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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hard B Sep 01. 2024

01_부러워하는 것들이 더욱 적어지길

나에게 있어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는 것은 나의 낮은 자존감을 의미했다.

언젠가부터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것은 나의 낮은 자존감을 대변해 주는 장치이자 나의 울적함을 극대화시켜 주는 빛바랜 그림자와도 같은 감정이었다. 그림자라고 표현을 했으니 한마디 더 보태자면 그 부러움은 항상 동반자처럼 나의 뒤를 쫓아다니는 존재였으며 울적함이란 불청객과 함께 시도 때도 없이 나의 마음과 정신세계에 제멋대로 난입하는 존재였다.


알 수 없는 열등감에 에워쌓인채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내오고 청년기를 맞이하며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더욱 내면으로 움추러들게 만들었고 그럴수록 나는 더 거침없고 우악스러운 행동을 일삼았고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는 남모르는 우울감으로 내가 부러워마지않는 대상들을 동경하며, 때론 흠모하며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과 멈추지 않는 총질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진 동경심, 내가 갖지 못한 무언가를 갖춘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그 감정은 시기와 질투심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다만 나 자신을 더욱 할퀴고 고통스럽게 하며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내게 하였다. 또 내가 나아가야 할 길과 앞을 내다볼 시각을 흐리는 존재였고 그로 인한 방황으로 셀 수 없는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20대를 보냈다.


여전하다.


어디서부터 비롯된 열등감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열등감의 근원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에 몸서리를 치며 때론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했고 꿈도 희망도 없는 채 그저 알 수 없는 지직거림의 소음과 선명하지 않은 영상만 내뱉어내는 고장 난 텔레비전과도 같은 모습으로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아왔고 언젠가부터 그것을 조금 덜 뿌옇게, 원하는 소리와 영상으로 나라는 시청자를 조금이라도 더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나만의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고자 다짐했고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나 여전히 여전하다.


여전히 나에 대한 불만족, 뒤돌아서면 홀로 맞이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울적함 그리고 갈수록 작아지는 그런 내 모습을 가엾이 여기는, 제삼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나의 모습에 측은지심을 느끼며 또 더 나은 내일과 더 나은 나이 먹은 나의 모습을 그리며 살아지는 대로가 아닌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삶을 살아보려고 악착같아져 본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대게 그 낮은 자존감을 감추기 위해 지나치게 포장된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감싼다.

때문에 필요이상으로 오버액션을 하기도 하고 때론 쓸데없이 우악스러운 언행을 일삼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 그러고 있는 와중이고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테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죽을 때까지 변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일지 모르니까.


나의 열등감을 티 내지 않기 위해 어쩌면 남들이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는 나의 열등한 부분들을 굳이 나서서 희화화하며 이른바 선수를 치기도 하고 괜한 직접조명을 쐬며 '이것 봐 나는 아무렇지 않잖아' 하며 괜한 큰소리를 내기도 한다.


심기를 거스르는 말이 아님에도 한껏 낮아져 있는 자존감은 괜한 언쟁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순순히 넘길 수 있었던 대화를 굳이 말싸움으로 까지 밀어붙이기도 하는 지난날의 과거는 또 다른 아물지 않는 생채기가 되어 나를 수년째 괴롭히기도 한다.


세는 나이로 서른셋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전과 비교하여 나이가든 다는 것의 장점 중 하나는 갈수록 세상만사에 귀찮음을 느낀다는 것이고 20대와 비교해 점점 기력이 쇠해져 굳이 나서 '트러블'이라거나 '이슈 거리'들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렇게 겉보기에 평온하고 온실 속의 화초 같은 모습으로 위장한 채 살아가는 삼십 줄의 인생이다.


이렇게 그간의 나의 감정과 자존감에 관한 부분들을 서두에 나열하고 보니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비련의 인생을 가진 어떤 한 남자의 모습으로 비치어지는데 그럼에도 이런 나의 배경을 인터넷이라는 공개적인 공간에 노출을 시킨다는 것은 나의 열등감과 그로 인해 발생한 우울감, 그리고 내면으로 움추러드는 나라는 존재를 조금 더 양지바른 볕에 내어주기 위해, 축축하고 음습한 나의 그런 모습들을 환기시켜 주고 제습시켜 주자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잘 늙어가고 싶고 큰 성공은 하지 못하지만 남들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 고상하고 꽤나 우아하게 잘 늙었다는 소릴듣는 노인이 되고 싶은 생각이 큰 요즘이기에 이런 솔직한 이야기들을 느리게 엮어내며 자꾸만 흐려져가는, 여전히 방황하는 나의 앞날을 조금 더 선명하게 하기 위한 과정으로 삼아 본다.


그저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거창하게 늘어놓을 뿐 특별할 것 하나 없고 외려 보통 이하에 그칠 수 있는 나의 하잘 것 없는 이야기를 하나 둘 엮기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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