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부터 6시, 엄마와 목욕시간
나는 5시까지
역시 나는 목욕탕에서 최대 2시간이 한계다. 그 이상 있으면 운전해서 집에 돌아갈 힘마저 다 소진되어 버릴 것만 같다. 게다가 집에 가는 길 식재료를 사러 마트에도 들려야 하니.. 체력을 어느 정도 아껴놔야 한다.
엄마는 오늘 부항을 가져오셨다. 실리콘 재질인듯한 부항. 사실 '부황'인지 '부항'인지 헷갈려서 사전을 뒤져 보고 나서 부'항'이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목욕탕에서 부항을 하시는 데 약간의 눈치를 보시는 것 같다. 아무래도 부항자국이 남으면 등에 엄청나게 큰 반점이 생긴 듯 보이기도 하니.. 낯선 이들의 시선이 의식되기도 하시나 보다.
그래서 엄마는 사람이 적을 때 보통 부항을 하시곤 했다. 마침 요새 우리가 자주 가는 목욕탕은 그리 붐비는 곳이 아니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더더욱 없는 곳이라, 엄마는 오늘 마음먹고 부항을 하시려는 듯했다.
엄마가 하는 부항의 위치는 보통 '등'이다. 그래서 등 중심부에 붙일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럴 때 내가 있어서 다행이다. 하하하. 엄마는, '공기가 안 들어가게 세게' 붙이는 걸 좋아한다. 몇 번 성에 안차게 붙이면 다시 붙이라고 투정을 부린다. 뭐, 최대한 원하는 대로 맞춰서 붙여드리고 10~20분 뒤 위치를 바꿔서 요청하시면 또다시 붙여드리고 한다. 뗄 때마다 미지근한 물을 부어서 자극받은 부위를 문질러 드린다. 이것도 엄마한테 배운 것이다. 등가운데 잔뜩 부항을 이열종대로 붙이고 계신 엄마는 마치 갈기 달린 공룡 같다. 어제는 엄마를 별명인 00보다, '공룡'으로 더 많이 불렀다.
5시에 먼저 나가 있겠다고 천천히 나오라 하면서는, '우리 공룡~ 1시간 더하고 천천히 나와'라고 했다.
나도 부항을 몇 번 해본 적이 있는데, 특히 엄마의 실리콘 부항은 살 당김이 너무 심해서 몇 분을 못 견디고 떼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애초에 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는, 아마 모세혈관이 터져서 나타나는 부항으로 물든 피의 색(?)에 따라, 여기 상태가 어떻고 저기 상태가 어떻고 하셨지만.. 확실하게 증명된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우리 공룡'은 장장 4시 45분부터 시작해서 부항을 붙였다 떼길 반복했다. 우리 공룡이 스스로 붙일 수 있는 위치로 옮겨갈 때까지, 목욕탕에서 이제 나가고 싶어진 나는 그때까진 같이 있어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윽고 우리 공룡의 등 중심부에서 옆구리 쪽으로, 팔 쪽으로 부항의 위치가 옮겨갔고 나도 드디어 나갈 때가 왔다.
목욕탕에서 그나마 잘 견디게 되었지만, 2시간 이상은.. 좀 힘들다. 먼저 나가서 핸드폰을 갖고 노는 게 편하다. 목욕탕에서 했던 여러 공상들을 브런치에 주절주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쓰다 보면 30~1시간이 지나서 엄마가 나온다. 엄마가 출발할 준비를 마칠 때까지, 나는 거의 폰을 보고 있다. 목욕탕에서 비자발적으로 스마트폰을 쉬는 시간 동안, 생각보다 많은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몸도 씻고 글의 소재도 떠올리고, 일석이조의 시간이다.
엄마의 출발 준비가 거의 다 되어가면 나도 그제야 양말을 신고, 겉옷을 걸친다. 모녀가 가져온 목욕바구니와 음료랑 부항 같은 것이 든 가방 중 하나를 들고 내가 먼저 입구로 향한다. 되도록 더 무거운 것을 내가 들고나 서려는 편이나, 오줄없이 아무거나 들 때도 있다.
사이드미러가 수동 조작인 모닝의 양측 사이드미러를 열고, 내비게이션도 켜고 하다 보면 엄마도 트렁크에 목욕바구니를 싣고 뒷좌석에 타계신다. 오늘 하루의 목욕 끝! 오늘처럼 목욕의 시작이 조금 늦은 날이면, 오후 6시가 되어 근처 공장의 퇴근시간이랑 겹쳐서 차가 좀 막힌다. 백미러에 비치는, 사우나에서 땀을 한껏 빼고 나온 엄마의 눈이 조금 졸려 보인다. 곧 있으면 동생의 퇴근시간, 남은 체력으로 모녀는 저녁장을 본다. 동생이 가끔씩 일이 늦어 밥을 먹고 온다고 하면 모녀도 한숨을 돌린다. 아니, 사실 나는 별로 상관없고 엄마가 한숨 놓는다. 엄마는 좁은 모닝의 조수석 뒷자리에 타신다. 무슨 멋들어진 자동차에서 '사장님 자리'로 불린다는 그 자리. 엄마는 왠지 뒷좌석이 편하다고 하신다.
"엄마, 다음 목욕은 화요일쯤 갈까?" "그라던지." 엄마가 무심하게 대답한다.(내심 좋으면서~ 크크)