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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질 수 있다

자궁근종 투병기

by 박냥이

2018년 12월 21일, 처음으로 자궁근종 진단을 받았다. 처음으로 몸에 신경 쓰이는 질병이 생긴 날이어서, 유난히 힘들었던 그 해의 끝에 엄마랑 통화를 하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병원으로 가서 간단히 제거하면 된다고 들었고, 인근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해당 교수님은 일단 약으로써 다스려보자고 제안했고 수술이란 것에 거부감이 있던 나는, 그 말대로 몇 달간 약을 복용했다.

사실 이 방면으로 조사를 조금 해본 터라, 약을 먹어도 먹는 동안만 근종의 크기가 커지지 않을 뿐, 약을 평생 먹을 수도 없을뿐더러 약을 중단할 경우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음에도.. 그냥 약을 먹는 게 수술을 하는 것보다는 나았으므로 조금 비싼 가격에도 약을 먹었다. 그나마 실비보험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대학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름이 아니라, 그 약이 유럽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간부전 사례 보고로 국내에서도 유통 중단이 되어서 당장 내일부터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뭐 먹지 말라는데 어쩔 수 있나, 간독성이 있는 약물인지는 알고 있었고 그동안 정기적으로 간수치를 검사해오면서 먹긴 했지만 괜히 찜찜한 기분이었다. 다음 외래에 만난 교수님은, 수술적 요법을 권유하시면서 조금 애매하게 말씀하셨다. 자궁경으로 안되면 복강경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사이즈가 애매한 탓일 테지만.. 두 번이나 전신마취를 하긴 싫었다. 그렇게 6개월 주기의 외래도 무심하게 흘려보내고, 직장도 점점 바빠졌다. 생리량이 옛날 근종 없을 때보다 많긴 했지만, 한 달 중 열흘 정도만 견디면 나머지 날에는 잊고 살 수 있었다. 통증은 점점 심해지긴 했는데, 진통제를 종류별로 하루 10알 정도 먹으면서 견뎌왔다.

그러던 와중.. 이직과 함께 더욱더 바빠지면서 탈이 났다. 어느 날 아침, 쏟아지는 피로 인해 업무를 지속할 수 없었고,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근처의 2차 병원에 내원했다. 결론은 수술.

회사에 눈치가 보였지만 그날에 수술 전 검사까지 마치고, 곧 수술일정도 잡았다. 그런데 사람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 갑상선 수치 이상으로 수술 불가로 판정이 났다. 우여곡절 끝에 갑상선암도 발견하고..

암은 암이니, 상대적으로 더 큰 병 같이 느껴지는 갑상선암 수술부터 해야 했다. 생리량과 통증은 진통제와 어마어마한 생리대로 그럭저럭 견뎌내어가고 있던 중.. 그 정도로는 감당이 불가능할 정도의 출혈이, 갑상선암 수술을 불과 열흘 정도 앞두고 있었고..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일을 쉬고 있다. 갑상선암 수술 중에도 계속 생리기간이었지만.. 입는 생리대를 입고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그렇게 지내왔고, 수술 이후 내심 기대했다. 혹시 갑상선암수술로 생리량과 기간이 안정이 되지 않을지.. 나의 기대는 다음날 꼭 떨어지게 시작하는 생리 동안 산산조각이 났고, 나름 3개월 정도 휴식기를 가진 후, 올해 초에 자궁근종 수술까지 마쳤다.


수술 이후, 3개월 여 지난 지금. 너무 행복하다. 그동안 징글징글하게 힘들었다. 생리량이 너무 많아서 생리기간 중에 집 밖을 나가기도 꺼려졌었고, 갑자기 앉았다 일어나거나 조금 움직여도 쏟아지는 생리에.. 오버나이트고 입는 생리대고 항상 쟁여두고 있었다. 42센티 오버나이트 20개들이 2세트와 입는 생리대 1세트가 기본 베이스였다. 그 정도로 여유분이 없으면 괜히 불안해서, 마트 배송으로 시키기도 했다. 생리기간 중에 잠은 늘 거의 앉아서 잤고.. 편하게 뒤척이거나 누워서 자지 못했다. 진통제는 한번 먹을 때, 소염진통제, 아세트아미노펜, 진경제 가지가지 종류별로 먹었다. 먹는 시간 텀이 헷갈릴까 봐 나와의 카톡에 약을 먹을 때마다 기록할 정도였다.

지금은? 약을 주기 동안 채 1알도 먹지 않는 때가 더 많아졌다. 생리량이 여전히 조금 (아주 옛날보다) 많긴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정상적인 생활에 크게 지장이 없을 정도다. 그래도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어마어마한 생리량을 겪었다 보니.. 이불에 붉은 수건을 덧대는 일은 지속해오고 있다. 그래도 행복하다. 하루 이틀만 견디면 누워서 자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전에 양껏 사놓았던 생리대들이 불필요해질 정도가 되었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 말마따나, 재발의 가능성도 있고 살도 빼야 하지만.. 일단 너무 행복하다.

그래도 방심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직까지 마트에서 과자코너를 어슬렁거릴 정도로 조금 힘들긴 하다. 최소한 차가운 음식을 먹는 일은 피하려고 한다. 냉장고의 음식들도 조금 미지근한 상태에서 먹으려고 하고, 어쩔 수 없이 찬 음식을 먹게 되는 경우 꼭 따듯한 음식을 같이 곁들여서 먹는다. 운동은, 열심히 격렬하게 하고 있진 않지만, 매일 등산을 하려고 하는 중이고, 평소 일상생활 시 움직임을 늘리려고 하는 편이다.


혹시라도, 생리 때문에 '개고생'중이신 분들이 있다면, 자궁질환의 치료를 통해(나는 그나마 단순한 근종 때문이었지만) 그 삶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희망을 가지길 바란다. 처음엔, 나도 설마 근종한 두 개 떼낸다고 크게 달라질까, 좌절한 적도 있지만.. 알고 보니 MRI상으로도 안보이던 자잘한 근종들도 많았고, 그것들까지 최대한 제거하고 나오니.. 수술 직후에는 변비도 생기고 힘들었고.. 이후 그리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지만(운동적인 면에서 특히..) 지금은, '생리 때문에 무엇을 못한다' 할 일 없이, 좀 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골칫덩어리 자궁 때문에 속 썩이시는 분들.. 부디 힘내시길! 참, 배달음식을 먹는 것이 그렇게 좋지 않다고 느꼈었다. 특히, 갑상선 기능 이상이 불과 3개월 사이에 피검 수치에서 차이가 났는데, 그 3개월 동안 코로나 때문에 외식보다는 거의 배달로 대체해왔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배달용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오는 뜨거운 음식들에서 그 플라스틱 용기가 고열에 영향을 받으면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솔직히 아직도 아예 안 먹고살기는 힘들고, 가급적이면 그렇게 배달 오면 바로 집의 사기 용기로 옮기거나 하는 편이고, 배달음식을 먹는 것보다 도시락을 싸려고 한다. 게다가 코로나가 좀 나아져서(?) 종종 외식도 가능해졌다. 덧붙이자면, 갑상선 약을 평생 먹어야 해서 아마 그 호르몬의 영향 탓인지 이전만큼 체중감량이 잘 되지 않는 편인데, 그나마 1~2킬로 빼놓아도 바깥 음식을 먹고 오면 도루묵이 되더라.. 그만큼 바깥 음식의 열량이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주시는 음식보다 높을 것이다. 역시, 미숙한 나의 실력으로라도 대충 만들어서 먹는 게 건강을 위해서는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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