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림모임 이야기

모임장이라는 자리

by 박냥이

몇 년 전, 한 어플을 통해 그림 모임을 만들었다. 매달 특정 금액을 내면 그 어플을 제대로 쓸 수 있었다. 모임의 프로필 사진을 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부터, 정기모임을 개설하는 일, 더해서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은 돈을 안 내면 이용할 수 없었다. 사람들을 초대하는 기능은, 직접 써보지는 못했다.

모임을 개설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5명 정도 모였다. 내가 선택한 모임 장소는 대개, 광역시의 대학교 근처나 가장 중심부였는데, 시외에 살고 있는 내가 오고 가기에 꽤 편한 곳이었다.

처음부터 설명에 개최 장소를 언급해두어서 그런지 모임원들 대부분은 그 부근의 대학교 학생이거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처음부터, '그냥 같이 카페에 모여서 그림 그리다 헤어지는' 그런 생각을 했었기에, 다른 사람들도 큰 부담 없이 '단지 그림만을 그리기 위해' 와주길 바랬다.(이후에 몇몇의 목적은, '술자리'와 '이성친구'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보다 인원이 늘면서는 10명 이상 같은 테이블을 쓸 수 있는 카페가 잘 없어서, 인근의 스터디룸 형식의 모임공간을 빌리기도 했다. 한 모임에 10명 이상 참여하는 일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있을까 말까였고, 보통은 4~5명 정도에서 진행했었던 것 같다.

별생각 없이 모임을 만들었던 내가, 슬슬 지치기 시작한 것은 불과 한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모 인터넷 방송인이 말하는 것처럼, '누구나 처음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면,

'오디오가 비는 것'을 두려워해서 프로 방송인의 경우에도, 인터넷 방송을 특히 어려워한다'란 말이

지금 생각하면 참 공감이 된다.

여기서 인터넷 방송이란, 녹화방송이 아닌, 실시간으로 채팅방을 통해 시청자와 소통해가며 (그분의 경우) 때로는 특별한 콘텐츠 없이도, 오직 시답잖은 잡담만으로 3시간~10시간을 내리 하는 방송이다.

살아오면서 항상 반장, 부반장 이런 '장'의 역할은, 되도록이면 피하면서 살아왔고, 내게 큰 통솔력이나 지도력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서, 이번 그림 모임에서 자발적으로 모임장이 되어 모임을 만든 나는, 낯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그저, 계속 반복되는 자기소개를 '제일 먼저(1번으로)' 할 뿐... 특정 주제를 정해서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 적막함이 불편해서, 특정인과 끊임없이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주고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나도 멍~ 때리고 있었으면, 뭐,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모임 인원에 특별한 제약을 두진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참여하던 사람만 주로 참여하게 되었고, 유령회원도 생겨서 또 다른 규칙을 정하고 그들을 정리하기도 했다. 모임 인원은 오히려 많을수록 좋았으나, 너무 많으면 또 통제가 불가능할 거 같았다.

내가 이렇게 고민하던 사이에, '부모임장' 직위에 대한 언급이 나왔고, 아마도 '내가 하는 모임이 영 심심해서'라고 판단한 나는, 그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일련의 사건들의 순서는, 다 정확히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시절, '집이 멀고,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는 정적인 그림모임보다 '술자리를 원하는' 그들의 '뒤풀이'에 처음은 참여하다 점차 그 빈도를 줄여나갔고, 단순히 '모임장의 공백'에서 빚어진 일이라긴 의문이 들지만, 모임원 중 여자 한 명이 다른 여자 한 명과 술자리에서 다툼을 벌인 얘기를 들었다.

모임원 중, 여타의 또 다른 모임장으로서 있는 분과의 얘기를 통해, 그 사건은 '모임장의 부재'도 한몫을 했다고 질타 아닌 질타도 받기도 했다. 게다가 내가 그런 상황을 뒤늦게야 알고 마주한 것은, 그 여자 두 명 중 좀 더 오래된 회원이고, 더 '기도 센' 한 여자회원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여태껏 '극단적이고 직설적인 메시지'가 온 적은 거의 없다. 그것도 하필이면 아마, 주말 아침이었을 것이다.


'언니, 저 000년이랑 같이 모임 못할 것 같아요'

그 사람의 화와 성격이 반영된 그런 메시지. 답장하는 것을 피하려야 피할 수도 없다.(모임을 왜 만들었을까)

모임장으로서 자질이 부족했던 나는, 그 '기 센' 여자회원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주었다.

이후, 나랑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눠보지 못한 다른 여자회원은 모임에서 제외되었다.(단순히 그 사람의 행동이 상대방에 비해 (어쩌면) 더 폭력적이라 생각했기에... 그 사람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었다)

그 시절 내가 모임장으로서 뭔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여자회원을 따르던 남자 회원이 많음을 또 인지하지 못한 것도 있겠다. 어리고 예쁜, 그 사람을 좋아하던 일부의 남자 회원들은, 곧바로 그 여자회원 옆으로 달려간 듯했다. 그런 적극적인 사람도 있었고, 그저 모임 활동을 같이 중단해버린 그보단 소극적인 사람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아마, 그 '부모임장'얘기가 나오기 전에 있었던 것 같고 나는 한창 부족한 스스로의 탓도 하면서, 그림 그리는 목적이 조금 변질되어버린 그런 모임에 조금 정나미가 떨어지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 '부모임장 선출건'이 또 한 번 모임에 파장을 일으켰다. 마찬가지로 자세한 것은 기억나진 않지만...(인간은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나 보다)

그 '기 센' 친구를 주축으로 하는 부모임장 두 명과, 끝까지 방출된 여자회원을 사수하던 한 명 사이에 조금의 충돌이 있었던가... 사실 그들 모두도 겉보기에는 꽤 친해 보이긴 했다.

이 기억이 아니면, 저 무리들과 또 다른 무리와 마찰이 있었던 것 같다.(앞의 사건을 통해 '기 센' 친구에 대한 반감을 가진 몇몇도 있었기에..)

이 사건은 제대로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단순히 그 보잘것없는 '부모임장의 직책' 때문에 일어났던 일로 어렴풋이 생각된다.


모임 초창기 멤버 중, '000씨'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했던 분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런 모임의 모임장으로 있으면서 참, '받기 싫은 카톡'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모임장님은 저보다 나이도 어리신데, 000'씨'라고 하는 것은 좀 아닌 거 같은데요'

이후에, 나이가 모임에서 아마도 제일 많았던 그 분만 특별하게 우리 모임에서 000'님'으로 불리었다.

그분은 처음에는 나랑 속 깊은 대화도 몇 번 주고받았을 만큼 나름 꽤 잘 맞다고 생각했고, 가끔씩 쓸데없는 일에서 대놓고 내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그분이 모임을 나가게 된 것은, 아마도 나의 탓이 클 것이다.

그분은, 모임에서 (단순히 나의 기준으로) 만난 지 얼마 안 된 한 여자회원을 짝사랑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안 것은, '모임원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지 못한 내 탓일 것이다.

그분은 내가 참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짝사랑 사실에 대해 거리낌 없이 털어놓았다.

그리고 가만히 있어야 했는데~ 나란 인간이 좀 '악랄'했다. 이후 그 여자회원과 (안 해도 되었을) 대화를 통해, 그 여자분은 상대에 대해 별생각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수차례 부담스러운 대시를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점차 그런 소문은, 소리 소문 없이 퍼져 나갔고, 그 사람은 고백도 못해보고 짝사랑을 끝냈다.

(이제 와서야 생각하지만,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가만히 그냥 두었으면 최소한 제대로 된 고백이라도 했을 텐데...)


이제는, '모임장'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내 자질이 부족한 것도 알았고,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내가 해줄 수 없음도 알았다. 그보다는 모임원으로서 참여하는 것이 훨씬 책임감도 없고 편하므로~

지금 있는 모임들에서는 조용히~ 흐름을 따라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