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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e Island Nov 15. 2023

꽃이었구나!

Ep6. 아직 채 피지 못하고 떠나는 길에

날이 좋아 떠나는 길 햇살 따뜻이 함께 가니 많이 외롭지 않기를 기도해 봅니다.

날이 좋아 이팔청춘 아직 핏덩이 아기 보내는 하염없는 엄마의 통곡의 눈물 마르게 해 주길...

날이 좋아 아들내미 그  손 내음으로 새끼 잃은 짐승 마냥 울부짖는 아빠 가슴 가득 빛이 되어 안아주기를...

날이 좋아 땀내 풍기며 함께 뛰었던 열여섯 머슴아들 꺼억꺼억 울음 삼키며 어깨동무 내 동무, 시원한 바람맞으며 편히 가라고 배웅해 줍니다.

날이 좋아 이 좋은 나날들 이제는 함께 할 수 없음에 마지막 얼굴 비며 못 보낸다고 아직 아니라고 말도 못 한 체 그저 한 줌의 흙 뿌리며 지키고  있습니다.

이른 이별의 아쉬움에 돌아 설 수 없는 발걸음이 무너집니다.

날이 좋아 눈 부시게 바라본 푸른 하늘 한가득 망자 얼굴 그려보며 웃으며 보낼 수 없음에 한 없이 미안해합니다.

아직 채 피지 못하고 가는 안쓰러움에...

날이 좋아 해바라기만 가득 피어납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라는 미당 서정주 님의 시가 절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날이었다.

 사나에는 자주 울면 안 된다고 가르침 받은, 눈가 붉어진 우리 여린 보이스카웃이 마지막으로 친구를 보내며 , 푸른 하늘을 쳐다본다.

눈이 부시다며, 죽는 건 뭐냐고 묻는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면서 걷었다고 대답한다. 반대로 사는 건 뭐냐고 물었다. 보이스카웃 왜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냐고 으르렁된다. 사는 게 너무 신나는 꽃다운 청춘의  나이에 이제 비로써 죽음이 궁금해졌나 보다.


마냥 걷다가 어느 빨간 장미꽃들이  그려진 묘비명을 보니 그녀가 살아온 해의 숫자들이 보였다.

30년쯤 전에 먼저 간 내 친구 은영이랑 태어난 해가 같았다. 인생 오르막길 숨 헐떡이며 사느라 잊었었노라고 자주 찾아가지 못한 미안함에 핑계돼 본다. 은영이 마지막 가던 길도 따뜻했다. 백혈병으로 어릴 적부터 병원신세 많이 졌던 그래도 아프지 않은 척 씩씩했던 얼굴 하얀 했던 은영이.

그 어머니가 흙무덤 끌어안고 한 없이 울부짖었던 그 모습. 햇살이 좋아 하얗게 반짝였던 들썩이던 그녀 어깨가 생각난다. 나더라 어찌 살라고~

가시리의 한 구절처럼... 남은 자들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고 30년을 사는 동안, 은영이도 이곳 memorial park에 잠든 꽃들처럼 잘 자고 있겠지 싶다. 보고 싶은 내 친구도 그리워해본다. 

Rest in peace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참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 마음속으로 참아야 하느냐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난과 맞서 용감히  싸워 그것을 물리쳐야 하느냐 어느 쪽이 더 고귀한 일일까? 남은 것이 오로지 잠자는 일뿐이라면. 죽는다는 것은 잠드는 것'


유명한 햄릿의 명대사생로병사의 수수께끼 즉 죽음을 몰라서, 아님 죽고 난 후에  죽음에 대해 정확하게  증거 하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는 햄릿처럼 갈등한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안간힘을 해서 산다.

그래도 사는 게 좋은 거겠지... 막연한 긍정적 소망을 삶에 뿌린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처럼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는 뉴질랜드는 삶의 복지에 그래도 적지 않은 혜택을 준다. 죽음의 대한 복지도 염두해 두웠는지 2020년 10월에 국민 투표를 통해 안락사에 관한 찬반론 투표를 했고 국민들의 찬성률이 높아 2021년 11월 End  of life choice Act  안락사가 법적 효력을 갖게 되었다, 안락사(euthanasia)는 그리스어 enthanatos의 어원에서 비롯된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 또는 행복한 죽음을 뜻한다. 불치병으로 죽음단계에 들어선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다.신청할 수 있는 조건이 6개월 신한부 판정의 불치병 환자이어야 하고 또 다른 몇 가지의 조건이 맞으면,  의료진이 약물을 투입해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겨 고통을 여주는 적극적 안락사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 환자 가족 요청으로 영양공급이나 약물투여중단 등으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는 소극적 안락사 즉 존엄사는  유럽에서도 행해진다. 누구나 반드시 죽음을 맞이해야 하기에 고통 없이 죽을 수 있게 죽음의 질도 생각해야 한다고

뉴질랜드 정부는 말한다. 잘 살다가 또 잘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한 시민들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신의 영역이었던 죽음의 날을 정하고 죽을 수 있게 하자는 법에 동의했다. 안락사에 따르는 모든 비용도 정부가 도맡아 내준다. 단지 정신과 의사의 소견이 아직까지는 필수 조건이 아니라서, 이사항을 검토 중에 있다고 한다. 마지막 죽음의 길도 고통 없이 가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신청을 했고 정부의 철저한 조사 끝에 안락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 길을 떠나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삶이 너무 아파서 죽음에 더 빨리 가고 싶은 것일까? 이왕 죽는 가족들 병시중 힘들지 않게 하기 위함 일수도... 고통 없이 삶의 마지막 문을 닫는 것도, 잘 살고 잘 죽는 것도, 이 세상에 처음 왔던 날처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공수래공수거의 허무함은 나만의 느낌만은 아닌 듯하다.

살면서 뜻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우리네 인생들은 아무렇게나 살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추억도 있으니까. 추억은 인생을 면서  "시네마 파라다이스" 영화 흑백필름이 상영되듯 그렇게 우리의 가슴에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을까 싶다.하나둘 소중한 만남을  잃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삶이 일장춘몽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바뤼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말했다.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한들 죽음만큼 힘들까? 싶지만, 죽음이 필연이라면 두려워 떨지  않았으면 좋겠다. 준비할 수 있는 죽음에 당당하게 맞설 용기는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에서 발현될 듯하다. 만약에 크로마뇽인들이 지구에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면 불사조처럼 계속에서 산다면

이 지구가 사람들로 가득 차지 않을까? 선배가 후배에게 공부할 책상을 물려주듯... 자리를 내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느끼는 죽음의 미학인 듯하다.

해바라기:꽃말은 숭배, 기다림. 요정 크리티가 태양의 신 아폴론을 사랑했지만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그를 그저 바라만 보다가 꽃이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사랑이 이뤄지지 않은 슬픈 전설이 있지만 여름꽃으로 해바라기는 해만  바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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