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가 편한

어린 시절의 꿈

by 박냥이

어린 시절, 아파트 1층, 6층, 7층(우리 집), 8층, 9층에 옆라인 7층까지 이웃사촌들은 허구한 날 특정 집 안에 다 같이 모여 어른들은 술판에 고스톱을 치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없는 집으로 가서 구슬동자, 디지몬 어드벤처 같은 TV 만화를 보면서 저마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파트 밖에서 놀 때는, 인라인이나 자전거를 타고, 놀이터에서 빙빙을 타면서 시간을 보냈다.

주말이면, 차 몇 대를 추려 각종 먹거리와 짐을 싣고 계곡으로 바다로 떠났다.

10명가량의 어린이들 중에서 내 서열은 거의 1, 2위를 다퉜는데, 우리 우두머리들의 특징은, '여성여성하거나 예쁜척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나 외에는 남자아이였다.

이들과 디지몬어드벤처나 구슬동자에서 역할 놀이를 하면, 나는 항상 '매튜'나, '블랙봉'같은 과묵하고 멋있는 역할을 먼저 선점했더랬다. 반면 또래의 6층 여자아이는 항상 예쁜 공주 같은 등장인물을 선호했다.('미나'나, '레드봉' 같은...)

어느 날엔, '천사소녀네티'의 네티 흉내를 낸다고 1층 친구 집의 베란다 창틀에 올라간 적도 있지만 적성에 안 맞고 '심기'가 불편해서 그만두었던 것 같다.

사촌 여동생이 태어나기 전, 내가 '딸'이라는 이유로 딸을 가지고 싶어 하던 숙모와 삼촌은 내게 엄청나게 많은 선물을 주셨었는데, 한 날에는 그 선물이, 참 부담스럽게도 원피스였다. 치마? 적어도 내가 옷을 골라 입는 나이가 되고서부터는 치마는 입어본 적이 없다. 굳은 표정으로 원피스를 입고 있는 나에게 친척 어른들은 다들 예쁘다며 입고 있어라고 했지만.. 채 몇 분도 버티지 못하고 벗어버렸다. 이후 원피스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내심 안도했다'.

점차 아이들도 크고 어른들의 삶도 각박해지면서 근처에 조성된 신도시로 그중의 절반은 떠나가기도 했다. 그 이전부터 벌써 나에게는, 또래의 남자아이들과 꽤나 거리가 생겼는데, 그 시절 자연스레 일어난 신체변화 때문이었다. 바닷가나 계곡에서 실컷 놀고 온, 우리들을 민박집 수도 호스로 씻겨주던 1층 아저씨는, 나에게는 알아서 씻으라고 배려를 해주었고, 6층 여자애는 생리를 시작한 듯했다.

비슷한 시기 시작한 첫 생리를 어렴풋이 기억한다.

당황하던 나에게 생리대를 자연스레 챙겨주시던 엄마의 모습.

그 시절에 그런 여러 변화가 생기기도 했지만, 훨씬 이전부터... 나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꽤나 했었다. 뭐 말 많고 탈 많은 남아선호주의는 제쳐두고서라도.

비록 초등학생이긴 했지만, 홀수 무리의 여자아이들의 인간관계에 약간의 진절머리가 났고, 힘이 더 세고 덩치가 더 크고 싶었다. '고작 생리통 따위로'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게 싫었다. 잘생기고 훤칠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많이 생각했다.(내일모레 서른인 지금이야... 아무 생각이 없다)

뭐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며 그런 터무니없는 바람보다 당장의 상황을 대처해가며 현실을 사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도 알 수 없게 여전히 불편한, '여자들 사이의 인간관계'는 계속 꺼려졌다. 여자들이란...(절레절레)

엄청 사소한 일들로 절교도 하고, 가면도 자주 쓴다.

특히 남자에 얽힌 일이면 아주 학을 뗀다.

한 오빠를 내 소개로 만나 결혼까지 한 언니는, 결혼식 당일도 이후에도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

그저 나만, 하나의 인연을 잃게 되었을 뿐.(그 오빠랑 꽤 친했다)

공대를 다니면서는, 물론 하기 싫은 과목도 많았지만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해봤을 때, 이대로 졸업하면 보나 마나 성적이 아무리 높아도 정작 기업에서는, 남자들에 비해서는 2순위가 될 거 같았다. 급작스런 진로 변경을 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남자라는 성별에 크게 부러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당장 만년 모태솔로인 동생만 봐도, 어느 모임에 들어가든 '성비'만 봐도...

'내가 남자로 과연 살 수 있을지, 사는 게 지금보다 더 나을지'는 의문이다.

특정 성별에 대한 선호나 얕보는 감정은 없다.

남자건 여자건 나랑 잘 통하면 그만이다.

한편으로는 여자란 성별이 나에게 맞는지 모르겠다.

여태껏 '가장 친했던 친구'는 그 시절에 연애하던 '남자 친구'였고 특히나 또래의 여자 친구의 수는, 거의 '0'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니...

여자들의 관계에 대해 더 세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유튜브에서 짧은 영화로 만들어진 특정 영상을 참조해보셔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