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처럼 명확한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죽고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조금 더 명확한 삶의 이유를 찾고자 했으나 그 마저도 불가능에 가까워보인다.
무얼 위해 살아야하며 무얼 보며 살아야할지 그 방향성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이런 심오한 생각을, 만인에게 축하받아야 마땅한 생일 날 아침에 하고있는 중이다.
비련의 남주인공이 되고싶진 않으나 여전히 그런 하룰 보내고 있다. 언제나처럼.
톨스토이의 책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책을 접해본 적이 있다.
첫 두어 페이지를 읽으며 내가 원하는 내용과 영 다른 내용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 같아 완독을 하지 않았지만 그 제목 자체는 굉장히 매력적인 작명이라 생각을한다.
뜬금없이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밀도있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생일 날 아침이다.
생일은 나에게 사치와도 같다.
나의 탄생이라거나 누구나와 같이 매년 맞이하는 생일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날을 마땅히 사랑을 받아야하는 대상으로부터 축하를 받은 일이 없는 나는 연중 가장 싫어하는 날이 생일이 되었고 어김없이 올해도 그 가장 싫어하는 날을 맞이했다.
나는 내 생일이 어딘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이십대 어느 무렵까지만해도, 연말에 껴있는 생일인 덕분에 사람들과 걸판진 술자리에서 크고작은 선물들과 덕담, 축하 메시지를 받으며 나름대로 생일을 즐겼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그 조차도 부질없음을 알게되어 연말에 모임자리 초대를 성심성의껏 고사하는 중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적잖은 노력을 한다.
최근 모두 30대인, 같은 승무원일을 하고있는 룸메이트들과 우연찮게 앞으로의 진로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퍽 진지하게 나누면서 그에 대해 할 말이 많지 않은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썰렁한 거실에서 글을 내리갈기고 있는, 연중 가장 싫은 날을 맞이하고 있는 나는 조금 신박한 주제를 가지고 여러 생각들의 꼬리를 연결하고있다.
나는 과연 무엇으로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가장 주된 아이디어이며 이것들이 좀 처럼 상관관계를 띈다거나 연결이 되지 않는 점을 찾아냈다.
일단 언젠가부터 하고싶다고 갈망하던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끈질긴 도전끝에 이루게 되었고, 업계에서 인지도가 높은 큰 회사에 입사해 나름의 '크루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무언가 하나를 이루어 낸 꼴인데 그 다음은 무엇일지 고민을 하다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시기에 진급을 하며 업계에서, 회사에서의 커리어를 쌓고 다져나가는 것을 생각했다.
그 다음은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정답도 길도 모르는 오리무중의 상황에 갇힌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삶에 스스로 방향을 제시하거나 목표를 두어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재미로, 그 성취를 동력삼아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나아가길 희망한다.
적어도 직업적인 측면에서는 나도 그러하다.
사람이기에 성공하고싶고 돈을 많이 벌고싶으며 인정받고싶은 욕구는 나도 같기에.
그러나 그 이외의 그리고 그 이후는 나도 잘 모르겠다.
결혼이라는 행위와 그 자체가 주는 환상, 로망 자체는 부모라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산산조각이 난지 오래되었고 살면서 주변에 딱히 '행복하게' 사는 부부의 모습을 본일이 많지 않아 더욱 그런 것 같다. 또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결혼을 한다손 쳐도 그 과정에서 나의 부모라는 사람들과 마주하게될 쓸모짝에 없는 마찰과 갈등이 상상만으로도 날 숨막히게하며 결코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상상하며 괜시리 없던 분노감도 조성한다.
아이들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아이를 낳아 기를 자신도 없으며, 미디어에 노출되는 부부들의 기가막힌 불협화음 스토리를 나의 인생에서, 나의 스토리로 맞딱드린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싫다. 이미 내 인생 하나도 스스로에게 몹시 버겁기 때문에 누군갈 책임진다는 것 조차 내겐 너무나 큰 부담이기에 결혼은 적어도 이번 생에서는 없는 것으로 한다.
이미 비혼과 독신으로 살기로 결정한 것은 십 년도 더 된 일이다.
스스로에게 후한 점수를 주어 적절한 시기에 무탈히 진급을 하고 돈을 성실히 모아 놓는다면, 사무장의 위치까지 진급을 잘 하게된다면, 과연 그 다음은 무엇일까. 아니 무엇이 되어야할까.
딱히 효도라는 것, 형제들에게 무엇을 해준다는 것은 '천애고아'를 자처하는 나에게는 무의미한 상상일것이니 일찌감치 접어두었고 연애도 결혼도 생각이 없는 나는 무엇을 인생의 방향으로 성장의 동력원으로 삼아야할지 좀 처럼 감이 잡히질 않는다.
승무원들은 대게 가족들을 위해 직원 할인티켓을 가족명의로 등록을 해놓는데 나는 여태껏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없다. 가족 중 누군가는 내가 승무원이 되었다는 것을 유니폼 사진을 입고 비행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전 까지는 믿지도 않았을 뿐더러 딱히 궁금해하지도 몰랐으니까.
두 번째 항공사에 다니고 있으나 가족들 중 그 누구도 내가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조차도 모르고있다. 뭐 내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긴하지만.
아무튼 그러한 목적 조차도 없는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갈 고민하는 생일 날이 참 기가막힐 노릇이다. 그러다 이 목적과 정처없는 생각의 꼬리는 죽음에까지 이어졌다.
외국에 혼자 살고 있으며 가족이란 존재들과 연락조차 단절된 나로서는 혹시라도 일을 하다가, 사고나 병으로 인해 창졸간에 죽음을 맞이해도 딱히 아쉽다거나 슬프다는 생각을 할 일이 없다.
때문에 오래살고싶다거나 삶에 대한 욕구가 강한편도 아니다.
과연 울어 줄 이 몇이나 되겠는지, 나의 죽음 이후 장례라던지 하는 생각은 할 필요도 없게되었다.
참으로 간단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텐데 적어도 세들어 사는 남의 집에서 흔히 말하는 고독사를 하여 시체 썩는 냄새나 그러한 흔적으로 집 주인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된다라는 생각을 겨우 했는데 이것이 문제다.
그러다 궁여지책으로 짜낸 생각이 '안락사(조력자살)'인데 이 조차도 쉽지 않다고 한다.
요즘 스위스에서 어떠한 문제가 제기되어 이 조차도 불법으로 간주되어간다고 하고있고 이런저런 잡음이 많은 모양인데 이러한 걱정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웃기는 순간이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어버린 나는 그 후의 걱정은 할 필요도 이유도 없어지겠지만 단 하나의 걱정이 있다면 주변인들에게 피해나 주지 말아야한다는 것인데 이 부분에서도 꽤나 많은 공부와 대비를 해야할 것 같다.
결국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른바 잘 죽기 위한 준비를 성실히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웰 빙(Well-being) 보다는 웰 다잉(Well-dying)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으로 밥을 먹고사는 덕분에 어딘가로 딱히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자라는 생각은 딱히 할 일이 없어 돈을 열심히 벌어 여행으로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자는 것은 내게 해당되지 않느 는 것 같다.
재산이나 재화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있는 것도, 딱히 잘 보여야 할 대상도 없는 나로서는 좋은 옷, 좋은 차를 끌고 해입고 다닐 이유도 없기 때문에 돈을 미친듯이 모아야할 이유도 적다.
다만 한국에 조금 남아 있는 채무변제를 서둘러 해야한다는 것 말곤 말이다.
몹시도 싫어하는 생일날이 지나고나면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새해맞이 분위기 속에서 멍한 눈을 뜨고 한 해를 새로 맞이할 나는 여전히 이 고민들을 붙잡고 있을테다.
수 백명의 승객들을 모시며, 다소 상투적이나마 진심이 담긴 미소로 그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새해 덕담을 주고 받으며 마음속으로 이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음흉하게 생각해보게 될 내년 연초의 모습이 뻔하게 그려진다.
나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