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한 사랑이야기들이 위로가 되는 순간들

뻔하지만 매력 있는

by 박냥이

나의 이십 대는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열여덟 살의, 스무 살의, 스무세네 살의 설렜던 감정들은 연애가 안정기로 들어서면서 점차 옅어져 간다.

최근에, 단체 카톡에서 연애스타일을 분석해서 저마다의 연애스타일을 술의 종류(코냑, 샴페인 등등)로 규정해주는 사이트에 들어갔었다. 결과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두 가지의 문구 중 자신이 더 선호하는 문구를 선택해나가는 일련의 과정 중,

'1. 퇴근 후 같이 맥주 마시면서 편하게 쉬는 관계,

2. 불꽃 튀는 설레는 관계? 첫 만남?'이런 선택지가 나왔을 때는 꽤 고민했다.

당연히 1번이긴 한데, 아직까지 2번을 포기 못하겠고 사실 진심은 2번이다. 그래, 2번!

이미 몸도 불어버릴 대로 불었고 연애 상대도 1번의 몇 곱절은 될 만큼 편해졌지만, 2번은 여전히 매력적인 순간이다. 아직까지 종종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것도, 이런 2번의 순간을 간접적으로나마 다시금 느끼고 싶은 이유도 있겠다. 당연히 이런 류의 드라마는 대부분 해피엔딩에 그 스토리의 구조도 '복사 붙여 넣기' 한 거 같이 비슷하긴 하지만... 매번의 드라마에서 그 조금의 차이, '다른 주인공들과 환경'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시작' 과정은 참 매력 있다. 당연히, 첫 시작이 제일 설레고 이후는 가지가지 갈등도 나오고 다소 식게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런 '심쿵'의 순간순간들을, 드라마 전개 중 적절히 배치해나가는 것도 그 드라마에 몰입하는데 꽤 도움이 되는 듯하다. 요새 들어 더욱, 한 가지 매체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지금도 처음 보는 영화를 틀어놓고 글을 쓰고 있는데, 이렇게 대충 보는 영화나 드라마를 계속 돌려 보고, 드라마의 경우 마지막화까지 볼 수 있는 원동력은, 그런 작은 '공감되는 순간들', '매력적인 일부분의 내용들'이다.

최근에는 일본의 옛날 드라마, 역시 장르는 로맨스인 드라마를 종종 보는데, 그 사소한 이야기들이 유치한 면도 있지만, 중간중간에 나오는 인물들이 '지나가듯 하는 말'들이 참 공감되는 순간이 꽤 있다. 우리나라의 사고방식과는 좀 다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비록 드라마지만) 그런 여주인공의 우유부단한 모습들이, 더 솔직하고 매력 있어 보인다.

일본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드라마에서 나오는, (나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과도한 배려나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예의 없음, 제멋대로, 또는 화끈함' 같은, 어떻게 보면 내숭 떨지 않고 수다스럽게 녹아드는 자세를 더 선호하는 요즈음의 모임 분위기를 겪으며 보았을 때, 내게 더 끌리는 것임을 알았다.

뭔가... 마음속에,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어도, 때로는 그저 부담을 떨치고 용기 내 물어보기보다는, 고이 묻어놓는 그런 게 요새는 마냥 한심하게만 취급되는 것 같다.

'고백?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나요?'

'뭐, 어때요~ 그 사람은 별생각 없을걸요'

'일단 저라면, 해볼 거 같아요'

이런 말들이, 무조건적으로 용기 있어 보이는 행동이 더 낫다고... 용기를 안 내면 안 된다고 다그치는 말 같다.


이제 나에게는, 쓸데없는 배려가 꽤 소중하고 가치 있다. 한때 나도 무턱대고 돌진하던 시절도 있었고...

그게 단지 후회의 정도로만 판단하면 늘 옳은 선택 같았다.


이제는, 더욱 나 자신에게도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몸 사릴 수 있는 공간'을 두는 것을 중요하게 느낀다.

말은, 아낄 수도 있어야, 튀어나가려는 말을 다시금 집어넣고 천천히 음미해볼 수 있어야, 오래 걸려도 진심이 더 농축된 말을, 듣는 사람의 부담을 줄여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은은하게, 그런 조용하고 가끔씩은 수줍은, 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다 꽤나 수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