셔봐라.'

'뭐?'

'어허, 아까 변호사님 말씀 들었지?'

박할아버지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시며 천천히 휠체어를 미셨다.

'이놈아. 편안하게 모실때니까 이제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어'

두 할아버지가 실실 웃으시며 번영법률사무소를 나서신다.


'어르신들 저는 변호사에요. 변호사한테 돈 떼먹으시려고 하시다가는 큰일나십니다. 약속 어기시면 꼭 받으러 갈거에요.'

'아 그려요. 걱정마셔요. 말 안들으면 내가 꼭 올게! 고마워요.'

'시간뺏어서 죄송합니다. 오늘 고마웠어요!'

박할아버지가 미시는 휠체어를 타고 김할아버지가 웃으며 인사하신다.




두 할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책상에 앉았지만 왠지 더 이상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해야할 일을 한참 정리해보기도 하고, 굳은 몸을 풀기도 하고, 한참을 낑낑대다가, 결국 접어버리고, 휴대폰을 꺼내서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친다.


'친구야 오늘 갑자기 네가 보고싶다! 일찍 퇴근할게. 한잔 하자!'


—번영만사, 70년 우정과 .... 사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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